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천지인 영감/연재 소설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뱀꿈에 갇힌 부부]제22화. 뱀을 잡던 할아버지, 뒤늦게 열린 집안 이야기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뱀꿈에 갇힌 부부]

제22화. 뱀을 잡던 할아버지, 뒤늦게 열린 집안 이야기

그날부터 유진은 내가 알려준 대로 잠자리 가까이에 종이와 펜을 두었다.

잠에서 깨면 시간을 먼저 적었다.

꿈이 기억나는 날에는 본 것을 그대로 남겼고,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 날에는 억지로 기억해내려 하지 않았다.

정환도 처음에는 반신반의했다.

“이걸 적는다고 뭐가 달라질까?”

“법사님도 이걸로 뭐가 해결된다고는 안 했어. 그냥 먼저 확인해보자고 했어.”

정환은 더 이상 토를 달지 않았다.

오히려 며칠이 지나면서 유진보다 그가 시간을 더 꼼꼼하게 확인했다.

한밤중에 유진이 갑자기 몸을 일으키면 정환은 휴대전화로 시간을 확인했다.

“두 시 십칠 분.”

“종이에 좀 적어줘.”

“또 뱀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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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

그렇게 며칠 동안 기록이 쌓였다.

매일 같은 꿈을 꾸는 것은 아니었다.

뱀이 전혀 나오지 않는 날도 있었고, 꿈을 꾸었는지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밤도 있었다.

반대로 유난히 선명하게 남는 날에는 예전부터 반복되던 장면들이 다시 나타났다.

사람들이 뱀을 잡는 모습.

피가 묻은 땅.

멀리 서 있는 흰옷의 사람들.

며칠 동안 적어놓은 것을 다시 읽던 유진은 그제야 한 가지를 발견했다.

자신이 꿈에서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뱀 자체가 아니었다.

뱀을 잡고 죽이는 사람들이었다.

“여보.”

어느 날 아침 유진이 종이를 내려다보다 정환을 불렀다.

“왜?”

“나 지금까지 뱀이 무서워서 이런 꿈을 꾸는 줄 알았거든.”

“그런데?”

“적어놓은 걸 보니까 좀 이상해.”

정환이 옆으로 다가왔다.

유진은 자신이 적어놓은 문장 하나를 손가락으로 짚었다.

‘뱀이 도망가는데 사람들이 쫓아가 잡았다.’

다른 날의 기록도 비슷했다.

‘큰 뱀이 몸을 틀며 달아나려 했다.’

‘누군가 머리를 눌렀다.’

‘피가 흘렀다.’

‘흰옷 입은 사람들이 멀리 서서 보고 있었다.’

정환의 표정이 굳어졌다.

“법사님이 할아버지 이야기를 물어본 게 이것 때문일까?”

“나도 모르겠어.”

유진은 섣불리 결론을 내리지 않았다.

내가 몇 번이나 당부한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확인되지 않은 것을 먼저 믿지 말 것.

점사에 현실을 억지로 끼워 맞추지 말 것.

그리고 조상의 일을 알아본다고 해서 살아 있는 가족에게 책임을 묻지 말 것.

하지만 정환의 마음은 전과 달라져 있었다.

처음에는 유진이 하동까지 내려가 무속인을 만났다는 사실부터 탐탁지 않아 했다.

그런데 점사에서 나온 집안 이야기가 실제로 확인되고 나자 자신도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정환은 결국 아버지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뱀을 잡았는지를 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 사실은 이미 확인했다.

알고 싶은 것은 그다음이었다.

“아버지.”

“왜?”

“지난번에 할아버지 뱀 잡았다는 이야기 있잖아요.”

“그건 왜 또 묻냐?”

“그냥 좀 더 궁금해서요. 할아버지가 그 일을 오래 하셨어요?”

전화기 너머에서 아버지가 잠시 생각했다.

“오래 했지.”

“얼마나요?”

“정확히 몇 년인지는 모르겠다. 내가 어릴 때도 산에 다니셨으니까.”

“그럼 몇 년 정도가 아니었네요?”

“아마 그랬을 거다.”

정환은 잠시 말을 고르다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그렇게 뱀을 잡으셨어요?”

“왜긴 왜야. 그때는 돈이 되니까 잡았지.”

그 시절에는 잡은 뱀을 약재상이나 뱀을 취급하는 사람에게 넘겨 돈을 받는 일이 있었다고 했다.

정환의 할아버지도 산과 들을 돌아다니며 뱀을 잡아 내다 팔았다.

뱀만 잡았던 것도 아니었다.

산짐승이나 들짐승도 잡았다는 이야기가 뒤따라 나왔다.

정환은 처음 듣는 집안의 옛이야기를 말없이 듣고 있었다.

자신에게 할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거의 없었던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어릴 때 돌아가셨고, 집안에서도 굳이 이런 이야기를 꺼낼 일이 없었다.

“아버지, 할아버지가 잡은 뱀을 집에도 가져오셨어요?”

“가져왔지.”

“집 안까지요?”

“집 가까이 가져왔다가 네 할머니한테 욕도 많이 먹었다.”

정환이 휴대전화를 고쳐 잡았다.

“할머니가 싫어하셨어요?”

“싫어했지. 아주 질색을 했다.”

살아 있는 뱀을 자루에 넣어 가져오기도 했고, 잡은 것을 집 근처에서 손질하는 날도 있었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할머니는 집 가까이 가져오지 말라고 남편에게 화를 냈다.

“왜 그렇게 싫어하셨는데요?”

“그걸 내가 어떻게 다 아냐. 뱀을 좋아할 사람이 몇이나 되겠냐.”

정환은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할머니가 절 같은 데 다니셨어요?”

“절?”

“예.”

“아니다. 네 할머니는 그런 쪽하고 별 상관없었어.”

정환은 그 대답을 듣고 더 묻지 않았다.

유진의 외할머니는 절을 가까이하며 오랫동안 불공을 드렸지만 자기 할머니에게는 그런 내력이 없었다.

서로 다른 두 집안의 이야기를 함부로 하나로 엮을 수는 없었다.

전화를 끊은 정환은 한동안 소파에 앉아 있었다.

유진이 조심스럽게 물었다.

“뭐래?”

정환은 아버지에게 들은 이야기를 그대로 전했다.

할아버지가 몇 년 정도가 아니라 오랫동안 뱀을 잡았다는 것.

돈을 받고 팔았다는 것.

뱀뿐 아니라 다른 산짐승과 들짐승도 잡았다는 것.

그리고 할머니가 남편이 뱀을 집 가까이 가져오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는 이야기까지.

유진은 자신이 며칠 동안 적어놓은 종이를 내려다봤다.

“당신 할아버지는 정말 오랫동안 뱀을 잡으셨네.”

“그런가 봐.”

“당신은 진짜 몰랐어?”

“처음 들었어. 어릴 때 할아버지 돌아가셨고, 집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일도 없었으니까.”

유진은 남편의 표정을 살폈다.

“기분 나빠?”

“뭐가?”

“내가 자꾸 당신 집안 이야기 알아보자고 해서.”

정환은 잠깐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처음에는 좀 그랬어.”

“미안해.”

“당신이 왜 미안해.”

정환은 탁자 위에 놓인 종이를 바라봤다.

“나도 이제는 궁금해.”

유진이 남편을 바라봤다.

“뭐가?”

“당신이 왜 하필 그런 꿈을 꾸는지.”

정환은 말을 멈췄다가 덧붙였다.

“그리고 왜 나한테만 그러는지도.”

두 사람 모두 쉽게 꺼내지 못했던 문제였다.

유진은 다른 남자에게서 비린내를 맡지 않았다.

길을 걷다 다른 사람과 몸이 부딪힌다고 해서 뱀이 몸을 훑고 지나가는 듯한 감각을 느끼지도 않았다.

유독 정환에게만 그랬다.

남편의 체취.

남편의 손길.

남편과의 잠자리.

어느 순간부터 그 모든 것이 반복되는 뱀꿈과 엉켜버렸다.

정환이 먼저 말했다.

“그 법사님한테 다시 가봐.”

유진이 놀란 얼굴로 남편을 바라봤다.

“당신이 그런 말을 하네.”

“나도 내가 이런 말 할 줄 몰랐다.”

정환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확인해보라고 한 게 실제로 나왔잖아.”

“같이 갈래?”

정환은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유진도 재촉하지 않았다.

“이번에는 당신 혼자 가.”

“왜?”

“내가 아직 그런 데 가서 앉아 있을 자신은 없어.”

정환은 솔직하게 말했다.

“대신 법사님이 뭐라고 하는지 전부 듣고 와.”

“알았어.”

“그리고.”

정환이 유진을 바라봤다.

“내 이야기도 물어봐.”

“무슨 이야기?”

“왜 당신한테 내가 그렇게 느껴지는지.”

유진은 잠깐 남편의 얼굴을 바라봤다.

“당신 괜찮겠어?”

“안 괜찮으니까 알아보자는 거잖아.”

두 사람 사이에 말이 끊겼다.

예전 같았으면 이런 이야기는 결국 말다툼으로 번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달랐다.

유진이 먼저 손을 내밀었다.

정환의 손등 위에 손끝을 조심스럽게 올렸다.

몸에 긴장이 들어왔다.

그래도 손을 거두지는 않았다.

정환 역시 움직이지 않았다.

아내가 먼저 자신의 손에 손을 올린 것이 얼마 만인지 그도 기억나지 않았다.

“괜찮아?”

정환이 물었다.

유진은 자신의 몸에서 올라오는 느낌을 가만히 살폈다.

“응.”

“냄새는?”

유진은 정환 쪽으로 조금 더 가까이 몸을 기울여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솔직하게 말했다.

“아직 조금 나.”

정환이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참 환장하겠네.”

유진도 피식 웃었다.

두 사람이 함께 웃은 것이 얼마 만인지 몰랐다.

손을 잡았다고 해서 지난 시간이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유진의 몸은 여전히 남편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했고, 정환 역시 아내에게 말하지 못한 일이 있었다.

지영과 입을 맞췄던 그날 밤의 일.

그 사실은 아직 유진이 모르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그날 아침 두 사람은 서로의 손을 먼저 놓지 않았다.

그것만으로도 전과는 달랐다.

다음 회에 계속)

글쓴이 | 천신장군암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은 실제 점사와 무속 현장에서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한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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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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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료 정리 과정에서 AI 기술이 참고 수준으로 활용됐을 수 있으며, 기사에 사용된 이미지 중 일부는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됐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