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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더 강하게 맞서라”는 정치권에 묻는다, 전쟁의 대가는 누가 치르는가 [천지인뉴스]

[사설] “더 강하게 맞서라”는 정치권에 묻는다, 전쟁의 대가는 누가 치르는가 [천지인뉴스]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폭발 사고로 우리 장병들이 다쳤다. 군과 유엔군사령부의 합동조사 과정에서 군사분계선(MDL) 이남에서 북한군 수지 반보병지뢰가 추가로 발견됐고, 유엔사는 북한군의 지뢰 매설을 정전협정 위반으로 판단했다. 합동참모본부도 북한에 ‘국경선 요새화’ 활동 중단과 사과,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했다.

북한의 책임은 분명하게 물어야 한다. 우리 장병의 생명을 위협한 행위를 남북관계 개선이나 대화를 이유로 어물쩍 넘겨서는 안 된다.

정부와 군의 초기 대응 역시 검증 대상이다. 사고 직후 조사가 적절했는지, 대통령 보고와 지휘체계에는 문제가 없었는지 국회가 따져 묻는 것은 당연하다. 야당이 정부의 안보 대응을 감시하고 잘못이 있다면 책임을 요구하는 것 역시 당연한 역할이다.

하지만 비판의 언어가 어느 순간부터 전쟁의 언어로 바뀌고 있다.

국민의힘은 이번 사건을 두고 정부의 ‘북한 눈치보기’를 주장하며 대북 확성기 재개 등 강경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장동혁 대표는 대통령이 고의로 현장조사를 지연시켰다면 ‘이적행위’, ‘외환의 죄’에 해당한다며 탄핵과 구속까지 거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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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경원 의원은 여기에서 더 나아가 대북 확성기와 전단 살포뿐 아니라 이른바 ‘김정은 참수작전 훈련’ 재개까지 주장했다.

정치인은 이런 주장을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국민도 물을 권리가 있다.

그 다음에는 무엇이 오는가.

‘참수작전’이라는 말은 정치인의 입에서는 몇 초 만에 끝날 수 있다. 하지만 북한이 그것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전혀 다른 문제다.

북한 지도부가 자신들을 제거하기 위한 실제 군사행동의 준비라고 판단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그 판단이 잘못된 오판이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이 질문은 단순한 상상으로만 치부할 수 없다.

우리는 2024년 10월 평양 무인기 사건을 경험했다.

윤석열 전 대통령은 북한을 자극해 비상계엄 선포 명분을 만들 목적으로 평양 무인기 투입 작전을 지시한 혐의 등에 대해 올해 6월 1심에서 징역 30년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고 군사적 긴장을 높이려 했다는 일반이적 혐의를 유죄로 판단했다. 다만 윤 전 대통령 측이 항소했기 때문에 확정판결은 아니다.

재판부는 이 과정에서 우리 국민과 군의 인명 및 재산 피해 위험이 발생했고, 대한민국의 군사력이 국가안전보장이나 국토방위가 아닌 목적으로 사용됐다고 판단했다.

당시 북한이 평양 상공에 나타난 무인기를 단순한 무인기 침투가 아니라 지도부를 제거하기 위한 이른바 ‘참수작전’의 전조라고 판단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북한이 실제 공격의 시작이라고 오판해 군사적으로 대응했다면 우리 군도 대응했을 것이다. 북한이 다시 보복하고 우리 군이 다시 대응했다면 그 충돌은 어디에서 멈췄을까.

반드시 전쟁이 일어났을 것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일어나지 않은 일을 사실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그러나 바로 그것이 전쟁의 무서움이다.

전쟁은 어느 한쪽이 만들어 놓은 각본대로 움직이지 않는다. 한쪽은 ‘이 정도까지는 상대도 참을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상대방은 전혀 다르게 판단할 수 있다.

지도자의 오판 하나, 현장 지휘관의 판단 하나, 잘못 발사된 포탄 한 발이 도발과 보복, 재보복을 거치면서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으로 번질 수 있다.

전쟁을 시작하는 결정은 내릴 수 있어도 시작된 전쟁을 원하는 시간에 끝낼 수 있다는 보장은 없다.

그래서 국민의힘이 그동안 강조해온 북한 인권 문제도 함께 묻고 싶다.

국민의힘은 북한 주민의 자유와 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제기해왔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말하는 것은 당연하다. 북한 정권의 인권침해 역시 국제사회가 오랫동안 지적해온 문제다.

그렇다면 그 인권의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최근 우크라이나에서 생포됐던 북한군 포로 2명이 본인들의 자유의사에 따라 대한민국으로 왔다.

정부가 이를 비공개로 진행하자 국민의힘에서는 정부가 북한의 눈치를 본다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9월 30일 국정원의 국회 정보위원회 보고에서는 중요한 사실이 확인됐다.

국정원에 따르면 송환 협의 초기부터 우크라이나 측은 향후 포로교환 협상에 미칠 영향 등을 이유로 우리 정부에 대외보안을 철저히 해줄 것을 먼저 요청했다. 한·우크라이나 양측은 논의 초기부터 비공개 진행에 공감대를 갖고 협의를 진행했다. 국정원은 두 북한군 포로의 대한민국행 자유의사도 여러 차례 확인했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그토록 중요하게 이야기해왔다면 대한민국을 선택한 북한군 포로의 자유와 안전뿐 아니라 북한에 남겨진 부모와 형제, 가족이 겪을 수 있는 위험 역시 함께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정부의 비공개 판단은 얼마든지 검증할 수 있다. 국민의 알 권리와 국가안보, 당사자 보호 사이에서 적절한 판단이었는지 국회가 따져보는 것도 필요하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북한군 포로의 송환과 보호에 적극적으로 나선 의원들이 있었다. 따라서 국민의힘 전체가 포로의 인권이나 안전을 외면했다고 단정하는 것도 옳지 않다.

그러나 북한 인권을 정치적 가치로 강조해왔다면 적어도 북한 주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과 안전에 같은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

북한 주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서도 비슷한 질문이 생긴다.

정부는 평양 강동군병원에 엑스레이 장비와 제세동기, 인공호흡기 등 진단·수술·치료에 필요한 의료장비 166종 1천431점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일부 장비가 군사적 목적으로 전용될 가능성을 제기하며 강하게 반대하고 있다. 실제로 대북지원 물자가 북한 주민에게 전달되지 않고 군이나 정권에 전용될 가능성은 철저하게 따져야 한다. 지원이 이뤄진다면 투명한 분배와 사후 확인도 필요하다.

하지만 북한 주민의 인권을 이야기하면서 그 주민의 질병을 치료하기 위한 의료지원까지 처음부터 정치적 대결의 언어로만 바라보는 것이 과연 일관된 태도인지도 생각해볼 문제다.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은 구분해야 한다.

김정은 정권의 핵과 미사일을 비판하는 것과 북한 병원에서 치료받는 주민의 생명을 살리는 것은 같은 문제가 아니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말한다면 그들의 정치적 자유뿐 아니라 먹고 치료받고 살아갈 권리 역시 인권의 범주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 문제는 결국 전쟁이라는 더 큰 질문으로 이어진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걱정한다면서 한편에서는 북한 지도부 제거를 상정한 ‘참수작전 훈련’을 공개적으로 요구한다면, 그 군사적 긴장이 실제 전쟁으로 번졌을 때 포탄 아래 놓일 북한 주민의 생명까지 생각해야 한다.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은 말할 것도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이 보여주는 현실을 보라.

전쟁이 장기화하면서 수많은 민간인이 죽고 다쳤다. 집과 학교, 병원과 전력시설이 파괴됐고 평범한 시민들이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었다.

전쟁이 시작될 때 정치 지도자들이 계산했던 전쟁과 몇 년 뒤 국민이 살아내고 있는 전쟁은 전혀 다른 모습일 수 있다.

중동의 현실은 전쟁과 인권에 대해 또 다른 무거운 질문을 던진다.

2023년 10월 7일 하마스는 이스라엘을 공격해 민간인을 포함한 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인질을 끌고 갔다. 민간인을 살해하고 납치한 행위는 어떠한 정치적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하지만 그 이후 이어진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군사작전 역시 막대한 민간인 피해를 낳았다.

2026년 현재까지도 가자에서는 공습과 군사작전으로 민간인 피해가 이어지고 있다.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은 9월 현재 가자 주민의 94%가 긴급한 주거와 기본 생활용품 지원을 필요로 하고 있으며, 전체 가구의 65%가 텐트나 임시 거처에서 생활하고 있다고 보고했다.

여기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유대인은 나치 독일에 의해 국가적이고 조직적인 박해와 학살을 당했다. 홀로코스트로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목숨을 잃었다.

그 역사가 오늘날 유대인과 이스라엘 사회에 남긴 공포와 안보에 대한 절박함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그러나 과거에 끔찍한 박해를 경험했다는 사실이 오늘날 다른 민간인이 겪는 고통을 가볍게 만드는 이유가 될 수도 없다.

역사의 교훈은 어느 민족이 영원한 피해자이고 어느 민족이 영원한 가해자라는 데 있지 않다.

과거 피해를 경험한 공동체도 국가권력을 갖게 되면 그 힘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질문받아야 한다. 과거의 고통이 오늘의 다른 민간인에게 가해지는 고통을 정당화하는 면허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유대인과 이스라엘 정부를 구분해야 한다.

이스라엘 정부의 정책과 군사행동을 비판하는 것을 유대인 전체에 대한 비난으로 바꿔서는 안 된다.

마찬가지로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주민도 구분해야 한다.

하마스가 저지른 민간인 살해와 인질 납치를 이유로 팔레스타인 주민 전체를 잠재적인 적으로 취급해서도 안 된다.

이스라엘 아이의 생명도 소중하고 팔레스타인 아이의 생명도 소중하다.

국적과 민족에 따라 아이의 생명값이 달라질 수는 없다.

바로 여기에서 한반도 문제와 다시 만난다.

북한 정권과 북한 주민은 다르다.

김정은 정권의 핵과 미사일에 단호하게 대응하는 것과 북한 주민의 생명을 가볍게 여기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하마스의 범죄가 팔레스타인 주민 전체에 대한 무제한적인 고통을 정당화할 수 없듯, 북한 정권의 도발 역시 남북한 주민의 생명을 위험에 빠뜨리는 모든 선택을 자동으로 정당화하지 않는다.

인권은 정치적으로 편리할 때만 꺼내 쓰는 말이어서는 안 된다.

북한 주민에게도 적용돼야 하고, 북한군 포로와 북한에 남겨진 가족에게도 적용돼야 한다. 우크라이나 국민에게도, 이스라엘 국민에게도, 팔레스타인 주민에게도 같은 기준이어야 한다.

그리고 대한민국 국민에게는 더 말할 필요도 없다.

전쟁을 결정하는 사람과 전쟁에서 죽는 사람이 다른 경우가 너무 많다.

전쟁을 주장하는 정치인은 국회와 방송 스튜디오에서 말한다.

하지만 실제 전쟁이 시작되면 군복을 입고 전선으로 가는 사람은 누군가의 아들과 딸이다.

포탄이 떨어지는 도시에서 아이를 안고 피란길에 오르는 사람은 평범한 국민이다.

평생 마련한 집과 가게를 잃는 것도 국민이고, 전쟁이 끝난 뒤 폐허가 된 나라를 다시 일으켜 세워야 하는 것도 국민이다.

한반도는 더 위험하다.

우리는 아직 전쟁이 끝난 국가가 아니다. 정전협정으로 총성이 멈춰 있을 뿐이다. 더구나 북한은 핵무기를 보유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런 북한과 전쟁이 벌어졌을 때 대한민국이 원하는 방식으로 100% 전쟁을 통제하고 끝낼 수 있다고 누가 장담할 수 있는가.

설령 대한민국이 군사적으로 승리했다고 가정해 보자.

수많은 장병과 국민이 죽고 서울을 비롯한 도시가 파괴되고 산업시설과 도로, 철도, 발전소가 무너진 뒤에도 그것을 국민에게 온전한 ‘승리’라고 설명할 수 있는가.

북한 역시 마찬가지다.

수많은 북한 주민이 죽고 한반도 전체가 폐허가 된 뒤 어느 한쪽의 깃발이 더 많이 꽂혔다고 그것이 진정한 승리인가.

그래서 우리는 국민의힘과 강경 대응을 주문하는 정치권, 그리고 정부에 더 강한 대응을 요구하는 언론에 묻는다.

정말 그 다음 단계까지 생각하고 있는가.

대북 확성기를 다시 틀자고 말할 수 있다.

대북전단을 다시 보내자고 주장할 수 있다.

참수작전 훈련을 재개하자고 요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다음 질문에도 답해야 한다.

북한이 군사적으로 대응하면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가 보복하고 북한이 재보복하면 어디에서 멈출 것인가.

북한이 핵무기 사용을 위협하며 상황을 끌어올린다면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국민이 죽는다면 누가 책임질 것인가.

이 질문을 던진다고 북한의 도발을 눈감자는 것이 아니다.

이번 DMZ 지뢰 사건에서 확인된 정전협정 위반에는 분명하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사과와 재발 방지를 요구하고 우리 장병을 보호하기 위한 감시와 방어태세도 강화해야 한다.

정부가 잘못했다면 정부 역시 책임져야 한다.

그러나 강한 안보와 전쟁을 피하려는 노력은 반대말이 아니다.

강한 군대를 갖는 이유도 전쟁을 막기 위해서다.

외교를 하는 이유도 전쟁을 막기 위해서다.

대화의 통로를 유지하는 이유 역시 국민을 살리기 위해서다.

평화를 말하는 것을 굴종이라고 부르고, 대화를 말하면 친북이라고 몰고, 군사적 긴장을 낮추려는 모든 시도를 ‘북한 눈치보기’라고 규정하기 시작하면 선택지는 갈수록 좁아진다.

안보의 최종 목적은 상대를 가장 크게 응징하는 데 있지 않다.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과 영토를 지키는 데 있다.

북한 주민의 인권을 말한다면 북한 주민의 생명도 함께 생각하라.

북한군 포로의 자유를 말한다면 북한에 남겨진 가족의 안전도 함께 생각하라.

강력한 국방을 말한다면 그 국방이 지켜야 할 대한민국 국민의 생명을 가장 먼저 생각하라.

그리고 전쟁을 입에 올리기 전에 우크라이나와 가자의 폐허를 보라.

그곳에서 총성이 시작된 뒤 보복과 재보복이 이어지는 동안 전쟁은 정치 지도자들이 처음 그어놓았던 선 안에 머물지 않았다.

전쟁을 정치적 유불리의 언어로 소비해서는 안 된다.

안보는 정권을 공격하기 위한 도구도, 정권을 방어하기 위한 방패도 아니다.

국민의 생명에 관한 문제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는다.

더 강하게 맞서라고 외치는 사람들은 그 외침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 정말 생각해 보았는가.

전쟁이 시작되면 가장 먼저 그 대가를 치르는 사람은 정치인이 아니라 국민이다.

진실과 공정한 천지인뉴스, 정확한 팩트

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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