[천지인뉴스 사설]
장동혁의 ‘무죄추정’ 방패, 윤어게인과 단절 못한 보수의 퇴행
정범규 기자

윤석열 전 대통령의 내란 우두머리 혐의 1심 무기징역 선고 다음 날, 국민의힘 장동혁 대표가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확인된 것은 헌정 질서를 둘러싼 분명한 가치 선언이 아니라, ‘아직 1심’이라는 단서와 ‘무죄추정 원칙’이라는 방패였다. 내란이라는 중대 범죄에 대한 사법부의 1차 판단이 내려진 상황에서, 보수 정당 대표의 메시지로는 지나치게 방어적이고 모호했다.
장 대표는 “안타깝고 참담하다”고 운을 뗐다. 하지만 그 참담함이 어디를 향한 것인지는 끝내 분명히 하지 않았다. 헌정 질서를 위협한 전직 대통령의 행위에 대한 참담함인지, 보수 정치가 초래한 역사적 책임에 대한 통감인지, 아니면 정치적 타격에 대한 아쉬움인지 모호했다. 이후 발언의 상당 부분은 수사 절차와 판결의 논리적 구조를 문제 삼는 데 할애됐다.
물론 무죄추정의 원칙은 형사사법의 대원칙이다. 누구에게나 예외 없이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나 정당의 대표가 국민 앞에 서는 순간, 그의 언어는 단순한 법리 설명을 넘어 정치적·도덕적 기준을 제시하는 선언이어야 한다. 1심 판결의 존중 여부와 별개로, 헌정 질서를 침해한 시도 자체에 대해 어떤 가치 판단을 내리는지 분명히 밝히는 것이 공당 지도자의 책무다.
장 대표는 당내에서 제기되는 ‘절윤’ 요구에 대해서도 명확한 선을 긋지 않았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를 정치적 상징으로 삼아온 이른바 ‘윤어게인’ 정서와의 관계 설정은 지금 국민의힘이 넘어야 할 가장 큰 과제다. 그럼에도 그는 ‘절연’이라는 단어 대신 추상적인 표현으로 방향 전환을 언급하며 구체적 결단을 유보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극우적 주장과 결별하지 못한 채 그 눈치를 보는 정치로 비칠 수밖에 없다.
내란 혐의로 무기징역이 선고된 사안은 단순한 정권 실패의 문제가 아니다. 헌법 질서를 무너뜨릴 수 있는 국가적 위기였고, 그에 대한 사법적 판단이 내려진 사건이다. 이런 상황에서 보수 정당이 해야 할 일은 판결의 세부 논리를 문제 삼는 데 머무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법치주의를 최우선 가치로 삼겠다는 분명한 정치적 선언이다. 과거 권력과의 단절은 분열이 아니라, 책임 정치의 출발점이다.
더 나아가 장 대표는 이재명 대통령의 재판 재개를 함께 언급하며 형평성을 강조했다. 법 앞의 평등은 당연한 원칙이다. 그러나 다른 사안과의 병치로 현재의 중대한 판결을 희석시키는 듯한 인상을 준 것은 전략적 균형을 의식한 발언으로 읽힌다. 국민이 요구하는 것은 ‘같이 가자’는 식의 물타기가 아니라, 지금 벌어진 사태에 대한 분명한 책임 인식이다.
정당은 선거를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 아니라, 가치를 대표하는 정치 공동체다. 장동혁 대표의 이번 기자회견은 보수가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방향을 제시하기보다, 여전히 과거의 정치적 그림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줬다. 무죄추정의 원칙은 법정에서 다투면 된다. 국민 앞에서 필요한 것은 민주주의에 대한 분명한 충성 선언이다.
국민의힘이 진정으로 재건을 원한다면, ‘윤석열 이후’를 말로만 언급할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단절과 쇄신을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보수 정당은 극우적 주장에 끌려가는 정당이라는 오명을 벗기 어렵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계산된 모호함이 아니라,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결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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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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