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700억 포터 뱃노래’라 조롱했다, 200만원 받은 거문도 주민의 명예는 누가 돌려주나 [천지인뉴스]
[사설] ‘700억 포터 뱃노래’라 조롱했다, 200만원 받은 거문도 주민의 명예는 누가 돌려주나 [천지인뉴스]

1t 포터 트럭에 천을 두르고 그 위에서 노를 젓는 사람들. 최근 2026여수세계섬박람회의 ‘거문도 뱃노래’ 공연 영상이 방송과 온라인을 뒤덮었다.
그리고 그 화면 옆에는 어김없이 ‘700억’이라는 거대한 숫자가 따라붙었다.
채널A는 ‘700억 쏟고 트럭서 뱃노래?’라는 제목으로 이 사안을 다뤘다. TV조선도 ‘700억 들인 여수섬박람회 부실 논란’을 제목에 내걸었고, YTN 역시 700억원대 사업비와 트럭 공연을 연결해 소개했다. 일부 방송에서는 “국제행사에서 선보인 공연이라기엔 격이 떨어져 보인다”는 평가까지 직접 내놨다.
시사프로그램과 온라인 공간으로 넘어가면서 조롱은 더욱 커졌다. 포터 트럭 위에 올라탄 거문도 주민들의 모습은 어느새 ‘700억원을 쓰고 만든 국제행사의 수준’을 상징하는 장면처럼 소비됐다.
그런데 언론이 그토록 크게 외쳤던 700억원 가운데 이 공연에 실제 얼마가 들어갔는지 먼저 확인했는가.
후속 취재에서 드러난 사실은 전혀 다른 모습이다.
거문도 뱃노래 공연에는 거문도 주민 25명이 참여했고, 이들에게 지급된 돈은 총 200만원으로 파악됐다. 단순 계산하면 1인당 8만원이다. 숙박비와 식비, 교통비까지 생각하면 이들을 거액의 예산을 받아 조잡한 공연을 만든 사람들처럼 바라볼 근거는 더욱 희박하다.
박람회 조직위원회의 공식 설명도 분명하다. 공연을 한 거문도뱃노래 전수회는 70세 이상 거문도 지역민으로 구성돼 있으며, 해당 공연은 조직위가 박람회 직접사업비를 투입해 기획한 공연 콘텐츠가 아니다. 여수의 전통문화와 무형유산을 소개하기 위한 지자체 연계사업이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700억원은 어디에서 200만원짜리 주민 공연과 하나가 됐는가.
여수세계섬박람회에 투입된 수백억원의 예산이 제대로 사용됐는지 검증하는 것은 언론의 당연한 책무다. 전시관이 부실하다면 전시관을 취재하고, 콘텐츠가 부족하다면 콘텐츠 예산을 추적해야 한다. 조직위가 주민 공연을 제대로 지원하지 못했다면 조직위의 책임을 물어야 한다.
실제로 조직위도 공연 연출이 관람객의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아들이고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주민들에게 충분한 지원을 하지 못해 결과적으로 망신을 당하게 만든 책임이 조직위에 있다는 취지의 설명도 내놨다.
그 책임까지 덮어줄 이유는 없다.
그러나 조직위의 책임을 묻는 것과 200만원을 받은 주민 공연 화면에 700억원이라는 숫자를 붙여 전국적인 조롱거리로 만드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더욱 무거운 책임은 시사프로그램에 출연해 충분한 사실관계 확인 없이 화면만 보고 평가를 쏟아내는 일부 패널들에게도 있다.
방송 스튜디오에서는 한마디일 수 있다. 프로그램이 끝나면 다음 주제로 넘어가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 화면 속에는 실제 사람이 있다.
평생 섬에서 살아온 주민들이 있고, 자신들의 노동요와 전통문화를 보여주겠다며 공연에 참여한 고령의 주민들이 있다.
그 사람들이 어느 날 갑자기 ‘700억원을 쓰고 포터나 끌고 나온 사람들’처럼 국민적 조롱과 멸시의 대상이 됐다면, 그 이미지를 확산시킨 언론과 방송 출연자에게는 아무런 책임도 없는가.
언론의 자유에는 사실을 확인할 책임이 따라야 한다. 시사프로그램 패널에게도 마찬가지다. 방송에 출연해 평가할 자유가 있다면 자신이 평가하는 사안의 기본적인 사실관계를 확인하려는 책임 역시 있어야 한다.
특히 자극적인 숫자와 화면을 결합하는 방식은 조심해야 한다. ‘700억’이라는 숫자를 먼저 보여주고 바로 포터 트럭을 보여주면 시청자가 무엇을 연상할지는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다. 실제 공연비가 200만원이라는 핵심 정보가 빠진 상태라면 그 인상은 더욱 강해진다.
이는 단순히 여수세계섬박람회 하나의 문제가 아니다.
언론이 누군가를 비판할 때 사실관계를 충분히 확인하지 않고 자극적인 화면과 숫자를 앞세우면 평범한 시민 한 사람, 작은 단체 하나도 순식간에 사회적 조롱의 대상으로 만들 수 있다. 인터넷과 SNS가 그 이미지를 다시 퍼뜨리면 최초 보도의 오류나 과장은 나중에 바로잡기도 어렵다.
그래서 정정보도와 후속보도의 책임이 중요하다.
처음에는 ‘700억’이라는 숫자를 크게 내걸었다. 그렇다면 주민 25명이 받은 돈이 총 200만원이었다는 사실이 확인된 지금, 그 사실 역시 처음의 비판만큼 분명하게 알려야 한다.
박람회 예산 703억원은 703억원대로 철저하게 검증하라. 부실한 행정이 있었다면 책임자를 찾아 책임을 물어라. 국민 세금이 낭비됐다면 끝까지 추적하라.
그것이 언론의 역할이다.
하지만 그 책임을 200만원을 받고 고향의 뱃노래를 보여주러 나온 거문도 주민들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
언론의 펜과 방송의 마이크는 사람을 하루아침에 유명하게 만들 수도 있지만, 한순간에 조롱거리로 만들 수도 있다.
그 힘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이제 자신들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는 700억원을 제대로 추적했는가.
아니면 200만원짜리 주민 공연을 700억원짜리 조롱거리로 만드는 데 앞장섰는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처받은 거문도 주민들의 명예는 누가 돌려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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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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