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관위 무능이 초래한 ’91곳 용지 부족’, 광기의 개표소 봉쇄와 폭력 비즈니스의 면죄부 될 수 없다 [천지인뉴스]
선관위 무능이 초래한 ’91곳 용지 부족’, 광기의 개표소 봉쇄와 폭력 비즈니스의 면죄부 될 수 없다 [천지인뉴스]
정범규 기자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무능이 부른 ‘투표용지 부족 사태’의 파장이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있다. 본선거일 당시 전국 투표소 곳곳에서 발생한 행정적 부실은 선거 제도의 신뢰를 뒤흔들며 국민적 공분을 사기에 충분했다. 국가의 근간인 선거 관리를 이토록 안일하게 처리한 선관위의 책임은 뼈아픈 개혁과 인적 쇄신의 대상이다. 그러나 선관위의 행정적 실패가 법치를 유린하고 사적 제재를 일삼는 극단적 세력의 폭력 행위에 면죄부를 줄 수는 없다. 현재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핸드볼경기장 개표소 안팎에서 사흘째 이어지고 있는 봉쇄 사태는 합리적인 의혹 제기를 한참 넘어선 광기의 무법천지이자, 우리 사회가 쌓아 올린 민주적 시스템에 대한 정면 도전이라는 해석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지난 8일 선관위가 집계해 발표한 실태는 가히 충격적이다. 당초 선거 당일 모자랐던 투표소를 14곳이라고 발표했던 선관위는 사흘 만에 실제 용지 부족이 발생한 투표소가 전국 91곳에 달한다고 말을 바꿨다. 이 가운데 투표가 일시 중단됐다가 재개된 곳만 26곳에 이르며, 누락된 유권자 중 일부는 투표를 포기한 것으로 드러나 참정권 훼손 논란이 겉잡을 수 없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이에 책임을 지고 노태악 중앙선관위원장이 사퇴하고 선거정책실장 등이 직위 해제되는 등 선관위 지휘부는 사실상 와해됐다. 야당인 국민의힘은 김은혜 의원을 필두로 특검법을 발의하며 ‘선거 무효’와 재선거를 강력히 주장하고 나섰고,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역시 국정조사 요구서를 제출하며 진상 규명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선관위의 총체적 부실을 규탄한다는 명분 아래 개표소를 점거한 시위대들이 현장에서 보여준 행태는 법치국가의 국민이라고는 믿기 힘든 초법적 만행으로 얼룩지고 있다. 가장 큰 공분을 사는 대목은 세계선수권대회 출전을 앞두고 훈련 장비를 챙기려던 여자 청소년 핸드볼 국가대표 선수들에게 가한 폭거다. 시위대 수십 명은 태극마크를 단 어린 선수들의 진입을 막아서며 경기 영상을 대조하라는 황당한 요구를 했고, 한 선수가 울먹이며 손을 비비고 애원한 끝에 겨우 건물에 들어설 수 있었다. 더구나 선수들이 훈련용 공을 들고나오자 투표용지를 숨겨 나오는 게 아니냐며 가방을 강제로 열어젖히고 소지품을 검사하는 사적 제재까지 서슴지 않았다. 이는 형법 제324조 강요죄 및 업무방해죄에 해당하는 명백한 범죄 행위라는 지적이 나온다.
이들의 무법적 광기는 언론과 공권력마저 집어삼키고 있다. 현장을 취재하던 JTBC와 외신 기자들을 선관위의 첩자로 몰아세우며 신체를 에워싸고 폭행을 가했으며, 취재진들이 신변의 위협을 느껴 창문으로 탈출하는 국가적 망신 극까지 연출됐다. 질서 유지를 위해 투입된 경찰 기동대원들 역시 시위대의 복장 검수 요구에 직면해야 했고, 철제 폴리스라인 안에 고립되어 화장실도 가지 못한 채 6시간 동안 교대를 거부당하는 사실상의 감금 조치를 당했다는 내부 폭로가 이어지고 있다. 현장 지휘관을 향해 “조선족이냐”며 퍼부은 인종차별적 모욕은 이들의 주장이 애국주의가 아닌 저급한 혐오에 기반하고 있음을 반증하는 대목이다.
정치권과 전문가들은 이처럼 법과 제도를 파괴하는 극단적 행동의 배후에 이른바 ‘슈퍼챗 비즈니스’라 불리는 혐오 마케팅 시장이 도사리고 있다고 진단한다. 수년간 부정선거 음모론을 재생산해 온 극우 유튜버들은 자극적인 대치 상황을 실시간 생중계하며 하룻밤 사이에 수천만 원의 후원금을 갈취하고 있다. 국가의 미래나 선거의 공정성은 안중에도 없이, 오직 지지자들의 분노를 동력 삼아 주머니를 채우는 ‘폭력 비즈니스’가 민주주의의 탈을 쓰고 횡행하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표심을 의식해 음모론에 슬쩍 승차하려는 일부 극우 정치인들의 방조가 괴물들을 키운 자양분이 되었다는 비판이 매섭다.
무능한 선관위의 시스템적 쇄신과 철저한 특검 수사는 당연한 수순이다. 그러나 수사당국은 이와 별개로 개표소를 무법천지로 만들고 공무원과 민간인을 사적으로 통제한 주동자들에 대해 엄중한 법적 책임을 물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선거관리위원회 직원을 폭행·협박하거나 선거 사무를 방해한 행위는 공직선거법 제244조에 의거해 벌금형 없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지는 최고 수준의 중범죄다. 또한 다중의 위력으로 출입구를 봉쇄한 행위는 특수감금죄에 해당해 무거운 형사처벌을 면하기 어렵다. 민주주의의 관용은 법치와 절차를 존중하는 자들에게만 허용되는 특권이다. 증오를 선동해 돈을 벌고 사회 시스템을 마비시키는 범죄적 폭력 비즈니스를 단호히 끊어내지 못한다면 대한민국의 법치는 더 이상 설 자리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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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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