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제47화. 관제수와 병액, 무너진 오만의 대가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47화. 관제수와 병액, 무너진 오만의 대가

“법사님…… 제발 저 좀 살려주세요…….”
천신장군암의 신당 문이 힘없이 열리며 기어들어 온 목소리는 애처롭기 짝이 없었다. 김 법사가 가만히 고개를 들어 문가를 바라보자, 그곳에는 불과 보름 전 금반지를 주렁주렁 끼고 명품 가방을 든 채 기고만장하게 도량을 시험하려 들던 박선영이 서 있었다.
하지만 오늘 그녀의 형색은 처음 온 날의 화려하고 오만했던 모습이 아니었다. 얼굴은 며칠 밤낮을 지독한 가위에 눌린 듯 핏기 없이 핼쑥했고, 눈밑은 거뭇한 죽은 기운이 내려앉아 초췌하기 이를 데 없었다. 보름 사이에 온몸의 진기가 껍데기만 남고 싹 빨려 나간 몰골이었다.
선영은 신당에 들어서자마자 점상 앞으로 기어 오듯 다가와 털썩 주저앉았다. 그러고는 억울함과 공포가 뒤섞인 눈물을 흘리며 그간 자신에게 들이친 끔찍한 풍파를 토해내듯 털어놓기 시작했다.
“법사님, 제가 미쳤었나 봐요. 그때 법사님 경고를 귓등으로도 안 듣고…… 제 의지가 아니었어요. 제 몸에 붙은 그 잡귀 놈이 저를 가만히 놔두지를 않았어요. 제정신을 쏙 빼놓고는 하루에도 몇 군데씩 점집을 돌게 만들더라고요. 제 발로 걸어가면서도 내가 왜 이러나 싶을 정도로, 마치 뭐에 홀린 사람처럼 미친 듯이 전국의 신당을 순례하고 다녔어요.”
선영은 밤마다 제 귀를 지배하며 “저 무당도 가짜다, 저년 머리 꼭대기에 올라타라”고 속삭이던 허주의 부추김에 눈이 완전히 멀어 있었던 것이다. 그러다 며칠 전, 대구의 한 유명하다는 보살 집을 찾아갔을 때 마침내 끔찍한 대형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거기서도 저도 모르게 시비를 걸고 무당을 약 올리며 싸움이 붙었는데…… 말다툼이 몸싸움으로 번졌어요. 그런데 그 보살이 저한테 밀려 넘어지면서, 신당 제단 모서리에 머리를 아주 크게 부딪쳤어요. 피가 낭자하게 흐르면서 의식을 잃고 쓰러지는데…… 정말 눈앞이 캄캄했습니다.”
눈물이 범벅이 된 채 가쁜 숨을 몰아쉬며 선영이 말을 이어갔다.
“보살이 구급차에 실려 가고 저는 현장에서 경찰에 체포됐어요. 피해자가 뇌진탕에 심각한 부상을 입어서 중환자실까지 들어가는 바람에 구속되기 직전까지 갔습니다. 어떻게든 감옥행은 면해야 하니까…… 이혼 위자료로 받았던 전 재산에 가까운 돈을 합의금과 수술비, 그리고 망가진 신당 기물 보상금으로 싹 다 털어 넣었어요. 거액의 위자료를 한순간에 다 날려버린 겁니다.”
선영은 제 가슴을 쥐어짜며 오열했다. 전 재산을 탕진한 것도 모자라 육신까지 망가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다음부터였다.
“합의를 보고 유치장에서 풀려난 그날 이후부터, 몸이 걷잡을 수 없이 아프기 시작하는 거예요. 밤마다 온몸의 뼈마디를 송곳으로 찌르는 것처럼 통곡이 나오고 잠을 한숨도 못 자겠어요. 낮에는 사방에서 헛것이 튀어나오고 환청이 들려 미칠 것 같아요. 병원 응급실을 제집 드나들듯 해도 아무 이상이 없다는데, 제 몸은 점점 타 들어가서 죽을 것만 같아요…… 법사님, 저 정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선영은 점상에 머리를 찧으며 통곡했다. 전국의 신당을 조롱하며 무당 머리 꼭대기에 앉아 놀던 대가는 참혹했다. 문밖의 잡귀를 떨쳐내지 못하고 몸주로 대접해 준 결과, 끔찍한 관제수에 엮여 모든 것을 잃고 육신마저 귀신에게 갉아먹히는 진짜 신병(神病)의 나락으로 떨어진 것이다.
김 법사는 스스로 판 무덤에 갇혀 피눈물을 흘리는 선영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어깨 뒤에는 보름 전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시커멓게 살이 오른 늙은 여자 귀신이, 이제는 대놓고 선영의 목을 가랑이로 감아쥔 채 김 법사를 향해 비열한 비웃음을 흘리고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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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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