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제57화. 유튜브를 흉내 내는 점사, 깊어지는 지옥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57화. 유튜브를 흉내 내는 점사, 깊어지는 지옥

자존심을 쓰레기통에 처박듯 던져버리고 일일이 지인들에게 연락을 돌린 보람이 전혀 없지는 않았다. 선영 보살의 처절한 소식을 들은 가까운 지인들이 안타까운 마음에 주변 인맥을 하나둘 소개해 주기 시작하면서, 드디어 삐걱거리는 낡은 신당 문을 열고 진짜 점사 손님들이 들어서기 시작한 것이다.
“저기…… 여기가 박 보살님 신당 맞나요? 지인 소개받고 찾아왔는데요.”
손님이 찾아왔다는 사실에 가슴이 터질 듯 두근거렸지만, 막상 복채를 받고 불단 앞에 손님을 앉혀놓은 선영은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공포를 느꼈다.
내림굿만 받았을 뿐, 손님의 사주를 어떻게 받아 적어야 하는지, 방울과 부채는 언제 흔들어야 하는지, 무엇보다 신령님의 공수를 어떤 말투와 어떤 순서로 전해야 하는지 가르쳐준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불단 위의 별상할머니와 신령님들은 묵묵히 바라볼 뿐, 선영의 입은 번번이 봉해진 듯 열리지 않았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손님이 돌아간 뒤, 선영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신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몇 번이나 신호음이 울린 끝에 연결된 신엄마는, 선영의 절박한 하소연을 듣고 나그네 다독이듯 입으로만 부드럽게 달래기 시작했다.
“선생님, 점사 손님이 찾아오셨는데 제가 어떻게 점사를 풀어줘야 할지 전혀 모르겠어요. 제발 가르침을 좀 주세요…….”
“아이고, 선영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라. 무당 점사라는 게 어디 책으로 공부해서 나오는 거더냐? 신당 불단 앞에 앉아서 네 머릿속에 번쩍 스치는 생각, 네 입에서 자기도 모르게 툭 튀어나오는 말, 그게 다 신령님이 네 입을 빌려 내리시는 공수란다.”
“네? 그냥 제 입에서 나오는 대로요……?”
“그래, 내 제자야. 네 직성을 믿고 신령님께 입을 내맡기면 다 자연스럽게 나오게 되어 있어. 그러니까 너무 겁먹지 말고 마음 편하게 먹고 손님 맞아라. 나도 지금 지방 굿 때문에 바쁘니까 기도 잘 올리고 있고.”
전화는 부드럽게 끝났지만, 정작 선영의 머릿속은 여전히 하얗게 탈색되어 갔다. ‘그저 입에서 나오는 대로 말하라’는 그럴싸하지만 막연한 달램은, 캄캄한 바다에 빠진 선영에게 아무런 실질적인 도구가 되어주지 못했다.
결국 혼자 힘으로 점사를 풀어내야 했던 선영 보살은 기이한 선택을 하기 시작했다. 밤마다 잠을 이루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켜서 평소 자주 보던 무속 유튜브 채널들을 뒤지기 시작한 것이다.
유명하다는 무속인 유튜버들이 손님을 앉혀놓고 기선을 제압하는 모습, 눈을 흘기며 조상 타령을 하는 모습, 반말과 존댓말을 섞어가며 공수를 내리는 말투, 방울을 크게 흔들며 호령하는 행동까지…… 선영은 밤새 화면을 뚫어져라 바라보며 그들의 행동과 어투, 흉내 내는 법을 머릿속에 억지로 쑤셔 넣었다.
그리고 다음 날, 손님이 찾아오면 선영은 유튜브에서 보았던 무속인들의 모습대로 연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네, 집안에 칼 맞아 죽은 조상 있지? 그 조상이 지금 자네 어깨를 누르고 있어!”
괜히 목소리에 힘을 주고, 손님의 표정을 살피며 그럴싸한 무속 용어를 섞어 공수랍시고 뱉어냈다. 하지만 손님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뱉어내는 순간에도, 선영의 가슴속에서는 서늘한 죄책감과 불신이 폭풍처럼 휘몰아쳤다.
‘이게 정말 신령님이 주신 공수인가? 아니면 내가 어제 유튜브에서 본 무당의 말을 그저 흉내 내고 있는 거짓말인가?’
스스로도 자신이 내뱉는 말이 신의 소리인지, 인간의 얄팍한 흉내인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손님이 “맞아요, 보살님!” 하고 놀라면 잠시 안도했다가도, 이내 자신이 사기꾼이 된 것 같은 깊은 수치심에 영혼이 갈갈이 찢겨 나갔다. 손님이 돌아가고 나면, 선영은 신당 바닥에 무릎을 꿇고 제단 위의 신령님들을 바라보며 피눈물을 흘렸다.
“신령님…… 제발 참된 영의 눈을 열어주세요. 제가 지금 무슨 짓을 하고 있는 겁니까…… 손님한테 사기를 치고 있는 건지, 신명을 모시고 있는 건지 모르겠습니다. 제발 절 좀 살려주세요…….”
빚 독촉은 매일같이 목을 죄어오고, 신엄마의 무책임한 방치 속에 유튜브 무당을 흉내 내며 겨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처참한 신세. 참된 신제자가 되겠다던 마지막 자존감마저 깨끗이 부서져 내린 낡은 신당 안에서, 선영 보살의 하루하루는 그야말로 숨을 쉬는 것조차 고통스러운 지옥 그 자체였다.
(다음 회에 계속) /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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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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