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뱀꿈에 갇힌 부부] 제24화. 세 가지 비방, 다시 마주 앉는 부부
제24화. 세 가지 비방, 다시 마주 앉는 부부

나는 유진을 바라봤다.
“그리고 서방님 곁에 잡혔던 다른 여자 문제도 없어지는 건 아닙니다.”
유진의 표정이 금세 어두워졌다.
“아직도 있습니까?”
“그 문제는 산 사람의 문제입니다.”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오늘 조상 이야기를 했다고 해서 서방님이 살아서 한 선택까지 조상에게 떠넘기면 안 됩니다.”
유진은 잠시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보살님이 지금 원하는 건 이혼이 아니지요?”
“아니에요.”
“그럼 먼저 두 분 사이에 막혀 있는 것부터 풀어봅시다.”
“어떻게요?”
나는 다시 신령님께 여쭈었다.
큰 굿이 필요한지.
조상을 따로 모셔야 하는지.
아니면 두 사람이 집에서 먼저 해볼 수 있는 일이 있는지.
대신방울을 몇 차례 더 흔들었다.
그러다 한 가지가 분명하게 잡혔다.
나는 방울을 내려놓았다.
“큰 굿은 하지 맙시다.”
유진의 눈이 커졌다.
“굿 안 해도 됩니까?”
“적어도 지금은 필요 없다고 봅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해요?”
“보살님하고 서방님이 직접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유진이 몸을 조금 앞으로 숙였다.
“저희 둘이요?”
“예.”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신명 옆에 둔 작은 목함을 가져왔다.
뚜껑을 열자 안에는 세 가지가 들어 있었다.
가시가 그대로 붙어 있는 마른 엄나무 가지.
황토빛이 밴 무명천.
그리고 붉은 실 한 타래였다.
유진은 말없이 목함 안을 내려다봤다.
생각보다 평범해 보였는지 잠시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이걸로 하는 겁니까?”
“예.”
나는 먼저 엄나무 가지를 집어 들었다.
바짝 말라 있었지만 가시는 여전히 단단하고 날카로웠다.
“엄나무는 보살님도 본 적 있지요?”
“네. 어릴 때 시골집에서 본 것 같아요.”
“옛날에는 집 안으로 좋지 못한 것이 들어오는 걸 막는다는 뜻으로 대문이나 방문 가까이에 엄나무를 두기도 했습니다.”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가지를 다시 내려놓았다.
“오늘 집에 돌아가면 이걸 현관 쪽에 두십시오.”
“문에 걸어놓을까요?”
“아니요. 눈에 띄게 걸 필요 없습니다. 내가 알려주는 자리에 놓으면 됩니다.”
유진이 헷갈리지 않도록 종이에 위치를 적어주었다.
“그리고 안방에도 하나 둡니다.”
유진의 표정이 조금 굳었다.
“제가 남편하고 쓰던 방이요?”
“그 방입니다.”
부부가 각방을 쓰기 시작하면서 오래 비어 있는 시간이 많아진 침실이었다.
나는 엄나무 가지 하나를 따로 짚었다.
“이건 몸에 문지르거나 태우는 게 아닙니다. 그냥 정해준 곳에 놓으세요.”
“얼마 동안요?”
“오늘 밤은 그대로 두십시오. 그다음은 내가 다시 알려드리겠습니다.”
유진은 내가 불러주는 내용을 종이에 적었다.
두 번째로 무명천을 꺼냈다.
“이건 뭡니까?”
“오늘 밤 서방님이 씻고 나오면 이걸로 등과 어깨를 한번 닦아주세요.”
유진의 손이 멈췄다.
“제가요?”
“예.”
“몸을 만져야 하네요.”
나는 유진의 얼굴을 살폈다.
아직 남편의 손길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이었다.
그런 유진에게 자신이 먼저 남편의 몸을 닦아준다는 것부터 쉽지 않을 수 있었다.
“겁이 나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유진이 나를 바라봤다.
“안 해도 돼요?”
“비방한다고 사람을 억지로 몰아붙이면 그게 무슨 비방입니까.”
나는 무명천을 유진 앞으로 밀었다.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어떻게 닦아요?”
“서방님이 씻고 나오면 등부터 천천히 닦아주십시오. 세게 문지를 필요 없습니다.”
“그러면서 뭘 해야 합니까?”
“속으로 빌면 됩니다.”
나는 짧은 축원문을 일러주었다.
“윗대의 묵은 것은 윗대에서 거두어 가고, 산 사람에게 묻은 것은 오늘 여기서 벗겨주소서.”
유진이 작은 목소리로 따라 했다.
“윗대의 묵은 것은 윗대에서 거두어 가고, 산 사람에게 묻은 것은 오늘 여기서 벗겨주소서.”
“그 정도면 됩니다.”
“꼭 똑같이 외워야 합니까?”
“아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말 한두 마디 다르다고 신령님이 못 알아듣는 것도 아닙니다. 뜻을 알고 마음으로 비세요.”
유진은 축원문을 다시 한번 읽어봤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남아 있는 붉은 실을 바라봤다.
“저건요?”
나는 붉은 실을 집어 들었다.
“오늘 하는 것 가운데 이게 가장 중요합니다.”
유진의 얼굴에 다시 긴장이 돌았다.
“무슨 용도입니까?”
“보살님하고 서방님이 함께 쓰는 겁니다.”
“어떻게요?”
“오늘 밤 두 분이 같은 방에 들어가세요.”
유진의 얼굴이 굳었다.
나는 곧바로 덧붙였다.
“잠자리를 가지라는 말이 아닙니다.”
유진이 나를 쳐다봤다.
“두 분이 지금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몸부터 확인하는 게 아닙니다.”
“그럼요?”
“같은 공간에 있는 것부터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나는 붉은 실을 유진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서방님이 동의하면 서로 손목에 이 실을 묶어주세요.”
“둘 다요?”
“예.”
“왜 손목에 묶습니까?”
“두 사람이 아직 부부의 인연을 놓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유진은 손바닥 위의 붉은 실을 한동안 내려다봤다.
“묶고 나서는요?”
“이야기하세요.”
“이야기요?”
“지난 일 년 동안 하지 못했던 이야기.”
유진의 표정이 굳었다.
“서방님도 할 말이 많을 겁니다. 보살님도 그렇고요.”
유진은 대답하지 않았다.
“손목에 실 하나 묶었다고 갑자기 모든 것이 좋아지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오늘 밤만큼은 서로 피하지 마세요.”
나는 말을 이어갔다.
“손을 잡을 수 있으면 잡고, 가까이 앉을 수 있으면 가까이 앉으세요.”
“남편이 저를 안아도 괜찮을까요?”
“그건 보살님 몸이 결정하게 두세요.”
유진이 잠시 이해하지 못한 듯 바라봤다.
“몸이 싫다고 하면 멈추고, 괜찮으면 조금 더 가까이 가는 겁니다.”
“제가 또 밀어내면요?”
“그러면 멈추면 됩니다.”
“그럼 실패한 거 아닌가요?”
“아닙니다.”
나는 분명하게 말했다.
“보살님이 거의 일 년을 그렇게 살았습니다. 하룻밤 비방으로 사람이 확 달라진다면 세상에 고생할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유진이 작게 웃었다.
“그렇네요.”
“오늘의 목적은 잠자리가 아닙니다.”
나는 붉은 실을 가리켰다.
“서방님이 보살님에게 정말 두려운 사람인지, 아니면 보살님 몸이 다른 무엇과 남편을 겹쳐 받아들이고 있는지 다시 확인해보는 겁니다.”
유진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다 나를 바라봤다.
“법사님.”
“예.”
“제가 부산에서 이걸 하고 있으면 법사님은요?”
“나도 할 일이 있습니다.”
나는 신명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오늘 밤 자시에 여기서 축원을 올릴 겁니다.”
“자시면 몇 시예요?”
“밤 열한 시부터 새벽 한 시 사이입니다.”
“그때 저희도 해야 합니까?”
“가능하면 그 시간에 맞추세요.”
유진의 얼굴에 긴장이 번졌다.
“법사님은 무슨 축원을 하십니까?”
“두 집안의 윗대를 함께 청해볼 생각입니다.”
“저희 친정하고 시댁이요?”
“예.”
유진의 친정에는 불사를 가까이했던 흐름이 있었다.
정환의 윗대에는 오래된 살생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서로 다른 두 갈래가 후손의 혼인을 통해 한집에서 만났다.
“그럼 정말 조상끼리 싸우는 겁니까?”
“그렇게 생각하지 마세요.”
나는 바로 말했다.
“우리가 본 적도 없는 일을 사람 사는 것처럼 만들어놓고 누가 누구와 싸운다고 하면 이야기가 끝도 없습니다.”
“그러면 왜 함께 청합니까?”
“풀어달라고 빌기 위해서입니다.”
“뭘요?”
“윗대에서 묵은 것은 윗대에서 거두고, 산 사람에게까지 이어진 것이 있다면 산 사람에게서는 끊어달라고.”
유진은 말없이 들었다.
“무엇보다 두 사람이 서로 등을 돌리지 않게 해달라고 빌 겁니다.”
유진의 눈가가 붉어졌다.
나는 종이 한 장과 펜을 내밀었다.
“지금 사는 주소를 적으세요.”
유진이 부산의 집 주소를 적었다.
동과 호수까지 확인한 뒤 나는 종이를 접어 신명 앞에 올려놓았다.
“오늘 밤 이 주소를 놓고 축원하겠습니다.”
유진은 한동안 그 종이를 바라봤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법사님, 그런데 비용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무슨 비용 말입니까?”
“오늘 이것도 주시고 밤에 축원까지 해주신다면서요.”
“오늘 점사비 준비해왔지요?”
“네.”
“얼마라고 했습니까?”
“십만 원이요.”
“그거면 됐습니다.”
유진의 눈이 커졌다.
“축원비는요?”
“없습니다.”
“그래도…….”
“엄나무 몇 가지하고 천 조금, 실 조금 주면서 무슨 큰돈을 받습니까.”
나는 손을 내저었다.
“우선 해보고 이야기합시다.”
“굿은 정말 안 해도 됩니까?”
“지금은 하지 않습니다.”
나는 유진을 바라봤다.
“효험을 보지도 않았는데 겁부터 줘서 굿하자고 할 이유가 없지요.”
유진의 눈에 눈물이 맺혔다.
“인터넷에서 보니까 조상 문제라고 하면 큰돈부터 이야기하는 곳도 많다고 해서 겁났어요.”
“나중에 두 분 사이가 정말 좋아지거든 그때 다시 오세요.”
“그때는요?”
“신령님께 감사하다고 촛불 하나 밝히고, 제물 올리고 싶으면 형편 되는 만큼 올리면 됩니다.”
“정말 그것만 하면 됩니까?”
“사람 살자고 하는 일인데 돈 때문에 사람이 더 죽을 맛이면 되겠습니까.”
유진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나는 목함을 닫아 유진에게 건넸다.
“이제 부산으로 가세요.”
유진이 두 손으로 목함을 받아들었다.
“법사님.”
“예.”
“오늘 밤 잘할 수 있을까요?”
“잘하려고 하지 마세요.”
“네?”
“시키는 대로 완벽하게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 오히려 겁만 납니다.”
나는 말했다.
“남편분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할 수 있는 만큼만 하세요.”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가지.”
“네.”
“오늘 밤 평소와 다른 일이 생겼다고 해서 무조건 귀신이 나타났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유진이 눈을 깜빡였다.
“바람이 불 수도 있고 집에서 소리가 날 수도 있습니다. 사람이 긴장하면 평소에는 지나쳤던 냄새나 작은 소리도 크게 느껴질 수 있고요.”
“알겠습니다.”
“정말 감당하기 어려운 일이 생기면 그때 전화하세요.”
유진은 신명 앞에 정성껏 절을 올리고 밖으로 나갔다.
오후 햇살이 마당 한쪽으로 길게 기울어 있었다.
유진은 목함을 조심스럽게 차에 실었다.
“저 갈게요.”
“운전 조심하세요.”
차가 좁은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내려갔다.
마을 어귀를 돌아 차량이 보이지 않게 된 뒤 나는 안으로 들어왔다.
신명 앞에는 유진이 적어놓은 부산 주소가 놓여 있었다.
나는 그 종이를 촛대 아래에 두었다.
그리고 자시에 올릴 축원을 준비했다.
향과 초를 살피고 북과 꽹과리도 손이 닿는 곳에 옮겨놓았다.
이번 일은 유진 혼자 하는 비방이 아니었다.
부산에서는 살아 있는 두 사람이 다시 마주 앉아야 했다.
같은 시각 하동에서는 내가 신령님 앞에서 그 두 사람이 다시 서로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길을 열어달라고 빌어야 했다.
해가 산 너머로 넘어가고 있었다.
자시까지는 아직 몇 시간이 남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