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계파 갈등과 패널 독과점이 만들어낸 정치의 실종, 6·3 지선의 씁쓸한 자화상[천지인뉴스]
[사설] 계파 갈등과 패널 독과점이 만들어낸 정치의 실종, 6·3 지선의 씁쓸한 자화상
정범규 기자
사상 초유의 투표용지 부족 사태로 얼룩진 제9회 전국동시지방선거가 막을 내렸다. 유권자들은 투표소를 찾았으나 텅 빈 기표소 앞에서 발길을 돌려야 했고, 민의를 대변해야 할 정치는 각 당의 볼썽사나운 계파 갈등 속에서 철저히 실종되었다. 선거 내내 비전과 정책은 뒷전으로 밀려났고,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오직 권력을 향한 당파적 이전투구와 방송을 장악한 일부 패널들의 편파적 여론 몰이뿐이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집권 1년 차에 치러진 이번 선거를 철저히 내부 권력 투쟁의 장으로 전락시켰다. 겉으로는 ‘이재명 정부의 성공’과 ‘민생’을 외쳤지만, 수면 아래에서는 친명(친이재명)과 친문(친문재인) 세력 간의 헤게모니 싸움이 치열했다. 지지층을 가치와 이익 중심으로 나누어 분석한 이른바 ‘ABC론’이 등장하며 서로를 향한 날 선 비난이 쏟아졌고, 대선 패배의 책임론까지 다시 불거지며 노골적인 ‘갈라치기’ 양상을 보였다. 공천권을 둘러싼 친명과 친문 간의 알력 다툼은 급기야 특정 인사를 컷오프(공천 배제) 시켰다는 주장과 반박으로 이어지며 당원들의 깊은 피로감을 자아냈다. 국민의 삶을 살피겠다는 공당의 책무는 온데간데없고, 오직 차기 대권을 향한 세력 구축에만 혈안이 된 모습이었다.
야당인 국민의힘 역시 사정은 다를 바 없었다. 선거를 코앞에 두고 장동혁 대표 체제와 한동훈 전 대표 측 간의 계파 갈등은 ‘당게 사태’를 빌미로 한 전 대표 제명이라는 극단적인 결과로 폭발했다. 장 대표는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걸고 승부수를 띄웠고, 제명당한 한 전 대표는 지지자들과 함께 장외 여론전을 펼치며 맞섰다. 야당 내부의 갈등이 위험 수위를 넘나들면서, 정권 견제라는 야당 본연의 역할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특히 서울 일부 지역에서 발생한 투표용지 고갈 사태를 두고 처음에는 선거 무효를 강하게 외치다가 자당 소속인 오세훈 후보가 서울시장에 당선되자 스탠스 변화를 고심하는 모습은 이들의 정치 공세가 얼마나 정략적이고 계산적이었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이처럼 여야가 그들만의 진흙탕 싸움에 매몰되는 동안, 언론의 편파적 보도와 일부 정치 평론가들의 얄팍한 여론 호도는 상황을 더욱 악화시켰다. 종편을 비롯한 시사 방송들은 선거판의 본질적인 이슈인 정책과 지역 공약은 외면한 채, 자극적인 갈등 중계와 선정적인 보도에만 열을 올렸다. 특히 소위 ‘전문가’라는 타이틀을 달고 하루에도 대여섯 개의 방송을 넘나들며 얼굴을 비추는 특정 패널들의 ‘겹치기 출연’ 독과점 현상은 심각한 지경이다.
이들은 충분한 사실 확인이나 깊이 있는 분석 없이, 인터넷 뉴스를 짜깁기하거나 정파적 입맛에 맞는 자극적인 ‘조미료 발언’으로 방송을 채운다. 전문성보다는 입담과 진영 논리에 갇힌 몇몇 인사들이 정치 평론 시장을 독점하며 여론을 특정 방향으로 주도하고 왜곡하는 현상은 대의민주주의를 훼손하는 또 다른 폭력이다. 방송사들 역시 시청률과 화제성에 눈이 멀어 편향적인 패널들을 검증 없이 ‘메뚜기’처럼 돌려쓰는 공생 관계를 청산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번 6·3 지방선거는 유권자의 삶은 외면한 채 권력 투쟁에 매몰된 정치권, 공정성을 상실한 채 자극에 매달리는 언론, 그리고 그 틈에 기생하여 진영 논리를 부추기는 독과점 패널들이 만들어낸 참담한 합작품이다. 국민들은 투표용지가 모자라는 후진적인 행정 시스템에 한 번, 낡은 계파 갈등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에 또 한 번 절망했다. 정치권은 당리당략을 넘어 국민의 삶을 우선하는 본연의 자세로 돌아가야 하며, 언론과 평론계 역시 저널리즘의 기본 원칙과 윤리를 회복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 씁쓸한 자화상은 다음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반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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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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