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北 포로 송환 비공개 합의 논란…젤렌스키의 공개, 국가 간 신뢰 가볍게 볼 일 아니다
北 포로 송환 비공개 합의 논란…젤렌스키의 공개, 국가 간 신뢰 가볍게 볼 일 아니다
정범규 기자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됐던 북한군 포로 2명의 한국 송환을 둘러싸고 한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에 외교적 갈등이 커지고 있다.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이 유엔총회 연설에서 두 포로의 한국 송환 사실을 공개한 데 이어 우크라이나 측이 한국 정부와 비공개 합의가 없었다는 입장을 내놓자 청와대는 이를 ‘허위 공보’라고 반박하며 공식적인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쟁점은 포로들의 한국 송환 자체가 아니다. 북한군 포로 2명은 본인의 의사에 따라 한국으로 송환됐으며, 한국 정부 역시 우크라이나 등 관련국·기관과 협의를 진행해왔다. 문제는 민감한 외교·안보 사안의 공개 여부를 둘러싸고 양국 정부의 설명이 정면으로 충돌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국 정부의 설명이 사실이라면 젤렌스키 대통령의 공개는 단순한 외교적 실수를 넘어 국가 간 신뢰의 문제로 볼 수밖에 없다. 반면 우크라이나 대통령실은 송환 사실 자체를 비공개하기로 한 합의는 없었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무엇을 어디까지 공개하지 않기로 합의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사실관계 규명이 필요하다.
북한군 포로 2명은 러시아를 위해 우크라이나 전쟁에 투입됐다가 지난해 1월 러시아 쿠르스크 지역에서 우크라이나군에 생포됐다.
이후 이들은 한국행 의사를 밝혔고 한국과 우크라이나 사이의 협의를 거쳐 약 1년 8개월 만에 한국 땅을 밟았다.
그러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지난 23일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81차 유엔총회 연설에서 북한군 포로 2명을 최근 한국으로 보냈다는 사실을 공개하면서 논란이 시작됐다.
한국 정부는 포로와 가족의 안전, 남북관계와 한러관계 등 외교·안보적 파장을 고려해 송환 문제를 공개하지 않는 방향으로 우크라이나 측과 협의해왔다는 입장이다.
이재명 대통령도 직접 문제를 제기했다.
이 대통령은 북한군 포로 국내 송환이 외교와 안보, 한반도 정세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민감한 사안이라며 공개에 따른 여러 문제를 고려해 비공개하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우크라이나 측이 비공개 합의를 어기고 공개한 데 대해 아쉬움을 나타냈다.
우크라이나 측의 설명은 다르다.
우크라이나 대통령실 측은 북한군 포로를 한국으로 보낸 사실 자체를 공개하지 않기로 한 합의는 없었다는 취지로 반박했다. 포로들의 송환 과정 전체를 공개한 것이 아니라 최종적으로 한국에 보냈다는 사실만 알렸다는 것이다.
논란은 여기에서 끝나지 않았다.
청와대는 27일 우크라이나 측의 이러한 설명에 대해 강한 유감을 나타내고 공식 해명과 사과를 요구했다.
성기홍 청와대 홍보소통수석은 우크라이나가 북한군 포로의 한국 송환 사실을 일방적으로 공개한 데 이어 비공개 합의가 없었다는 취지의 발표까지 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명했다.
특히 청와대는 비공개가 애초 한국 측의 일방적인 요구가 아니라 우크라이나 정부의 요청에서 시작됐다는 입장까지 밝혔다.
이 설명대로라면 문제는 더욱 무거워진다.
국가 간 외교 협상에서는 공개되는 공동성명뿐 아니라 비공개를 전제로 이뤄지는 협의 역시 중요하다. 특히 당사자의 신변 안전과 남북관계, 러시아와의 관계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는 포로 문제라면 더욱 신중하게 다뤄야 한다.
우크라이나가 전쟁 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 있다는 사실과 북한군 포로를 생포하고 이들의 한국행을 허용했다는 사실은 분명 별도로 평가해야 한다.
그러나 그것이 국가 간 합의와 외교적 신뢰 문제를 가볍게 볼 이유가 될 수는 없다.
더욱이 한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비공개 합의가 존재했다고 밝히고 우크라이나 측의 발표를 사실과 다르다고 규정한 이상 우크라이나 정부 역시 단순히 “그런 합의는 없었다”는 주장에 머물러서는 논란을 해소하기 어렵다.
한국 정부에도 필요한 과제가 있다.
청와대는 우크라이나 측이 젤렌스키 대통령의 유엔 연설에서 북한군 포로 문제가 언급될 가능성을 사전에 외교 채널을 통해 알려왔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렇다면 사전 통보를 받은 시점과 한국 정부가 어떤 입장을 전달했는지, 양국이 합의한 비공개 범위가 무엇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외교·안보상 허용되는 범위에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이번 문제의 핵심은 어느 나라를 편드는 데 있지 않다.
한국과 우크라이나가 앞으로 외교·안보 협력을 이어가려면 상대국과 합의한 사항을 어디까지 지켜야 하는지에 대한 기본적인 신뢰가 전제돼야 한다.
특히 사람의 생명과 신변 안전이 걸린 포로 문제를 외교적 홍보 효과보다 앞에 놓아야 한다는 원칙에는 예외가 있을 수 없다.
청와대가 공식 해명과 사과를 요구한 만큼 이제 우크라이나 정부가 정확한 협의 경위를 설명할 차례다. 양국의 주장이 정면으로 엇갈리는 상황에서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 훼손된 외교적 신뢰를 회복하는 첫 단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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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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