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천지인 영감/연재 소설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31화. 방울 소리에 실려 온 공수, 베일을 벗는 악귀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31화. 방울 소리에 실려 온 공수, 베일을 벗는 악귀

“의사들은 스트레스성 급성 정신질환이라고만 하고, 약을 먹여도 낮이고 밤이고 방구석에 박혀서 벽을 보고 웅얼대니… 법사님, 제 가슴이 까맣게 숯검뎅이가 되었습니다.”

어머니의 피맺힌 하소연이 낮게 내리깔린 향연(香煙) 사이로 흩어졌다.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며 경청하던 김 법사의 눈빛이 차분하게 가라앉았다. 삼십 년간 대도시의 화려함 뒤에 숨은 인간의 온갖 탁한 기운을 쳐내 왔던 그였다. 아이의 증상은 의학의 영역을 벗어난 지 오래라는 것을, 법사는 직감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어머니, 우선 아드님의 생년월일과 이름, 그리고 태어난 시를 이 한지에 적어주시겠습니까.”

법사가 점상 위에 정갈하게 접힌 한지와 붓을 밀어주었다. 여인은 떨리는 손으로 아들의 인적 사항을 적어 내려갔다. ‘丙戌年(병술년) 십이월…’ 먹이 채 마르기도 전에, 김 법사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사주를 내려다보는 그의 안색이 돌연 엄숙하게 굳어졌다.

그리곤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나 신당 전면을 향해 돌아앉았다. 평소의 인자하고 부드러운 중년 신사의 기운은 눈 녹듯 사라지고, 그의 전신에서 서슬 퍼런 위압감이 뿜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김 법사가 제단 위에 놓인 묵직한 ‘대신방울’을 쥐어 잡았다. 놋쇠 방울 수십 개가 엮인 방울 뭉치가 그의 손끝에서 거칠게 요동쳤다.

좌르르릉! 짤그랑!

적막하던 하동 산자락의 법당 안이 뇌성벽력 같은 방울 소리로 가득 찼다. 이어 오른손에 쥔 ‘대신부채’를 좌르륵 펼쳐 들고는 허공을 향해 매섭게 휘둘렀다. 순간, 닫힌 문틈 사이로 삭풍이 휘몰아치듯 법당 안의 촛불이 일제히 중심을 잃고 춤을 추었다. 김 법사의 눈동자가 위를 향해 치켜 올라가며, 그의 목소리가 한 옥타브 높아진 벼락신장의 거친 호령으로 변하여 터져 나왔다. 강내림(神降)이 시작된 것이다.

“어허! 이 미련한 인간 초라니 보소! 뚫린 입이라고 애가 공부하다 미쳤다는 소리를 입에 담아?! 동서남북 사방이 꽉 막힌 음지 땅, 남의 눈에 피눈물 흘리게 하고 명(命)대로 못 살고 목 매달아 뒤진 터귀신이 고스란히 올라탔구먼! 어허, 이놈의 악귀 년이 머리채를 풀고 아이 목을 꽉 쥐고 흔드는데 그것도 모르고 병원 문만 두드려?!”

벼락신장의 서슬 퍼런 반말 공수가 떨어지자, 여인은 혼이 나간 듯 바닥에 엎드려 사시나무 떨듯 떨었다. 방울을 세차게 흔들던 김 법사가 부채로 점상을 탁 소리 나게 내리쳤다.

“이건 단순한 동티가 아니야! 그 음산한 흉가 구석탱이에 박혀서 지나가는 인간 산 송장 만들려고 벼르고 있던 독하디독한 지박령(地縛靈)이다! 아이가 몸과 마음이 지쳐서 영(靈) 문이 활짝 열린 틈을 타서, 제 집인 양 대가리를 밀어 넣고 정신을 갉아먹고 있는 시초란 말이다! 지금 귀에서 들리는 환청? 그건 시작에 불과해. 조금 더 지나면 제 발로 그 흉가 찾아가서 목 매달 목숨이야!”

호통 같은 공수가 끝나자, 김 법사는 거친 숨을 몰아쉬며 방울과 부채를 내려놓았다. 신령의 기운이 서서히 걷히며 원래의 인자한 눈빛으로 돌아온 법사가 책상 위의 옥수를 한 모금 마셨다. 그의 이마에는 굵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어머니, 정신 차리셔요. 상황이 아주 엄중합니다. 그 폐가에 묶여 있던 지박령이 아주 지독하고 원한이 깊은 잡귀입니다. 놈이 얼마나 깊숙이 파고들었는지, 어떤 사연으로 묶인 귀신인지 정확하게 골수를 파내어 쳐내려면, 제가 민우를 직접 보고 대면 점사를 보아야 합니다. 아이를 이곳 천신장군암으로 데려오십시오.”

법사의 말에 어머니는 눈물을 닦으며 난감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법사님… 그게, 민우가 평소에 이런 무속이나 점집 같은 데를 아주 질색합니다. 가끔 친구들 따라서 동네 작은 교회에 나가서 마음을 달래곤 하던 아이라… 이런 산골짜기 신당에 가자고 하면 절대로 안 오려고 발버둥을 칠 텐데, 어쩌면 좋습니까…”

민우가 기독교 성향을 가진 아이라는 말에 김 법사는 혀를 쯧 차며, 허허로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교회를 가든 성당을 가든 신앙이 있는 것은 좋은 일이나, 지금 아이 몸에 실린 것은 종교의 교리로 다스릴 수 있는 수준이 아닙니다. 귀신도 영악해서 제 정체가 탄로 날까 봐 아이의 정신을 조종해 이곳에 오지 못하도록 필사적으로 막아설 겁니다. 아프다고 드러누운 놈을 억지로라도 끌고 와야 아이 목숨을 건집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속여서라도 꼭 데려오셔야 합니다. 그래야 살립니다.”

단호하면서도 자비가 담긴 김 법사의 눈빛을 보며, 어머니는 주먹을 쥐고 결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식을 살리기 위해서라면 악마의 소굴이라도 기어 들어가야 하는 것이 부모의 숙명이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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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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