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뉴스] 사설|조지아 사태가 남긴 것: 투자국 한국을 ‘단속 대상’으로 본 미국, 대가를 치러야 한다
정범규 기자

수백억 달러 투자에도 노동자 집단 구금…반미 정서 키운 이중잣대
산업·이민 제도 충돌 방치한 미국의 책임, 경제적 손실로 돌아올 것
상설 협의·전용 비자·손해배상 체계로 재발 차단…원칙 있는 외교가 답이다
조지아주 배터리 공장 현장에서 벌어진 한국인 대규모 구금 사태는 한·미 경제동맹의 민낯을 드러냈다. 한국 기업과 협력사들이 막대한 자본과 기술을 들여 미국 내 일자리와 세수를 창출해 왔지만, 현장에 투입된 숙련 인력은 하루아침에 ‘단속 대상’이 됐다. 산업 정책은 반기면서 이민·노무 체계는 손놓고 방치한 결과다. 이번 사건은 단지 현장 관리의 문제가 아니라, 동맹을 말하면서 ‘필요할 땐 환영·불리하면 단속’으로 일관하는 미국의 이중잣대가 만든 구조적 실패다.
첫째, 동맹과 투자에 대한 미국의 책무를 분명히 해야 한다. 설치·시운전 단계에는 단기간 다수의 숙련공이 투입된다. 누구보다 미국 정부가, 주정부가 이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럼에도 제도적 경로를 마련하지 않고 대규모 단속으로 사태를 키운 책임은 미국 측에 있다. 한국은 자본과 기술을 제공했고, 미국은 예측 가능한 제도·법적 안전망을 제공해야 한다. 이번과 같은 집단 구금이 재발한다면, 해외 투자지로서 미국의 신뢰도는 치명상을 입을 것이다.
둘째, 미국이 감당해야 할 비용은 작지 않다. 첫째, 공정 준공 지연과 생산 차질, 현지 협력망 붕괴 등 눈에 보이는 비용이 발생한다. 둘째, 숙련 인력 이탈과 교육 일정 파탄으로 기술 이전 속도가 늦어지면 현지화를 목표로 한 대규모 보조금 정책은 스스로 동력을 잃는다. 셋째, 한국과 같은 핵심 파트너의 반감은 향후 투자 결정과 공급망 재편에서 미국을 불리하게 만든다. ‘사람을 단속’한 대가로 ‘일자리와 투자’를 잃는 어리석음을 미국이 택하지 않길 바란다.
셋째, 한국 정부는 원칙 있는 외교로 상응 조치를 요구해야 한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다음의 제도화를 강력히 추진해야 한다.
- 전용 비자 트랙: 설치·시운전·시범가동 등 단기 숙련 인력을 위한 별도 비자 신설 또는 기존 제도의 특례 신설. 파견 기간·현장 범위·보험·노무 기준을 명문화해 합법 경로를 보장해야 한다.
- 상설 협의·신속 대응 채널: 연방·주 정부, 이민·노동·산업 당국이 동시에 접속하는 24시간 핫라인을 두고, 대규모 단속 전 사전 통보와 대체 조치를 의무화한다.
- 권리 보장 프로토콜: 비폭력 단속의 원칙, 통역·변호·영사접견 보장, 불필요한 신체 구속 금지, 장기 구금 금지, 석방 시 안전 귀가 지원을 양국 간 문서로 확정한다.
- 손해배상·면책 규정: 부당한 대량 단속으로 발생한 공정 지연·물류 차질·노무비용 증가에 대해 주정부·연방정부가 배상하는 조항을 투자협정과 개별 인센티브 계약에 포함시킨다.
- 표준 가이드라인: 기업은 하도급·파견 인력의 체류·노무 적법성 체크리스트를 준수하고, 정부는 사전 컨설팅과 합동 점검을 제공한다.
넷째, 국내 일각의 물타기와 책임 전가를 경계한다. 이번 사태의 핵심은 ‘숙련 인력 수요’와 ‘비자 제도의 공백’이 정면 충돌했다는 구조적 문제다. 이를 종교·정치적 논쟁으로 돌리거나 음모론으로 포장하는 행태는 해법을 흐릴 뿐이다. 정부는 신속 귀국과 보호 조치를 통해 1차 위기를 수습했다. 이제는 제도와 문서로 재발을 차단할 차례다. 손에 잡히는 약속, 법적 구속력이 있는 장치가 없으면 또다시 같은 일이 되풀이된다.
다섯째, 동맹은 상호 존중과 예측 가능성 위에 선다. 미국이 진정한 파트너라면, 한국의 숙련 인력을 ‘불법의 의심’이 아니라 ‘산업 전환의 동력’으로 대해야 한다. 한국 역시 동맹이라는 이름에 기대 안이해질 수 없다. 투자와 기술, 공급망에서의 레버리지를 바탕으로 당당하게 요구하고, 합의가 지켜지지 않으면 분명한 비용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일깨워야 한다.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는 배웠다. 좋은 의도와 우정만으로는 안전과 권리를 지킬 수 없고, 종이 없는 약속은 현장에서 무력하다는 것을. 한국 정부는 재외국민 보호와 산업 정책을 한 테이블에서 설계하는 국익 외교로 전환해야 한다. 미국도 동맹을 말한다면, 동맹의 노동자부터 존중하라. 그것이야말로 두 번 다시 같은 사태가 벌어지지 않게 하는 가장 확실한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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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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