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판사를 AI로 바꾸자는 국민들, 그 비아냥 속에 담긴 사법 불신 [천지인뉴스]
[사설] 판사를 AI로 바꾸자는 국민들, 그 비아냥 속에 담긴 사법 불신 [천지인뉴스]

판사를 인공지능(AI)으로 대체하자는 목소리가 나온다. 법전과 헌법, 판례를 모두 학습시킨 AI가 인간 판사보다 공정한 판결을 내릴 수 있지 않겠느냐는 주장이다. 얼핏 들으면 사법부를 향한 비아냥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말속에는 오랫동안 쌓여온 사법 불신이 담겨 있다. 국민이 법관의 판단보다 기계의 판단을 더 신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사법부는 그 이유부터 돌아봐야 한다.
지난 7일 서울고등법원 형사7부는 윤석열 전 대통령과 명태균 씨의 정치자금법 위반 사건 항소심에서 두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1심에서 윤 전 대통령에게 징역 2년, 명 씨에게 징역 1년 6개월을 선고했던 판단이 뒤집힌 것이다.
1심은 여론조사 일부를 무상으로 제공받은 행위에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반면 항소심은 해당 여론조사 제공을 정치자금법상 재산적 이익의 기부로 인정하기 어렵고, 당사자 사이에 무상 제공에 관한 의사 합치가 있었다는 증거도 부족하다고 봤다.
같은 사건을 놓고 재판부의 판단이 이처럼 달라졌다. 물론 항소심에서 1심 판결이 뒤집혔다고 해서 어느 한쪽 재판부가 잘못된 의도를 가지고 판결했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상급심에서 법률 해석과 증거 판단을 다시 검토하는 것은 사법제도의 정상적인 기능이다.
그럼에도 국민은 묻게 된다. 동일한 사건의 증거를 놓고 왜 한쪽에서는 유죄가 되고 다른 쪽에서는 무죄가 되는가. 그 차이는 순전히 법률적 판단에서 비롯된 것인가. 판사의 가치관이나 주관적 견해가 개입할 가능성은 없는가.
대한민국 헌법 제103조는 법관이 헌법과 법률에 따라 양심에 의하여 독립하여 심판한다고 규정한다. 법관의 독립은 민주주의를 지탱하는 중요한 원칙이다. 정치권력이나 외부 압력에 흔들리지 않고 재판하라는 헌법적 명령이기도 하다.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양심이 언제나 객관적이고 공정한 판단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판사도 인간이다. 성장 과정에서 형성된 가치관이 있고, 정치적·사회적 문제에 대한 개인적 인식도 존재한다. 아무리 법률 전문가라 해도 자신이 살아온 환경과 경험에서 완전히 벗어나기는 어렵다.
그렇다면 법관의 독립을 보장하는 것과 법관의 판단을 검증하는 것은 구분해야 하지 않겠는가. 독립적인 재판을 존중해야 한다는 이유로 판결에 대한 합리적인 비판까지 막을 수는 없다.
국민 사이에서 반복되는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표현 역시 같은 맥락에서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력에 따른 변호인 조력의 차이, 전관예우에 대한 의혹, 사회적 지위에 따라 법의 적용이 달라지는 것 아니냐는 불신은 사법부가 외면할 문제가 아니다.
물론 이런 의혹이 모든 판사에게 해당하거나 실제 판결의 부당성을 입증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민이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이유를 검토하고 제도적으로 해소하는 일은 사법부의 책임이다.
그렇다면 AI가 판결을 내리면 이러한 문제가 사라질까.
AI는 방대한 법률과 판례를 분석하고 유사 사건의 판단을 비교할 수 있다. 판사의 기억이나 경험에만 의존하지 않고 관련 법률과 선례를 체계적으로 검토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장점이다.
실제로 대법원은 올해 2월 생성형 AI 기반 재판지원 시스템을 시범 도입했다. 판례와 법령, 법률 문헌 등을 통합적으로 분석해 법관의 재판 업무를 지원하는 시스템이다. 사법부 역시 AI의 활용 가능성을 인정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AI가 모든 법률을 학습한다고 해서 반드시 공정한 판결을 내리는 것은 아니다. 법률 조문을 적용하려면 사실관계를 확정해야 하고, 증거의 신빙성을 판단해야 하며, 법률 문언의 의미를 해석해야 한다. AI가 과거 판결을 학습한다면 그 판결에 존재했던 편향까지 재생산할 가능성도 있다.
더구나 AI가 잘못된 판결을 내렸을 때 누가 책임질 것인가. 피고인은 어떤 절차로 AI의 판단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가. 알고리즘의 작동 원리가 공개되지 않는다면 인간 판사의 판단보다 오히려 검증하기 어려운 사법체계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그렇기에 지금 필요한 논의는 인간 판사를 당장 없애자는 극단적인 선택이 아니다. AI를 활용해 인간 판사의 법리 해석과 판단을 검증할 수 있는 제도부터 마련하자는 것이다.
유사한 사건에서 양형이 크게 달라졌다면 그 차이를 분석하고, 중요한 판례가 누락됐다면 확인하며, 동일한 법률 조항에 대한 해석이 달라졌다면 그 이유를 검토하도록 할 수 있다. AI의 분석 역시 오류 가능성을 전제로 독립적인 검증을 받아야 한다.
특히 법률 조력을 충분히 받기 어려운 시민들도 이러한 기술의 혜택을 누릴 수 있어야 한다. 경제력이 풍부한 사람만 첨단 법률 분석 기술을 활용한다면 새로운 형태의 사법 불평등이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관의 권위는 법복이나 법정의 높은 자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누구에게나 같은 법률 원칙을 적용하고, 서로 다른 결론이 내려졌다면 그 이유를 충분히 설명하며, 잘못된 판단은 정해진 절차에 따라 바로잡을 수 있다는 신뢰에서 나온다.
판사를 AI로 대체하자는 국민의 목소리를 그저 무지한 주장이나 일시적인 조롱으로만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 그 요구가 실제로 얼마나 폭넓은 여론인지는 별도로 확인해야겠지만, 그 안에 담긴 문제의식까지 가볍게 취급할 이유는 없다.
사법부가 진정 두려워해야 할 것은 AI가 법관의 자리를 대신하는 미래가 아니다. 국민이 인간 판사의 양심보다 기계의 계산을 더 공정하다고 믿게 되는 현실이다.
법관의 독립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동시에 그 독립이 국민에 대한 설명 책임과 공정성 검증을 거부하는 방패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제 사법부는 판결을 존중하라고 요구하는 데서 그치지 말고, 국민이 판결을 신뢰할 수 있는 이유를 보여줘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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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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