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뉴스] (사설)2월 14일,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천지인뉴스] 2월 14일, 안중근 의사 사형선고일을 우리는 어떻게 기억하고 있는가
정범규 기자


1910년 2월 14일,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이 선고된 역사적 날
일제 침략에 맞선 의거와 재판 과정, 국제법적 정당성 주장
발렌타인데이로 소비되는 현실 속에서 역사 기억의 의미 재조명
2월 14일은 오늘날 대중적으로는 발렌타인데이로 인식된다. 그러나 대한민국의 역사에서 이 날은 결코 가볍게 지나칠 수 없는 날짜다. 1910년 2월 14일, 일본 제국주의 법정은 하얼빈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한 안중근 의사에게 사형을 선고했다. 이는 한 개인에 대한 형벌 선고를 넘어, 제국주의 침략에 맞선 민족 저항을 범죄로 규정한 정치적 판결이었다.
안중근 의사는 1909년 10월 하얼빈 역에서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고 침략 정책을 주도한 이토 히로부미를 처단했다. 그는 자신의 행위를 단순한 개인적 복수가 아닌, 동양 평화를 지키기 위한 전쟁 행위라고 규정했다. 재판 과정에서도 자신을 대한의군 참모중장으로 소개하며, 이는 침략에 대한 정당한 전쟁 행위임을 강조했다. 그러나 일본 측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고, 결국 사형을 선고했다. 그로부터 한 달여 뒤인 3월 26일, 그는 뤼순 감옥에서 순국했다.
중요한 것은 사형선고일이 갖는 상징성이다. 2월 14일은 한 청년 독립운동가의 생명이 국가폭력에 의해 단죄된 날이면서, 동시에 조국 독립을 향한 의지가 법정에서도 굴하지 않았음을 확인한 날이기도 하다. 그는 옥중에서 동양 평화론 집필에 몰두하며, 제국주의가 아닌 공존과 협력의 질서를 구상했다. 사형수의 처지에서도 미래를 설계한 그의 시야는 단지 과거의 영웅담이 아니라 오늘의 정치와 외교를 돌아보게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재 우리의 기억은 어떠한가. 초콜릿과 상업적 기념일로 덮여버린 2월 14일의 이면에는 식민 지배에 맞서 싸웠던 치열한 저항의 역사가 자리하고 있다. 역사는 자연스럽게 기억되지 않는다. 의식적으로 되새기고 기록하며 전승할 때만 살아남는다. 특히 오늘날 역사 왜곡과 식민지 근대화론 같은 위험한 담론이 고개를 드는 현실에서, 안중근 의사의 사형선고일을 기억하는 일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역사 인식의 기준을 세우는 일이다.
안중근 의사의 선택은 폭력이 아닌 정의의 문제였다. 침략과 강탈이 합법으로 둔갑하던 시대에, 그는 불의에 대한 저항이야말로 진정한 정의라고 믿었다. 그리고 그 신념은 사형선고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2월 14일을 기억하는 것은 과거를 소비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늘의 민주주의와 주권이 어떻게 지켜졌는지를 되새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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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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