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천지인 영감/연재 소설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17화. 틈을 파고드는 독(毒), 오랜 짝사랑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17화. 틈을 파고드는 독(毒), 오랜 짝사랑

정환의 어깨에 내려앉은 그 짙은 고독과 그늘을, 회사 후배 지영은 단번에 알아챘다. 사실 지영에게 정환은 유진과 결혼하기 전부터 오랫동안 품어온 은밀한 욕망의 대상이었다. 반듯한 외모에 다정했던 선배 정환이 청첩장을 내밀던 날, 지영은 화장실에 숨어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었었다. 그랬던 그가 최근 들어 구겨진 셔츠 깃과 짙은 다크서클, 그리고 싸구려 술 냄새를 풍기며 출근하고 있었다. 왼손 약지에 끼워진 결혼반지의 빛이 바래가는 것을 보며, 지영의 가슴 밑바닥에서 독버섯 같은 기대감이 고개를 들었다.

‘틈이 생겼어. 아주 깊고 치명적인 틈이.’

늦은 야근 후, 텅 빈 사무실에 단둘이 남게 된 어느 저녁. 지영은 의도적으로 가슴골이 깊게 파인 실크 블라우스의 단추를 하나 더 풀고 정환의 책상으로 다가갔다. 결재 서류를 내미는 척하며 그녀의 매끄러운 맨팔이 정환의 어깨를 묵직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움찔하며 고개를 드는 정환의 코끝으로, 지영이 귀 뒤와 쇄골에 듬뿍 바른 일랑일랑 향수의 농밀하고 끈적한 향기가 훅 하고 끼쳐왔다.

“선배, 요새 안색이 너무 안 좋아요. 사모님이 안 챙겨주시나 봐요?”

지영의 목소리는 평소의 싹싹한 후배가 아닌, 나른하게 젖은 암컷의 그것이었다. 허리를 숙인 그녀의 블라우스 틈새로 풍만하고 하얀 가슴의 계곡이 노골적으로 정환의 시야에 쏟아져 내렸다. 지난 1년간 아내의 서늘한 거부에 얼어붙어 있던 정환의 시선이, 그 아찔한 살결에 닿자마자 걷잡을 수 없이 흔들리기 시작했다. 사내의 지독한 금욕이 빚어낸 맹렬한 갈증이었다.

(다음 회에 계속)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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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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