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DMZ 지뢰 사고, 왜 벌써 ‘북한 소행’인가…안보일수록 성급한 단정보다 증거가 먼저다
DMZ 지뢰 사고, 왜 벌써 ‘북한 소행’인가…안보일수록 성급한 단정보다 증거가 먼저다
정범규 기자
서부전선 비무장지대(DMZ)에서 발생한 지뢰 추정 폭발 사고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공방이 거세지고 있다. 국민의힘은 북한군이 매설한 지뢰일 가능성을 제기하며 정부와 군의 현장조사가 늦었다고 비판하고 있지만, 현재까지 폭발물이 북한 지뢰인지 우리 군 지뢰인지, 북한에서 유실된 지뢰인지조차 최종적으로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 21일 육군 25사단 관할 서부전선 DMZ에서 신규 수색로를 개척하던 장병들이 미상의 폭발로 부상을 입었다. 간부 3명이 다쳤고 이 가운데 1명은 발목이 절단되는 중상을 입었다. 무엇보다 부상 장병들의 치료와 회복이 우선돼야 할 중대한 군 사고다.
군과 유엔군사령부는 27일 사고 현장조사에 나섰지만 폭발 추정 지점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현장이 미확인 지뢰지대인 데다 수색로조차 제대로 확보되지 않은 위험지역이기 때문이다. 조사팀은 오전 9시부터 일몰까지 지뢰탐지기를 이용해 이동로를 확보하며 정밀 탐색을 진행했지만 추가 폭발 가능성과 조사 인원의 피로도를 고려해 작업을 중단했다.
이 사실 하나만 보더라도 이번 현장조사를 일반적인 사건 현장 감식과 같은 잣대로 바라보기는 어렵다.
국민의힘은 사고 직후부터 정부와 군의 대응을 강하게 비판했다.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는 북한군이 최근 매설한 지뢰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주장하며 정부가 고의로 현장조사를 지연했다면 이적행위이며 외환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까지 내놓았다. 탄핵과 구속도 거론했다.
정점식 원내대표 역시 북한 소행이 확실시되는 상황에서 조사를 늦추고 있다며 정부를 비판했다.
야당이 장병 3명이 다친 중대한 사고에 대해 신속하고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장조사가 늦어질수록 비와 지형 변화 등으로 증거가 훼손될 수 있다는 우려 역시 정부와 군이 가볍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하지만 신속한 조사를 요구하는 것과 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전에 원인을 확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현재 군의 공식 입장은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조사한다는 것이다.
북한군이 의도적으로 지뢰를 매설했을 가능성, 북한 측 지뢰가 비나 하천 등을 통해 유실됐을 가능성, 기존에 존재하던 우리 군 지뢰일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확인해야 한다.
특히 군은 폭발물 잔해와 파편, 장병들의 진술과 작전 당시 자료 등을 분석하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이번 사건의 성격은 완전히 달라질 수 있다.
북한군이 군사분계선을 넘어 의도적으로 지뢰를 매설한 것으로 확인된다면 이는 엄중한 안보 사안이다. 정부는 조사 결과를 국민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그에 상응하는 대응에 나서야 한다.
반대로 북한에서 유실된 지뢰이거나 기존 지뢰에 의한 사고로 확인된다면 사건의 성격과 대응 방식 역시 달라져야 한다.
그래서 더욱 정확한 조사가 필요하다.
국민의힘은 2015년 북한 목함지뢰 사건 당시 사고 이틀 만에 현장조사가 이뤄졌다며 이번 정부의 대응이 지나치게 늦다고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군은 당시와 현재의 현장 조건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2015년 사고 지역은 우리 군이 수시로 출입하면서 비교적 이동로와 안전이 확보돼 있던 지역이었던 반면 이번 사고 장소는 군사분계선과 인접한 미확인 지뢰지대로, 새롭게 수색로를 개척하던 과정에서 폭발이 발생했다.
실제로 27일 군과 유엔사 관계자 등 40여 명이 투입됐음에도 하루 종일 지뢰탐지기를 동원하고도 폭발 지점까지 들어가지 못했다.
현장에 들어간 조사팀조차 접근하지 못할 정도의 지역이라면 왜 조사가 신중하게 진행되는지도 함께 살펴야 한다.
무엇보다 첫 사고의 원인을 밝히려다 또 다른 장병이 지뢰를 밟는 일이 발생해서는 안 된다.
조사가 하루 빨리 끝나는 것도 중요하지만 조사 장병들이 무사히 돌아오는 것은 더 중요하다.
정부와 군에도 책임은 있다.
‘위험하다’는 설명만 반복해서는 국민의 의문을 모두 해소할 수 없다. 어떤 안전조치를 준비했고 왜 현장 진입에 시간이 필요했는지, 현재 어떤 조사가 진행되고 있으며 언제쯤 1차 분석 결과가 나올 수 있는지 가능한 범위에서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조사가 끝난 뒤 결과 역시 숨김없이 공개해야 한다.
북한 소행으로 확인된다면 북한 소행이라고 발표하면 된다.
우리 군 지뢰라면 그것 역시 사실대로 밝히면 된다.
북한 지뢰가 자연적으로 유실돼 내려온 것이라면 그 결과 또한 그대로 국민에게 설명해야 한다.
안보 문제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조사하기도 전에 정치권이 원하는 결론을 먼저 만들어놓는 것이다.
특히 북한의 의도적인 공격 여부가 확인되지 않은 단계에서 ‘이적행위’, ‘외환죄’, ‘탄핵’, ‘구속’까지 거론하는 것은 과학적 조사보다 정치적 판단이 앞선다는 비판을 받을 수 있다.
장병의 발목을 앗아간 폭발물이 무엇이었는지 반드시 밝혀야 한다.
그러나 그 답은 여야의 정치적 주장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다.
현장의 파편과 화약 성분, 지뢰의 형태와 위치, 당시 작전 상황과 현장조사 결과가 말해줘야 한다.
안보일수록 빠른 발표보다 정확한 발표가 중요하다.
정부와 군은 안전을 확보하면서 최대한 신속하게 조사하고, 확인된 결과를 있는 그대로 국민 앞에 내놓아야 한다. 정치권 역시 그 결과가 나오기 전까지 확인되지 않은 가능성을 사실로 단정하는 데에는 신중해야 한다.
성급하게 범인을 정하는 것이 안보가 아니다.
정확한 증거로 원인을 밝히고, 그 결과에 따라 책임을 묻고 재발을 막는 것. 그것이 이번 사고에서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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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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