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38화. 사슬을 끊는 신칼, 마침내 열린 저승길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38화. 사슬을 끊는 신칼, 마침내 열린 저승길

“안 속아! 인간 놈들의 약속 따위 안 믿어! 안 나가! 절대 안 나가!”
달래는 자비의 손길마저 거부한 지박령의 발악은 극에 달했다. 민우의 몸을 빌린 악귀는 이빨을 부딪치며 신당 문을 향해 기어 나가려 했고, 그럴 때마다 민우의 사지는 마치 부러질 듯 기괴한 소리를 내며 뒤틀렸다. 가련한 자식의 육신이 걸레짝처럼 짓밟히는 모습에 어머니는 가슴을 쥐어뜯으며 그저 방바닥을 피가 나도록 내리칠 뿐이었다.
김 법사의 안타까운 눈빛이 이내 싸늘한 대리석처럼 굳어졌다. 달래서 들을 귀신이 아니었다. 이대로 두면 아이의 영혼마저 영영 탁해져 돌아오지 못할 터였다.
“어허, 미련한 잡귀 놈이 신령님의 자비를 시궁창에 쳐넣는구나! 내 너의 사연이 가련하여 내치지 않으려 했거늘, 산 목숨을 탐내는 탐욕이 하늘을 찌르니 더는 좌시하지 않겠다!”
김 법사는 점상 위에 올려두었던 신장칼을 다시 움켜쥐었다. 대전, 대구, 진주의 거친 바닥을 구르며 삼십 년간 다져온 무서운 신기(神氣)가 칼날을 따라 푸르스름한 불꽃처럼 피어올랐다. 주장신인 벼락신장의 신력이 김 법사의 전신을 타고 내리쳤다.
쉬이익! 쾅!
법사가 신장칼로 허공을 가르며 민우의 머리 위를 매섭게 내리쳤다. 눈에 보이지 않는 거대한 기운이 신당 안을 강타한 듯, 찌르르한 진동과 함께 매서운 파장이 민우의 온몸을 휘감았다.
“끄아아악! 이거 놓아라! 이놈의 무당 놈아!”
민우의 입에서 쇳소리 섞인 단명이 터져 나왔다. 지박령은 민우의 몸 안에서 어떻게든 버티려 똬리를 틀었지만, 벼락신장의 서슬 퍼런 칼끝이 뿜어내는 기운 앞에서는 역부족이었다. 김 법사가 칼끝을 민우의 가슴팍에 겨누고 연이어 호통을 치며 신칼로 공중을 가르자, 방 안의 촛불들이 일제히 미친 듯이 춤을 추었다.
“계룡산 벼락신장 대령하셨다! 갈 곳 못 가고 구천을 헤매는 독종 잡귀는 당장 그 가련한 육신에서 사슬을 풀고 무릎을 꿇을지어다!”
콰아앙!
마치 보이지 않는 둔기에 얻어맞은 듯, 민우의 몸이 바닥으로 털썩 꼬꾸라졌다. 거칠게 악다구니를 부리던 노인의 기세는 간데없고, 민우의 몸을 빌린 형체는 신장칼의 서슬 퍼런 위엄 앞에 완전히 제압당해 바닥에 엎드린 채 사시나무 떨듯 떨기 시작했다. 지독했던 독기가 빠져나가며, 마침내 잡귀가 무릎을 꿇은 것이다.
바닥에 엎드려 꺽꺽 울음을 터뜨리는 그 비참한 노인의 영혼을 내려다보며, 김 법사는 마음 한구석이 다시금 짠해졌다. 악독하게 발악했으나 결국은 이승에서도, 저승에서도 버림받은 불쌍한 독거노인의 원혼일 뿐이었다. 김 법사는 칼을 거두고, 바닥에 쓰러져 오열하는 민우 엄마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어머니, 이 양반이 살아생전 지독하게 외롭게 살다 가신 분입니다. 악귀로 변해 아이를 괴롭혔으나, 그 뿌리는 서글픈 한(恨)입니다. 비록 잡귀라 할지라도 신제자로서 한 약속은 지켜야 아드님 뒤끝이 깨끗합니다. 그러니 오늘 바로 날을 잡아 이 지박령 영혼 달래줄 간단한 술상 하나 차려 먹이고, 저승 갈 때 입고 갈 깨끗한 한복 한 벌 준비해서 천도시켜줍시다. 아시겠습니까?”
“예… 예, 법사님! 그렇게 하겠습니다. 우리 민우만 살려주신다면 뭐든 하겠습니다…”
어머니는 눈물 범벅이 된 얼굴로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김 법사는 다시 노인의 원혼을 향해 섰다. “영가시여, 들으셨지요? 이 어미의 약속과 내 신령님의 명예를 걸고 약속하리니, 이제 그만 맺힌 마음 풀고 이 아이를 놓아주어 저승으로 향하소서.”
그 진심 어린 다짐이 통했을까. 민우의 몸이 크게 한 번 들썩이더니, 입에서 후우우- 하고 차갑고 검은 음기가 한 뭉텅이 빠져나갔다. 순간 법당 문을 흔들던 거친 바람이 거짓말처럼 뚝 멎었다.
그리고 몇 초 후. 민우가 깊은 잠에서 깨어난 듯 천천히 눈을 떴다. 뒤집혔던 눈동자는 원래의 맑고 영롱한 고등학생의 눈으로 돌아와 있었다. 아이는 제 손을 내려다보고 주위를 둘러보더니, 멍한 표정으로 어머니를 바라보았다.
“엄마…? 내가 왜 여기 있어? …어? 귀가… 귀가 안 아파. 그 기분 나쁜 목소리가 안 들려 엄마!”
“민우야! 내 새끼야!”
어머니는 민우를 왈칵 껴안고 목놓아 울었다. 한 달 동안 모자를 지옥으로 몰아넣었던 그 끔찍한 환청과 고통이 거짓말처럼 흔적도 없이 사라진 순간이었다.
모자가 서로를 안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던 김 법사가 가만히 땀을 닦아내며 점상 앞으로 다가왔다.
(다음 회에 계속) /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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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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