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천지인 영감/연재 소설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뱀꿈에 갇힌 부부]제18화.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처음 털어놓은 비밀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뱀꿈에 갇힌 부부]제18화.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처음 털어놓은 비밀

정환이 현관문을 열었을 때 집 안은 캄캄했다.

“유진아?”

대답이 없었다.

거실 등을 켜려다 조금 전 전화기 너머로 들었던 아내의 말이 떠올랐다.

‘불 켜면 보일 것 같아.’

정환은 스위치에서 손을 내렸다.

대신 현관 쪽 작은 등만 켰다.

희미한 불빛이 거실 바닥을 길게 훑었다.

“유진아, 나 왔어.”

잠시 뒤 안방 쪽에서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정환은 신발을 벗어던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침실 문은 반쯤 열려 있었다.

그 안에 유진이 있었다.

침대가 아니라 바닥 한쪽에 등을 붙이고 웅크려 앉아 있었다. 두 무릎을 가슴까지 끌어안은 채 이불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유진아.”

정환이 다가가자 이불 속의 몸이 움찔했다.

그 반응에 정환의 걸음이 멈췄다.

평소 같았으면 속이 뒤집혔을지도 모른다.

남편인 자신이 다가가는데 왜 저렇게까지 피하는지, 또다시 서운함부터 올라왔을 것이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오던 아내의 울음과 겁에 질린 목소리가 귀에 남아 있었다.

정환은 유진에게서 조금 떨어진 바닥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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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여기 있을게.”

이불 속에서 아무 대답도 없었다.

“안 만질 테니까 걱정하지 마.”

그 말을 하고서야 이불이 조금 움직였다.

유진이 얼굴만 내밀었다.

눈은 퉁퉁 부어 있었다.

정환은 그 얼굴을 보고 가슴이 철렁했다.

언제부터 아내 얼굴이 저렇게 수척해졌는지조차 제대로 보지 못했다.

“괜찮아?”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정환은 무심코 손을 내밀었다가 멈췄다.

손끝이 허공에서 머뭇거렸다.

“손…… 잡아도 돼?”

그 질문에 유진의 눈에서 다시 눈물이 흘렀다.

남편이 자기 손을 잡아도 되느냐고 묻는 것.

결혼하고 한동안은 상상도 하지 못했던 일이었다.

유진은 한참 뒤 이불 밖으로 손을 내밀었다.

정환이 조심스럽게 손끝을 잡았다.

순간 유진의 어깨가 굳었다.

하지만 손을 확 빼지는 않았다.

정환도 더 힘을 주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렇게 손끝만 맞댄 채 한동안 말없이 앉아 있었다.

“미안해.”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정환이 고개를 들었다.

“뭐가?”

“당신한테 말 안 한 거.”

“…….”

“나도 처음에는 그냥 꿈인 줄 알았어.”

유진은 끊어지는 숨을 고르며 지난 일을 하나씩 꺼내놓았다.

처음 뱀꿈을 꾸었을 때만 해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하지만 같은 꿈이 되풀이됐다.

한두 마리가 아니었다.

꿈속에는 셀 수도 없이 많은 뱀이 뒤엉켜 있었고, 사람들이 몽둥이나 연장을 들고 그것들을 잡아 죽였다.

어떤 날은 피투성이가 된 뱀이 발밑에서 꿈틀거렸다.

어떤 날은 흰옷을 입은 사람들이 나타나 유진의 앞을 가로막았다.

가까이 가지 말라는 듯 손을 내저었다.

“그런데 이상한 게…….”

유진이 말을 멈췄다.

정환은 재촉하지 않았다.

“처음에는 꿈만 그랬어.”

“응.”

“그런데 어느 날부터 꿈에서 깨고 나서도 냄새가 나는 거야.”

“무슨 냄새?”

유진은 잠시 입술을 깨물었다.

“비린내.”

정환의 표정이 굳었다.

“피 냄새 같은 것도 나고, 젖은 흙 냄새 같은 것도 나고…….”

“집에서?”

유진이 고개를 저었다.

“당신한테서.”

정환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그 말을 입 밖으로 꺼내는 유진도 괴로운 듯 얼굴을 숙였다.

“나도 알아. 말이 안 되는 거.”

“계속 말해봐.”

“당신이 씻고 나와도 그랬어. 향수를 뿌려도 그 냄새가 그 밑에서 올라오는 것 같았어.”

유진의 손끝이 다시 떨렸다.

“그러다 당신이 나를 만지면…….”

목소리가 작아졌다.

“뱀이 몸을 타고 올라오는 것 같았어.”

정환이 잡고 있던 손에 힘이 들어가려다 다시 풀렸다.

유진은 울면서 말을 이었다.

“당신 손인 거 알아. 머리로는 알아. 그런데 몸은 그게 아니라고 하는 거야.”

그제야 정환은 지난 일들이 다른 모습으로 떠올랐다.

자신이 뒤에서 안았을 때 소스라치게 놀라던 아내.

입을 맞추려 하면 고개부터 돌리던 모습.

한번은 잠자리를 가지려다 갑자기 화장실로 뛰어가 한참 동안 토하기도 했다.

정환은 그 모든 것을 자신에 대한 혐오로 받아들였다.

“왜 말을 안 했어?”

목소리에는 원망보다 안타까움이 묻어났다.

유진이 눈물을 닦았다.

“어떻게 말해.”

“그래도…….”

“남편 몸에서 뱀 냄새가 난다고 어떻게 말해.”

정환은 입을 다물었다.

“남편이 만지면 뱀이 기어 다니는 것 같다고 어떻게 말하냐고.”

유진의 울음이 다시 터졌다.

“나도 내가 미친 줄 알았어.”

그 한마디가 정환의 가슴을 세게 후벼팠다.

유진은 혼자 병원을 찾아다녔다.

산부인과에도 갔고 상담도 받아봤다. 몸에 특별한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들었다.

스트레스가 심하면 성적인 접촉에 거부감이 생길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약을 먹어본 적도 있었다.

그러나 꿈은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선명해졌다.

“당신한테 말하면 내가 정신 나간 여자라고 할까 봐 무서웠어.”

정환이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렇게 만들었구나.”

“아니야.”

“맞아.”

정환은 자신의 무릎을 내려다봤다.

“나는 네가 그냥 내가 싫어진 줄 알았어.”

“당신이 싫었던 적 없어.”

유진은 곧바로 말했다.

정환이 고개를 들었다.

“정말이야.”

유진의 목소리는 울음에 젖어 있었지만 분명했다.

“그래서 더 힘들었어.”

사랑하는데 안을 수 없었다.

보고 싶으면서도 가까이 오면 몸이 먼저 도망쳤다.

남편이 등을 돌리고 잠들면 붙잡고 싶었고, 막상 정환이 돌아누우면 겁이 났다.

유진은 그 모순 속에서 거의 일 년을 버텼다.

정환도 상처받았지만 유진 역시 무너지고 있었다.

그날 처음으로 두 사람은 서로가 무엇 때문에 아팠는지 조금씩 알기 시작했다.

“유진아.”

“응.”

“나한테서 지금도 그 냄새 나?”

유진은 대답하지 못했다.

정환의 얼굴이 굳었다.

유진은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정환은 자기도 모르게 자기 옷깃의 냄새를 맡았다.

술 냄새가 났다.

담배 냄새도 배어 있었다.

그리고 지영의 향수 냄새가 희미하게 남아 있었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가슴이 철렁했다.

유진이 물었다.

“오늘 누구하고 술 마셨어?”

정환의 눈빛이 흔들렸다.

“회사 사람이랑.”

거짓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진실도 아니었다.

유진은 더 묻지 않았다.

지금 그녀를 짓누르고 있는 것은 남편의 외도 의심보다 자신에게 벌어지는 일이었다.

“나 어떡해야 돼?”

유진이 말했다.

“병원에서도 모르겠다고 하고…… 나 이러다 평생 당신하고 이렇게 사는 거 아니야?”

정환은 한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아내의 손을 조금 더 감싸 쥐었다.

유진의 몸이 다시 굳었다.

정환은 곧바로 힘을 풀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유진이 손을 빼지 않았다.

“우리 다른 방법도 찾아보자.”

“다른 방법?”

“병원 말고도.”

유진이 정환을 바라봤다.

“어떤 거?”

정환은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그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

다만 지금까지 했던 것만 되풀이해서는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았다.

유진은 한참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나 사실…….”

“응.”

“요즘 인터넷으로 이상한 것도 찾아봤어.”

“무슨 이상한 거?”

“꿈풀이 같은 거.”

정환은 말없이 듣고 있었다.

“뱀꿈을 계속 꾸는 사람들 이야기, 죽은 사람이 꿈에 나오는 경우, 조상 때문에 이상한 일이 생겼다는 글도 찾아봤어.”

정환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유진은 그것을 보고 황급히 덧붙였다.

“나도 그런 거 안 믿었어.”

“…….”

“지금도 진짜인지 모르겠어. 그런데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는데 나는 계속 이러잖아.”

정환은 쉽게 대답하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헛소리하지 말라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 밤 아내가 보여준 공포를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한번 알아보고 싶어?”

유진이 조심스럽게 고개를 끄덕였다.

“응.”

“그럼 알아봐.”

유진의 눈이 커졌다.

“당신 괜찮아?”

“내가 믿고 안 믿고가 지금 중요하냐.”

정환은 길게 숨을 내쉬었다.

“네가 이렇게까지 힘든데 해볼 수 있는 건 해봐야지.”

그 말에 유진은 다시 울었다.

이번 울음은 조금 전과 달랐다.

혼자 견디고 있던 것을 처음으로 남편에게 내려놓은 사람의 울음이었다.

정환은 아내를 안아주고 싶었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았다.

대신 손만 잡고 있었다.

유진 역시 그 손을 놓지 않았다.

그날 밤 두 사람은 한 침대에 눕지 않았다.

부부관계도 갖지 않았다.

정환은 침대 옆 바닥에 등을 기대고 앉았고, 유진은 이불을 덮은 채 침대 가장자리에 앉아 있었다.

그렇게 새벽이 깊어질 때까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그 대화 끝에서 유진은 처음으로 결심했다.

병원에서 찾지 못한 이유라면 다른 곳에서도 한번 물어보자고.

그것이 훗날 유진이 하동의 산자락까지 내려와 내 앞에 앉게 된 시작이었다.

그러나 그때의 유진은 아직 몰랐다.

자신이 밤마다 보았던 수많은 뱀이 단순한 악몽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남편 정환 역시 알지 못했다.

그 꿈의 뿌리를 따라가다 보면 자기 집안에서 오래전에 묻힌 이야기가 하나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는 것을.

(다음 회에 계속)

글쓴이 | 천신장군암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은 실제 점사와 무속 현장에서 겪은 이야기를 바탕으로 소설 형식으로 재구성한 연재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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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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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자료 정리 과정에서 AI 기술이 참고 수준으로 활용됐을 수 있으며, 기사에 사용된 이미지 중 일부는 AI 기술을 활용해 제작됐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