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천지인 영감/연재 소설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뱀꿈에 갇힌 부부]제21화. 집에서 시작한 첫 번째 비방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뱀꿈에 갇힌 부부]제21화. 집에서 시작한 첫 번째 비방

유진에게 다시 연락이 왔을 때는 정환 집안의 내력을 확인한 뒤였다.

정환의 할아버지가 젊은 시절부터 오랫동안 뱀을 잡았다는 사실은 이미 확인됐다.

점상에서 걸렸던 짐승의 피와 살생의 흔적, 그리고 유진이 거의 일 년 동안 반복해서 꾸었던 뱀꿈.

서로 아무 관계가 없다고 하기에는 묘하게 맞물리는 부분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그것만으로 결론을 내리고 싶지 않았다.

점사에서 나온 말 하나가 현실에서 확인됐다고 해서 그 뒤의 모든 해석까지 저절로 정답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한 집안의 오래된 일을 잘못 해석하면 살아 있는 가족들 사이에 원망만 남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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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사님,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유진이 물었다.

“일단 서두르지 마세요.”

“굿 같은 걸 해야 하는 건 아니고요?”

“아직 그런 걸 말할 단계가 아닙니다.”

나는 처음 상담 때부터 같은 생각이었다.

유진에게 일어나는 일이 정말 정환 집안의 살생 내력과 관계가 있는지, 아니면 여러 원인이 뒤섞여 그렇게 나타나는 것인지부터 더 살펴봐야 했다.

유진 친정 쪽에서 잡힌 불사줄도 마음에 걸렸다.

외할머니가 절을 가까이하며 오랫동안 불공을 드렸다는 사실까지 확인된 상태였다.

점상에서는 분명한 말도 나왔다.

“이 집은 불사줄이 세다.”

그리고 뒤이어 나온 말.

“피를 싫어한다.”

그렇다고 유진의 친정과 정환의 집안을 서로 상극인 집안으로 몰아갈 수는 없었다.

한쪽에는 불사를 가까이한 내력이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짐승을 잡으며 살아온 윗대의 흔적이 있었다.

지금까지 확인된 것은 거기까지였다.

“보살님.”

“예.”

“집안 이야기는 조금 더 알아보세요.”

“남편 할아버지 이야기요?”

“예. 이제 뱀을 잡았느냐 안 잡았느냐를 확인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건 이미 확인했으니까요.”

나는 몇 가지를 더 알아보라고 했다.

얼마나 오랫동안 뱀을 잡았는지.

생계를 위해 잡았던 것인지.

잡은 뱀은 어디로 가져갔는지.

뱀 말고 다른 짐승도 잡았는지.

그리고 당시 집안 어른들은 그 일을 어떻게 받아들였는지.

“그런 것까지 알아야 합니까?”

“알 수 있으면 알아보세요. 그렇다고 집안 어른들을 붙잡고 억지로 캐묻지는 말고요.”

“알겠습니다.”

나는 잠깐 생각하다 한 가지를 더 물었다.

“서방님은 요즘 어떻습니까?”

유진이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조금 달라졌어요.”

“어떻게요?”

“전에는 제가 이런 이야기만 하면 싫어했거든요. 그런데 자기 할아버지 이야기를 알고 나서는 먼저 물어봐요.”

“뭘 물어봅니까?”

“어젯밤에도 꿈을 꿨는지, 또 뱀이 나왔는지 그런 거요.”

정환에게도 충격이었을 것이다.

아내가 오랫동안 반복해서 뱀꿈을 꾸었고, 그 사실을 들은 내가 정환의 윗대에서 살생의 흔적을 짚었다.

그 뒤 실제 집안 내력을 확인했더니 할아버지가 오랫동안 뱀을 잡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무속을 믿지 않는 사람이라도 마음 한구석이 걸릴 만한 일이었다.

“법사님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말도 했어요.”

“서방님이요?”

“예. 그런데 아직 진짜 가겠다는 건 아니고요.”

“억지로 데리고 오지는 마세요.”

“왜요?”

“본인이 오고 싶을 때 와야지요.”

믿지 않는 사람을 억지로 점상 앞에 앉혀놓는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감부터 생길 수 있다.

더구나 정환에게는 정환대로 받아들여야 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내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는 것과 무속을 받아들이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그리고 두 분이 오늘부터 집에서 해볼 게 하나 있습니다.”

유진의 목소리가 조금 긴장했다.

“뭔데요?”

“거창한 건 아닙니다.”

“말씀하세요.”

“꿈을 적어보세요.”

“꿈을요?”

“예.”

유진이 잠깐 말이 없었다.

“그것도 비방입니까?”

나는 웃었다.

“비방이라면 비방이지요.”

무속에서 말하는 비방이라고 해서 반드시 부적을 쓰거나 큰 의식을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무엇이 반복되고 있는지 제대로 확인하는 것부터 시작해야 할 때도 있다.

특히 꿈은 그렇다.

며칠 전의 꿈과 어젯밤의 꿈이 시간이 지나면서 뒤섞이기도 한다. 무서운 장면일수록 기억 속에서 더 커지거나 순서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나는 유진이 실제로 어떤 꿈을 얼마나 자주 꾸는지부터 확인하고 싶었다.

“잠에서 깨면 기억나는 것만 바로 종이에 적으세요.”

“어떤 걸 적을까요?”

“날짜와 시간부터 적고, 꿈에 나온 장소가 기억나면 장소도 적으세요. 뱀이 어떻게 나왔는지, 주변에 누가 있었는지, 흰옷 입은 사람들이 나왔는지도요.”

“냄새도 적을까요?”

“꿈속에서 냄새를 맡았다면 그것도 적고, 잠에서 깬 뒤 서방님에게서 이상한 냄새를 느꼈다면 따로 적으세요.”

“몸이 거부하는 것도요?”

“그것도 마찬가지입니다.”

나는 한 가지를 분명하게 당부했다.

“대신 기억나지 않는 걸 억지로 만들어내면 안 됩니다.”

“네.”

“꿈이 생각나지 않는 날은 그냥 기억나지 않는다고 적으세요. 뱀이 안 나온 날은 안 나왔다고 쓰고요.”

“알겠습니다.”

“서방님에게도 부탁할 게 있습니다.”

“남편도 꿈을 적어야 합니까?”

“아니요.”

나는 정환에게는 다른 역할을 맡겼다.

유진이 한밤중에 놀라서 깨면 시간을 확인해달라고 했다.

그날 부부 사이에 특별한 일이 있었다면 그것도 간단히 남겨두라고 했다.

말다툼을 했는지.

평소보다 가까이 앉아 이야기를 오래 했는지.

정환이 유진의 몸에 손을 댔을 때 평소와 다른 반응이 있었는지.

유진이 물었다.

“싸운 것도 적어요?”

“싸웠으면 싸웠다고 적으십시오.”

유진이 작게 웃었다.

“그러면 그것도 제법 적힐 것 같은데요.”

“많이 싸우십니까?”

“요즘은 전보다 덜해요.”

전화기 너머에서 웃음소리가 들렸다.

처음 천신장군암에 찾아왔을 때는 듣지 못했던 웃음이었다.

무엇보다 정환이 조금씩 이 문제 안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것이 중요했다.

유진 혼자 뱀꿈을 꾸고, 유진 혼자 냄새를 맡고, 유진 혼자 남편의 손길을 견디지 못하던 때와는 달랐다.

아직 부부관계가 회복된 것은 아니었다.

각방 생활도 그대로였다.

그러나 정환은 더 이상 아내가 자신을 싫어해서 밀어낸다고만 생각하지 않았다.

유진 역시 남편에게 억지로 가까이 가려고 하지 않았다.

나는 그 정도면 지금은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일주일 정도 해보세요.”

“그다음에는요?”

“집안 이야기도 조금 더 알아보고, 적어둔 것도 가지고 다시 연락 주세요.”

“천신장군암으로 다시 갈까요?”

“그건 그때 정합시다.”

서두를 이유가 없었다.

아직 큰 굿을 이야기할 때도 아니었고, 어떤 의식을 해야 한다고 정해놓을 단계는 더더욱 아니었다.

확인해야 할 것이 남아 있었다.

유진이 전화를 끊기 전 나를 불렀다.

“법사님.”

“예.”

“저 처음 갔을 때보다 조금 덜 무서워졌어요.”

“그래요?”

“예.”

잠깐 뜸을 들이던 유진이 말했다.

“적어도 제가 미쳐서 이러는 건 아닌 것 같아서요.”

나는 그 말에는 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보살님.”

“예.”

“그렇게 단정할 필요도 없습니다.”

“네?”

“보살님이 겪는 일을 전부 귀신 탓으로 돌릴 필요도 없고, 반대로 내가 이상해졌다고 생각할 이유도 없다는 말입니다.”

유진은 조용히 듣고 있었다.

“하나씩 확인하면 됩니다. 서두르지 말고요.”

“알겠습니다.”

전화를 끊고 나는 신명을 모신 안쪽 방으로 들어갔다.

정환의 윗대에서 잡혔던 살생의 흔적은 현실의 집안 이야기와 맞아떨어졌다.

하지만 내 마음에 남아 있는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유진의 친정에서 이어져 온 불사줄.

정환 집안에 남은 살생의 내력.

서로 전혀 다른 두 집안의 흐름이 혼인을 통해 한 가족이 됐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유진에게 이상한 일이 시작됐다.

아직은 어느 것도 함부로 엮을 수 없었다.

나는 신명 앞에 향 하나를 올렸다.

조금 더 지켜봐야 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답을 정해놓고 끌고 가는 일이 아니었다.

유진이 겪고 있는 일을 하나씩 확인하는 것이 먼저였다.

(다음 회에 계속)

글쓴이 | 천신장군암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은 실제 점사와 무속 현장에서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한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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