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35화. 지박령의 고백, 중천을 헤매는 독거노인의 원혼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35화. 지박령의 고백, 중천을 헤매는 독거노인의 원혼

민우의 젖은 눈동자를 가만히 바라보던 김 법사가 긴 한숨을 내쉬었다. 아이의 영혼은 이미 가시덤불에 갇힌 채 피를 흘리고 있었다. 더는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껍질을 벗겨내듯, 아이의 육신 뒤에 숨은 본체를 끄집어내어 직접 담판을 지어야 했다.
“어머니, 민우 뒤쪽으로 물러서서 마음속으로 신령님을 찾으십시오. 어떤 험한 꼴을 보시더라도 절대 소리를 지르거나 민우의 몸을 건드리시면 안 됩니다.”
김 법사는 점상 위에 놓여 있던 두툼한 네임펜을 꽉 쥐고는 자리에서 번뜩 일어섰다. 인자하던 눈빛은 간데없고, 서슬 퍼런 벼락신장의 기운이 그의 전신을 타고 장엄하게 뻗어 나왔다. 법사가 신당 제단 위에 놓인 ‘대신방울’을 치켜들고 거칠게 흔들기 시작했다.
좌르르릉! 짤그랑!
날카로운 놋쇠 소리가 닫힌 법당의 공기를 사정없이 찢었다. 김 법사는 민우의 이마를 향해 방울을 밀어붙이며, 천지를 뒤흔들 듯 호통을 쳤다.
“어디라고 꼭꼭 숨어 음해를 가하느냐! 계룡산 벼락신장 대령하셨으니, 민우의 몸을 빌려 숨은 악귀 놈은 당장 정체를 드러내고 고할지어다! 썩 나오너라!”
웅웅-
방울 소리와 함께 민우의 사지가 기이하게 뒤틀리기 시작했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던 민우의 목이 뒤로 꺾이더니, 입에서 컥컥거리는 거친 가래 끓는 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윽고 천천히 들어 올린 민우의 안색은 이미 열아홉 살 소년의 것이 아니었다. 핏발 선 눈을 부릅뜬 채 늙고 추악한 노인의 표정으로 변한 민우가, 김 법사를 향해 이를 갈며 쇳소리를 내질렀다.
“이 빌어먹을 무당 놈이 왜 남의 밥그릇을 깨려고 들어?! 이놈은 내 거야! 내 터에 제 발로 들어온 놈이란 말이다!”
벼락신장의 기운을 받은 김 법사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대신부채를 펼쳐 들며 점상을 탁 내리쳤.
“어허! 이 무도한 잡귀 놈 보소! 갈 곳 못 가고 구천을 맴돌며 산 목숨을 탐내는 죄가 얼마나 무거운지 모르느냐! 네 대체 어떤 사연으로 저승길도 못 가고 그 음산한 폐가에 묶여 지박령이 되었는지, 벼락신장 전(前)에 바르게 고해라! 그렇지 않으면 당장 신칼로 네 혼구녕을 찢어 발겨 지옥 불로 던질 터이다!”
법사의 서서히 죄어오는 신기에 압도당한 듯, 민우의 몸을 빌린 노인의 영혼이 갑자기 꺼끄러운 울음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허이구, 허이구… 통곡 섞인 목소리로 민우의 입을 통해 흘러나온 이야기는 차라리 잔인한 비극에 가까웠다.
“억울해서 못 간다! 억울하고 서러워서 저승 문을 못 넘어! 내가 그 빌어먹을 집에서 어떻게 죽었는데…”
노인은 살아생전 지독히도 외롭고 고집이 센 사람이었다. 번듯하게 대학까지 가르쳐 키워낸 자식 놈들이 셋이나 있었지만, 서울로 대도시로 떠난 뒤로는 명절은커녕 전화 한 통 먼저 걸어오는 법이 없었다. 서운함이 분노가 되고, 분노가 독기가 된 노인은 동네 사람들과도 담을 쌓은 채 거칠고 괴팍한 성격으로 변해갔다. 결국 그 외딴 시골집에서 홀로 늙어가던 노인을 찾아오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러던 어느 추운 겨울날, 노인은 방바닥에서 홀로 뇌졸중으로 쓰러졌다. 손을 뻗어보았지만 만져지는 것은 차가운 벽지뿐이었다. 자식들의 이름을 외치며 서서히 숨이 끊어질 때까지, 그 누구도 노인의 비명을 듣지 못했다.
“죽은 지 두 달이 지나서야… 집 안에서 썩은 냄새가 진동을 하니까 동네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를 했어. 문을 부수고 들어온 순경 놈들이 내 썩어 문드러진 시체를 발견했단 말이다…”
뒤늦게 연락을 받은 자식들이 내려왔지만, 이미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부패한 시신을 마주하고는 장례조차 서둘러 해치우듯 끝내버렸다. 오랫동안 이승의 탁한 공기 속에 방치되어 원한이 뼈에 사무친 노인의 영혼은, 저승사자의 손도 잡지 못한 채 중천(中天)을 헤매는 흉악한 지박령이 되어 자신이 죽은 안방 구석에 똬리를 틀게 된 것이었다.
“내 자식 놈들도 나를 버렸는데, 저 파릇파릇한 놈들은 뭐가 좋다고 희희낙락 웃으며 내 방을 헤집고 다녀?! 억울해서 눈을 못 감는다! 나 혼자는 외로워서 저승 못 가!”
노인의 원혼은 눈물과 피가 섞인 비명을 지르며 민우의 육신을 더욱 강하게 옭아맸다. 사연은 가련했으나, 그 원한이 애꿎은 산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가는 핑계가 될 수는 없었다. 김 법사의 눈빛이 다시금 차갑게 가라앉았다.
(다음 회에 계속) /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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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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