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지인뉴스] 유해진 집 앞까지 번진 ‘암살자들’ 논란…영화 비판 넘어 배우 개인 공격으로
[천지인뉴스] 유해진 집 앞까지 번진 ‘암살자들’ 논란…영화 비판 넘어 배우 개인 공격으로
정범규 기자
영화 ‘암살자(들)’을 둘러싼 역사 왜곡 논란이 작품에 대한 비판을 넘어 출연 배우 유해진을 겨냥한 인신공격과 자택 앞 집회로까지 번졌다. 온라인에서는 유해진이 출연한 광고에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댓글이 이어졌고, 극우 성향 단체들은 유해진 자택 인근에서 영화 상영 중단과 배우의 사과를 요구하는 집회를 열었다.

논란의 중심에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의 ‘북한상’ 발언도 자리하고 있다. 주 의원은 지난달 29일 유해진을 향해 북한에 가서 살라는 취지의 한 누리꾼 게시물에 “북한상”이라는 댓글을 달았다. 이후 외모 비하라는 비판이 제기됐지만 주 의원은 자신의 발언이 “북한을 편들었다는 의미”였다며 표현의 자유라고 반박했다.
영화를 둘러싼 정치적 논쟁은 이제 배우의 일상과 상업 활동까지 파고들고 있다. 유해진이 모델로 출연한 광고 영상과 관련 게시물에는 영화 출연을 문제 삼아 광고 계약을 해지하라는 취지의 항의가 이어졌고, 일부 게시물과 영상의 댓글 기능이 제한되기도 했다.
논란은 온라인에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4일 신자유연대와 벨라도 등 보수 성향 단체 회원 약 50명이 서울 성북구 유해진 자택 인근에서 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영화 상영 중단과 제작진·배우의 사과 등을 요구했다.
집회 현장에서는 영화에 대한 비판을 넘어 유해진 개인을 향한 욕설까지 등장했다. 영화의 역사적 해석을 비판하는 것과 배우 개인의 외모나 사생활 영역을 공격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파장은 영화계로도 번졌다. 제작사는 관객과 참석자들의 안전을 이유로 부산국제영화제 관련 일정과 개봉 2주 차 주말 무대인사 등을 취소했다. 논쟁이 실제 문화예술 활동을 위축시키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대목이다.
유해진 소속사도 대응에 나섰다. 소속사는 단순한 의견이나 비판의 범위를 넘어 허위사실을 유포하거나 악의적 비난과 모욕을 가하고, 배우의 사생활을 침해하거나 신변을 위협하는 행위에 대해서는 엄중하게 대응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정부에서도 우려의 목소리가 나왔다. 최휘영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배우에 대한 도를 넘은 신변 위협 등 불법행위에 대해 엄정한 법적 조치를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번 사태에서 짚어야 할 것은 영화에 대한 비판 자체를 막아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암살자(들)’이 실제 역사적 사건을 소재로 삼은 만큼 사실과 허구의 경계, 역사적 인물을 표현하는 방식, 유족의 명예 문제 등을 놓고 얼마든지 비판하고 토론할 수 있다.
그러나 작품을 비판하는 것과 배우 개인을 공격하는 것은 다르다. 배우가 특정 작품에 출연했다는 이유만으로 정치적 성향을 단정하거나 얼굴 생김새에 이념적 딱지를 붙이고, 광고주를 압박하고, 급기야 자택 앞까지 찾아가는 행동을 정상적인 영화 비평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특히 현직 국회의원의 언어가 온라인의 공격적인 여론과 맞물렸다는 점도 가볍게 볼 수 없다. 주진우 의원은 자신의 ‘북한상’ 표현을 표현의 자유라고 주장했지만, 국회의원이 가진 사회적 영향력을 고려한다면 자신의 발언이 어떤 방식으로 확산되고 소비되는지에 대한 책임 역시 따져볼 필요가 있다.
진중권 교수도 영화 자체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하면서 배우 개인을 향한 공격에는 선을 그었다. 그는 영화 비판은 가능하지만 평론가와 연기자를 상대로 한 집단적인 공격은 중단돼야 한다는 취지로 주 의원을 비판했다. 주 의원은 이에 다시 유해진도 영화 제작 과정에 책임이 있다며 진 교수를 향해서도 ‘공범’이라고 주장했다.
정치권과 시민사회가 영화의 역사 해석을 놓고 치열하게 논쟁하는 것은 민주사회에서 가능한 일이다. 하지만 그 논쟁이 배우의 외모와 광고 활동을 거쳐 집 앞까지 따라가는 순간 문제의 성격은 달라진다.
표현의 자유는 영화를 비판할 자유도 보호하지만 영화를 만들고 출연할 자유 역시 보호한다. 정치적 견해가 다르다는 이유로 문화예술인을 특정 진영으로 분류하고 집단적으로 압박하는 풍토가 굳어진다면 다음 대상은 유해진 한 사람이 아닐 수 있다.
영화 한 편을 둘러싼 논쟁이 우리 사회의 정치적 적대가 문화예술과 개인의 사생활까지 어디까지 침범할 수 있는지를 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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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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