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MBC 보도로 드러난 ‘경찰 수사보고서’ 팩트, 검경의 핑계와 언론의 비겁한 침묵을 비판한다
[사설]MBC 보도로 드러난 ‘경찰 수사보고서’ 팩트, 검경의 핑계와 언론의 비겁한 침묵을 비판한다

정범규 기자
광주 여고생 살인 사건(장윤기 사건)을 둘러싸고 정치권과 주요 언론이 앞다투어 쏟아냈던 서사, 즉 ‘경찰의 무능한 증거 은폐와 검찰의 예리한 보완수사’라는 프레임이 충격적인 객관적 사실 앞에서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그동안 주요 언론과 방송 평론가들은 “경찰이 성범죄 정황을 무책임하게 놓치거나 은폐한 것을 검찰이 예리한 보완수사로 겨우 찾아내 바로잡았다”며 검찰의 능력을 찬양하는 기사를 수백 건씩 쏟아냈다. 이들은 이 사건을 마치 ‘검찰의 보완수사권이 아니면 안 된다’는 식의 여론을 호도하는 결정적 무기로 악용하며 사법 개혁의 본질을 뒤흔들어 왔다.
그러나 MBC 보도와 수사팀 법률대리인이 공개한 형사사법정보시스템(KICS·킥스) 수사보고서라는 객관적 전말은 언론이 구축한 가짜 논리를 완벽하게 뒤엎는다. 경찰 수사팀은 검찰 송치 하루 전, 이미 훼손된 리얼돌, 피의자 휴대폰의 불법 촬영물, 범행 전 저지른 성범죄 정황 등 검찰이 보완수사 성과로 발표했던 강간살인 혐의의 핵심 근거 5가지를 보고서에 상세히 등재했다. 성적 목적 범행에 대한 추정과 법정형 비교는 물론, 10일이라는 구속기한의 한계와 피의자의 완강한 부인 속에서 우선 살인죄로 송치하되 검찰에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취지의 보고를 명확히 남겼던 것이다.
결국 경찰이 강간살인 혐의를 일부러 빼뜨리거나 무능하게 은폐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언론이 만들어낸 ‘경찰의 증거 은폐 대 검찰의 반전 발견’이라는 자극적인 구도는 진실을 심각하게 왜곡했다. 특정 기관의 영웅 만들기와 밥그릇 수호를 위해 실체적 진실을 가린 수사 기관과 언론의 부끄러운 합작품이었음이 입증된 셈이다.
더욱 개탄스럽고 분노를 자아내는 것은 실체적 진실이 드러난 이후 보여주는 언론들의 비겁한 태도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가 멀다 하고 ‘경찰 때리기’와 ‘검찰 칭찬’으로 도배를 하며 국민의 눈과 귀를 가리던 언론들이, 정작 자신들의 논리가 허구였음을 입증하는 MBC 보도가 나오자 약속이라도 한 듯 ‘MBC 보도 인용 단신’ 몇 줄로 때우고 황급히 넘어가고 있다.
수백 편의 자극적 오보와 왜곡 기사로 국민 여론을 호도했으면, 마땅히 사실관계를 명확히 바로잡고 깊이 있는 후속 기획이나 심층 비판 사설을 내놓는 것이 언론의 마땅한 책무다. 그러나 지금의 언론들은 받아쓰기식 단신 한 줄로 비켜서며 자신들의 오판을 은근슬쩍 무마하고, 자신들이 구축해 놓은 ‘경찰 무능·검찰 유능’ 프레임이 깨어지는 것만을 두려워하고 있다. 이는 진실을 추구해야 할 언론의 본분을 저버린 ‘선택적 침묵’이자 비겁한 언론 폭력에 다름 아니다.
경찰의 수사보고서 존재를 알면서도 묵인했거나 진실을 흐리고 있는 검찰과 경찰청 특별수사단 역시 수사 중이라는 핑계 뒤에 숨는 행태를 즉각 중단해야 한다. 기관의 기득권과 조직의 이익을 위해 팩트를 왜곡하고 국민을 속이는 공작 수사는 당장 멈추어야 한다. 아울러 그동안 편향된 기사로 국민 여론을 호도하고 정작 진실이 밝혀지자 단신 몇 줄로 은근슬쩍 넘어가려는 주요 언론들은 국민 앞에 당장 사과하라. 언론이 특정 기관의 기득권 싸움에 부역하며 팩트를 외면하는 한, 공정하고 객관적인 사법 시스템 구축은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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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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