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37화. 달래는 신칼, 원혼을 보듬는 자비의 약속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37화. 달래는 신칼, 원혼을 보듬는 자비의 약속

“어디 찌를 테면 찔러봐! 이놈 심줄을 내가 꽉 쥐고 있으니, 내가 죽으면 이놈도 같이 염라대왕 앞에 가는 거야!”
민우의 육신을 볼모로 잡고 악다구니를 부리는 지박령의 발악에 신당 안은 핏빛 광기로 가득 찼다. 아이의 손톱에 긁혀 붉은 핏금이 갈라진 가슴팍을 보며 어머니는 이미 넋이 나간 채 바닥에 쓰러져 꺽꺽 우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당장이라도 파멸을 불러올 듯 서슬 퍼렇게 날이 서 있던 김 법사의 신장칼이 순간 허공에서 멈칫했다.
삼십 년 무업의 세월 동안 그가 마주한 악귀들은 언제나 잔인했으나, 그 잔인함의 뿌리에는 항상 인간의 지독한 슬픔과 외로움이 썩어 문드러진 고름처럼 고여 있었다. 혼자 살다 쓰러져 썩어가는 시신이 될 때까지 아무도 찾지 않았던 노인. 자식들에게 버림받고 중천을 떠돌며 겪었을 그 해골 같은 고독이 김 법사의 가슴을 찌르듯 아프게 후벼 팠다.
김 법사는 단전에서 끌어올렸던 매서운 신기를 서서히 거두어들였다. 그리고는 치켜들고 있던 시퍼런 신장칼을 천천히 내려 점상 위에 올렸다. 그의 굳어 있던 안색에 부드럽고 가련한 애처로움이 번져 나갔다.
“영가시여. 이 가련하고 불쌍한 양반아… 내 당신의 그 깊고 맺힌 한을 모르는 바가 아닙니다.”
벼락신장의 거친 반말 대신, 김 법사의 본래 목소리가 나지막하고 따뜻하게 신당의 공기를 감싸 안았다. 양철지붕을 때리는 바람 소리마저 달래듯 가라앉는 호흡이었다.
“자식 놈들 잘되라고 등골 빼어 먹여 살려 놨더니, 차가운 방바닥에서 숨이 끊어질 때까지 전화 한 통 없었으니 그 서러움을 어찌 말로 다 하겠습니까. 죽어서도 썩은 문드러진 몸뚱이로 두 달을 방치되셨으니, 이승의 법도도 자식들의 천륜도 다 원망스럽고 징글징글하셨겠지요. 내 그 마음을 알기에 가슴이 찢어집니다.”
법사의 살살 달래는 진심 어린 음성에, 민우의 몸을 빌려 쉭쉭거리던 노인의 거친 숨소리가 순간 뚝 끊겼다. 핏발 선 눈으로 법사를 노려보던 민우의 안색에 묘한 동요가 일었다.
“그러니 영가시여, 이제 그만 이 가련한 어린아이의 목덜미를 놓아주십시오. 이 아이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그저 철없는 호기심에 발을 디뎠을 뿐인데, 이 어린 목숨까지 길동무 삼아 지옥으로 가신들 영가의 맺힌 앙금이 풀리겠습니까. 조용히 민우의 몸에서 빠져나오신다면, 내 벼락신장님을 주장신으로 모신 신제자로서 약속드리겠습니다. 좋은 날 가려 정성껏 제물 차려 영가의 넋을 기리고, 저승 문 바르게 열어 좋은 곳으로 가시도록 천도(薦度)해 드리겠습니다. 외롭지 않게 길을 닦아드릴 터이니, 제발 내 손을 잡으십시오.”
진심을 담은 김 법사의 제안은 얼어붙은 원혼의 마음을 녹일 만한 자비였다.
그러나 지박령의 원한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수개월 동안 차가운 폐가에서 음기를 먹고 자란 악독함이 민우의 영혼 깊숙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다. 순간, 노인의 음성이 다시금 민우의 입을 찢으며 터져 나왔다.
“말은 잘하는구나, 이 무당 놈아! 하지만 안 속아! 인간 놈들의 약속 따위 안 믿어! 내 자식 놈들도 나를 버렸는데, 생판 남인 네 놈이 나를 위해 상을 차려주고 길을 닦아준다고?! 안 나가! 절대 안 나가!”
지박령은 천도해 주겠다는 약속에 거세게 맞서며, 오히려 민우의 몸 안으로 더 깊숙이 파고들었다. 아이의 눈동자가 다시 검게 물들기 시작했고, 이빨을 득득 갈며 온몸을 비틀어 신당의 문을 향해 도망치려 발악을 했다. 달래서 보낼 수 있는 단계를 넘어, 악귀는 제 집착의 사슬을 더 단단히 묶어버린 것이다.
김 법사의 눈빛이 안타까움에서 다시금 엄숙한 결단으로 빛나기 시작했다. 결국, 법당을 피로 물들일 마지막 싸움이 다가오고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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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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