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판결은 판사가 내리지만, 사법부의 신뢰는 국민이 결정한다 [천지인뉴스]
[사설] 판결은 판사가 내리지만, 사법부의 신뢰는 국민이 결정한다 [천지인뉴스]
사법부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할 때다. 국민은 왜 법원의 판결을 두고 공정함보다 불신을 먼저 이야기하는가. 왜 판결이 나올 때마다 법률의 원칙보다 재판부의 성향과 피고인의 사회적 지위를 먼저 의심하는가. 법원이 그 질문에 답하지 못한다면 사법부의 독립은 국민의 신뢰를 잃은 채 권위만 주장하는 구호가 될 수 있다.

지난 10월 30일 서울중앙지법은 12·3 비상계엄과 관련해 내란중요임무종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직 군인 8명에게 1심에서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이른바 노상원 ‘햄버거 회동’ 참석자들도 포함됐다. 재판부는 피고인들에게 국헌문란 목적이 있었다고 인정하기 어렵고, 일부는 급박한 상관의 명령을 적법한 것으로 믿고 수행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이 판단을 둘러싼 의문은 결코 가볍지 않다. 군인은 헌법을 수호해야 할 의무를 지닌다. 국회와 선거관리위원회 등에 군 병력이 투입된 비상계엄 상황에서 명령의 위헌·위법성을 어느 시점에 인식할 수 있었는지, 최초 명령을 받은 이후에도 임무를 계속 수행했다면 형사책임을 어떻게 판단해야 하는지 따져야 한다.
특검은 이번 판결이 비상계엄의 위헌·위법성에 관한 기존 판단과 배치된다며 반발했다. 법원의 무죄 판단에도 법적 근거는 있다. 형사재판에서는 개별 피고인의 고의와 범죄 구성요건을 합리적 의심 없이 입증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재판부가 내린 결론의 설득력까지 자동으로 확보되는 것은 아니다. 헌정질서를 뒤흔든 사건일수록 판단의 근거는 더욱 치밀하고 명료해야 한다.
같은 날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김건희 씨에게 전달된 명품 가방 사건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반면 김 의원의 배우자는 청탁금지법 위반으로 벌금 500만 원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배우자의 가방 제공은 인정하면서도 김 의원이 공모했다는 객관적 증거는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 역시 법률적으로 구분해야 할 부분이 있다. 배우자가 유죄라고 남편까지 자동으로 유죄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대통령 배우자에게 고가의 선물이 전달된 사건에서 정치권력과 금품 제공의 관계가 어디까지 규명됐는지 국민이 묻는 것은 당연하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권력 감시의 원칙은 서로 적이 아니다.
최근 오세훈 서울시장의 여론조사 비용 대납 의혹 사건에서도 1심의 유죄 판단이 항소심에서 무죄로 뒤집혔다. 항소심은 핵심 진술의 신빙성과 혐의 입증이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항소심이 1심을 바로잡는 일 자체는 사법제도의 정상적인 기능이다. 문제는 서로 다른 판단의 이유를 국민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하고 있는가에 있다.
이런 논란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과거 라임 사건 관련 검사 술접대 재판에서는 접대 금액의 산정과 증명 문제가 무죄 판단의 쟁점이 됐다. 반면 생계형 물품 절도 사건에서는 소액의 피해에도 실형이 선고된 사례가 있다. 물론 절도 사건의 반복 범행과 전과, 접대 사건의 법정 구성요건은 다르다. 이를 무시하고 단순히 금액만 비교하는 것은 정확하지 않다.
그럼에도 국민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오래된 말을 다시 꺼내는 현실은 외면할 수 없다. 가난한 사람은 법의 엄격함을 먼저 경험하고, 권력과 자원을 가진 사람은 정교한 법률적 방어를 충분히 활용할 수 있다면 형식적인 법 앞의 평등만으로 실질적인 공정성을 설명하기 어렵다.
2014년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과 12·3 비상계엄 관련 재판을 함께 바라보는 국민도 있다. 정당 해산에 관한 헌법재판과 개인의 내란 혐의를 판단하는 형사재판은 법적 성격과 입증 기준이 다르다. 두 결론을 그대로 대조해 모순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적 기본질서를 지킨다는 헌법적 가치가 국가권력의 헌정질서 침해를 다루는 과정에서 어떻게 구현되는지 묻는 것은 정당하다.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판결의 유무죄만으로 생겨나지 않는다. 학연과 지연, 전관예우, 정치적 성향이 재판에 영향을 미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반복되고, 이를 해소할 투명한 장치가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때 불신은 깊어진다. 특정 사건에서 실제 부당한 영향력이 작용했다고 단정하려면 증거가 필요하다. 그러나 의혹을 검증할 제도를 마련하라는 요구까지 근거 없는 공격으로 치부해서는 안 된다.
법관은 어떻게 만들어지는가. 과거 사법시험과 사법연수원 중심의 선발제도에서 오늘날 법학전문대학원과 변호사시험, 법조경력 등을 거치는 임용체계로 변화했다. 법률 지식과 경력은 법관의 필수 자격이다. 그러나 시험 성적과 법조 경력이 공정한 판단 능력이나 권력으로부터의 독립성을 완벽하게 보증하지는 않는다.
헌법 제103조는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정한다. 여기서 말하는 양심은 개인적 호불호나 정치적 신념을 판결에 투영할 자유가 아니다. 헌법과 법률에 충실한 직업적 양심이어야 한다. 법관의 양심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판결의 오류와 불일치, 이해충돌 가능성까지 검증하지 못한다면 독립은 책임 없는 권한으로 변질될 위험이 있다.
일부 온라인 공간에서는 차라리 판사를 인공지능으로 대체하자는 냉소까지 등장한다. AI에게 법전과 판례를 학습시키고 사법시험 문제를 풀게 한다면 어떻겠느냐는 질문도 나온다. 이것을 단순한 비아냥으로 넘길 일인가.
AI가 시험 문제를 잘 푸는 것과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재판을 공정하게 수행하는 것은 다르다. AI 역시 학습자료의 편향과 오류에서 자유롭지 않으며 판결에 대한 민주적 책임을 스스로 질 수도 없다. 인간 법관을 무조건 AI로 교체하는 것은 해답이 아니다.
하지만 이 질문이 등장한 이유만큼은 사법부가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국민은 적어도 동일한 법률과 유사한 사실관계 앞에서 납득 가능한 기준이 적용되기를 바라는 것이다. AI를 판례 분석과 양형 편차 점검, 판결문 오류 검토에 보조적으로 활용하는 방안은 충분히 검토할 수 있다.
사법개혁은 법관의 독립을 약화하는 방식이 아니라 독립에 걸맞은 책임을 강화하는 방향이어야 한다. 재판 배당과 이해충돌 관리의 투명성을 높이고, 전관예우를 차단할 실효성 있는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 판결문 공개와 접근성을 확대하고, 유사 사건 사이에 현저한 판단 차이가 나타날 때 법원이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적 능력에 따른 변론권 격차를 줄이기 위한 공공 법률지원도 강화해야 한다.
무죄 판결을 내렸다는 이유만으로 판사를 공격해서는 안 된다. 반대로 판사가 내린 판결이라는 이유만으로 비판을 봉쇄해서도 안 된다. 재판의 독립은 사법부를 국민의 질문으로부터 격리하는 특권이 아니다.
사법부의 권위는 법복과 법정의 높은 자리에서 나오지 않는다. 힘없는 사람과 권력자에게 같은 원칙이 적용되고, 판결의 이유가 공개적인 검증을 견딜 때 비로소 생긴다. 국민이 판사를 AI로 바꾸자는 말까지 꺼내는 현실을 법관들은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무너진 신뢰를 회복할 책임은 정치권이나 국민에게 떠넘길 수 없다. 판결은 판사가 내리지만, 그 판결을 신뢰할지는 국민이 결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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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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