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한민국 언론은 지금도 매일 ‘정의’를 말한다. 권력 감시와 투명성 확보, 민주주의의 파수꾼을 자처한다. 그러나 최근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 이진숙 교육부 장관 후보자, 조수진 변호사를 둘러싼 보도와 그 이후를 돌아보면, 이 같은 언론의 자의식은 허위에 가깝다. 익명에 기댄 의혹 제기, 기계적 보도 이상의 확증 편향, 해명에는 인색한 보도량, 그리고 지상파와 종편에서 이를 ‘사실인 양’ 확대 재생산하는 패널들까지—언론과 언론 생태계를 구성하는 장치 모두가 여론 조작에 가까운 ‘마녀사냥 시스템’으로 작동하고 있다.
강선우 후보자에 대한 ‘보좌관 갑질’ 의혹은 국회사무처 익명게시판, 일명 ‘여의도 대나무숲’에 올라온 실명 없는 폭로 한 줄에서 시작됐다. 해당 글은 작성자 신원조차 확인되지 않았으며, 객관적 검증이나 교차 확인이 이뤄진 바도 없었다. 그럼에도 복수의 언론은 이를 인용해 ‘대나무숲에서 터진 논란’, ‘보좌관 줄줄이 교체’, ‘의혹 커져’ 같은 자극적 제목을 달고 전면 보도했다. 하지만 후속 청문회에서 밝혀진 바에 따르면 당시 보좌관 교체율은 평균을 넘지 않았으며, 조직 내부의 갈등이나 피해 진술 역시 구체적 근거가 부족했다. 그러나 이미 언론 보도를 통해 형성된 여론은 후보자를 ‘갑질 정치인’으로 각인시켰고, 해당 청문회 해명은 대중의 기억 속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지 못했다.
이진숙 후보자의 논문 표절 의혹도 다르지 않다. 다수 언론은 “표절률 50% 이상”이라는 자극적인 수치를 반복적으로 보도했지만, 이는 인문계 논문 기준을 이공계 논문에 기계적으로 적용한 결과였다. 충남대학교 내부 조사와 청문회에 참석한 전문가들의 설명에 따르면, 공학계열 논문에서 실험 설계와 방법론 일부가 유사하게 반복되는 것은 학문적 표절과는 무관한 구조적 특성이다. 하지만 언론은 이같은 해명을 일부러 외면하거나, ‘후속기사’라는 이름으로 말미에 덧붙이는 방식으로 정리했다. 사실이 정정되었을 때는 이미 대중의 기억 속에 ‘표절한 후보’라는 인식만 남은 뒤였다.
조수진 변호사의 사례는 언론의 무책임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대표적 전례다. 아동 성범죄 사건을 변론했다는 이유만으로 조 변호사는 ‘피해자다움을 문제 삼았다’, ‘피해자 아버지를 가해자로 몰았다’는 주장을 언론과 정치권으로부터 뒤집어썼다. 이후 조선일보는 법원 강제조정으로 1년 3개월 만에 정정보도를 게재했고, 이투데이 등 일부 언론도 뒤늦게 사실이 아님을 인정했다. 그러나 그 정정보도는 초반 의혹 보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만큼 작고 조용했다. 피해는 온전히 당사자의 몫이었다. 총선 출마 포기, 가족 대상 악성댓글, 그리고 한 개인의 명예 실종. 언론은 다시 ‘다음 사안’으로 넘어갔고, 아무도 책임지지 않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지상파와 종편에 고정 출연하는 정치평론가, 법조계 인사, 시사 패널들이 이 같은 검증되지 않은 보도 내용을 기반으로 다시 한번 ‘사실인 양’ 발언을 쏟아낸다. “그 정도면 심각한 문제 아니냐”, “여러 보좌진이 나간 건 뭔가 있다는 뜻이다”, “표절률이 50%면 거의 통째 복사 수준이다” 같은 말들이 시청자 앞에 아무 여과 없이 전파된다. 이들은 언론 보도의 검증을 요구하기는커녕, 이를 자신의 주장에 권위를 부여하는 도구로 삼는다. 사실 확인보다 중요한 건 시청률이고, 추론은 언제든 단정으로 포장된다.
언론이 먼저 단추를 잘못 꿰고, 방송이 이를 두르고 확정적 서사를 만드는 구조. 그 결과 대중은 아직 진실이 가려지기도 전에, 이미 누군가를 ‘낙마해야 할 사람’, ‘부적격자’, ‘비도덕한 정치인’으로 인식한다. 이 시스템은 대단히 정교하며, 더욱 심각한 건 이 누구에게나 적용될 수 있는 일상적 구조라는 사실이다.
언론은 보도량의 균형을 지켜야 한다. 정정보도는 오보보다 더 눈에 띄게 해야 하며, 해명은 단순히 ‘양쪽 입장 병기’라는 형식적 요건으로 처리되어선 안 된다. 방송 패널들은 더 이상 ‘기사에서 봤다’는 이유로 누군가를 단정하는 발언을 해서는 안 된다. 그 발언 하나가 누군가에겐 생계고, 명예고, 생존이다.
정치는 싸움일 수 있다. 그러나 언론은 싸움의 무대가 되어선 안 된다. 언론은 진실을 검증하고 균형을 지키는 마지막 방어선이다. 그 방어선이 무너질 때, 개인은 보호받지 못하고, 공공은 허위로 가득 찬다. 지금 필요한 것은 ‘특종 경쟁’이 아니라, 기초 윤리의 회복이다. 의혹을 제기할 자유가 있다면, 정정과 반성의 의무도 함께 져야 한다. 언론의 이름으로 마녀사냥을 저질러 놓고, 정정보도 한 줄로 책임을 회피하는 구조는 이제 멈춰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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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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