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설] 78년 조작 잔혹사가 말해주는 ‘보완수사권 개혁’의 본질[천지인뉴스]
[사설] 78년 조작 잔혹사가 말해주는 ‘보완수사권 개혁’의 본질[천지인뉴스]

정범규 기자
대한민국 검찰이 출범한 지 78년이 흐르는 동안, 그들은 스스로를 거악을 척결하고 사회 정의를 수호하는 보루라 자임해 왔다. 하지만 화려한 간판 뒤에 가려진 이면은 견제받지 않는 무소불위의 권력이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빼앗고 청춘을 짓밟아온 잔혹사로 점철되어 있다. 조작과 강압수사로 한 인간의 영혼과 가정을 처참하게 파괴한 사법 비극들은, 독점적 권력이 통제력을 잃었을 때 얼마나 괴물처럼 돌변할 수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역사상 가장 끔찍한 사법살인으로 기록된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은 국가 권력이 저지른 가장 잔인한 범죄의 정점이다. 중앙정보부와 검찰의 가혹한 짜맞추기 수사로 북한의 조종을 받는 반국가단체로 몰린 혁신계 인사 8명은 대법원에서 사형 선고가 내려진 지 단 18시간 만에 사형장으로 끌려갔다. 사법 역사상 최고의 암흑기로 기록된 이 비극은 32년이 지난 2007년에야 재심을 통해 전원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미 목숨을 빼앗긴 뒤에 내려진 무죄 판결은 그 어떤 영혼도 위로하지 못하는 뒤늦은 고백일 뿐이었다.
이보다 앞선 1959년 ‘조봉암 진보당 당수 사건’ 역시 정적 제거를 위한 조작 수사의 전형이었다. 초대 농림부 장관이자 강력한 대선 후보였던 조봉암은 단지 평화통일론을 주장했다는 이유로 간첩 혐의를 뒤집어쓴 채 처형당했다. 대법원이 확증 없는 강압 수사였음을 인정하며 무죄를 선고한 것은 무려 52년이 흐른 2011년에 이르러서였다.
이처럼 국가가 사법의 이름으로 자행한 살인은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실적과 조직의 이익을 위해 진실을 외면하고 인간의 존엄을 짓밟았던 검찰의 비대한 권력은 이후에도 끊임없이 약자들을 제물로 삼으며 사법 불신의 깊은 늪을 파 내려갔다.
사법살인의 시대가 저문 이후에도 수사기관의 폭거는 사회적 약자와 취약계층을 향해 더 교묘하고 잔인하게 이어졌다. 영화 <재심>의 모티브가 된 2000년 ‘약촌오거리 택시기사 살인사건’은 당시 15세에 불과했던 소년을 폭행과 잠 안 재우기 등으로 고문해 허위 자백을 받아낸 사건이다. 진짜 범인이 나타났다는 결정적 첩보조차 실적에 눈이 먼 수사기관에 의해 묵살당했고, 소년은 10년의 청춘을 감옥에서 보내야 했다.
1990년 ‘낙동강변 살인사건’의 최인철, 장동익 씨는 ‘물고문’과 ‘거꾸로 매달기’라는 반인륜적 가혹행위 속에 무기징역수가 되어 21년간 수감되었으며, 1989년 ‘이춘재 연쇄살인 8차 사건’의 윤성여 씨는 소아마비 장애인이라는 이유로 사흘간 잠을 자지 못하는 고문 끝에 20년 동안 억울한 옥살이를 했다.
이러한 잔혹사는 비교적 최근까지도 계속되었다. 2009년 ‘순천 청산가리 막걸리 사건’은 글을 모르는 비문해자 아버지와 경계선 지능을 가진 딸을 제물 삼아 진술 거부권조차 고지하지 않은 채 패륜적 범행 동기를 소설 쓰듯 짜 맞춘 검찰의 추악한 민낯을 드러냈다. 또한 2013년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에서는 탈북자 출신 유우성 씨를 간첩으로 몰기 위해 국가정보기관과 검찰이 중국 정부의 공식 출입경 기록 도장과 마크까지 정교하게 위조해 법정을 기만하는 희대의 사기극을 벌였다. 대한민국 법치주의를 뿌리째 뒤흔든 전무후무한 사건이었다.
이 모든 사건의 공통점은 무고한 이들의 피눈물로 쌓아 올린 견고한 ‘과오’ 앞에, 정작 죄를 지은 수사관과 검사들은 제대로 된 처벌을 받지 않았다는 점이다. 증거를 조작하고 고문을 일삼았던 이들은 승승장구했고, 억울한 누명은 수십 년이 지난 후에야 겨우 벗겨졌다. 78년의 세월 동안 조작, 별건, 강압 수사로 점철된 이 잔혹사는 우리에게 단 하나의 명백한 교훈을 남긴다. 견제받지 않고 책임지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부패하며 국민을 괴물처럼 집어삼킨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비대하고 독점적인 수사 권력의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혁하고, 사법 정의의 본령을 바로 세워야 할 때다.
앞서 짚어본 78년 사법 잔혹사의 이면에는 더욱 경악스러운 진실이 숨어 있다. 무고한 시민의 목숨을 앗아가고 청춘을 송두리째 짓밟은 희대의 조작 사건마다, 그 수사와 기소를 지휘했던 검사들은 단 한 명도 합당한 죗값을 치르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오히려 이들은 사법정의를 무너뜨린 대가로 권력의 중심에 서거나 엘리트 코스를 밟으며 승승장구했다.
1975년 ‘인혁당 재건위 사건’의 사법살인을 지휘했던 서도희, 정명래 당시 검사 등은 8명의 무고한 시민이 단 18시간 만에 처형당하는 비극을 앞장서서 집행하고도 어떠한 형사 처벌이나 내부 징계도 받지 않았다. 이들은 퇴직 후 변호사로 활동하며 천수를 누렸다. 1959년 ‘조봉암 진보당 당수 사건’의 정희택 검사 역시 정적 제거용 짜맞추기 수사로 한 인간의 목숨을 빼앗았으나, 처벌은커녕 이후 감사원장과 국회의원을 지내며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 코스를 밟았다.
이러한 ‘면죄부 체제’는 과거 독재 정권 시절에만 머물지 않는다. 2013년 발생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조작 사건’은 국가정보기관이 중국 공문서를 위조한 범죄를 검찰이 묵인·방조한 희대의 사기극이었다. 대법원이 증거 위조를 인정해 유우성 씨에게 무죄를 선고했음에도, 당시 수사 및 공판을 맡았던 이시원, 이문성 검사는 고의성이 없다는 이유 등으로 단 한 명도 형사 처벌을 받지 않았고, 정직 1개월이라는 가벼운 솜방망이 징계로 면죄부를 받았다. 심지어 이 사건의 주역인 이시원 검사는 퇴직 후 윤 정부 출범 초기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이라는 요직으로 영전하여 사회적 공분을 샀다. ‘낙동강변 살인사건’이나 ‘약촌오거리 사건’ 등 고문과 부실 수사로 점철된 사건의 담당 검사들 역시 아무런 법적 책임 없이 변호사로 개업해 풍요로운 삶을 살고 있다.
왜 대한민국 검사들은 이토록 명백한 죄를 짓고도 법망을 유유히 빠져나가는가. 여기에는 세 가지 구조적 모순이 도사리고 있다.
- 첫째, 기소독점권의 폐해다. 검사의 범죄를 기소할 수 있는 권한이 오직 검찰 자신에게만 종속되어 있었기에 동료의 과오를 눈감아주는 ‘제 식구 감싸기 카르텔’이 유지될 수 있었다.
- 둘째, 공소시효라는 방패다. 고문과 조작의 진실이 재심을 통해 밝혀지기까지는 통상 20~30년의 세월이 걸린다. 마침내 무죄가 선고되어 책임을 물으려 하면 “이미 형사처벌 공소시효가 지났다”며 면책을 주장한다.
- 셋째, 공무원 범죄에 대한 기괴한 면책 특권이다. 억울한 피해자들이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에서 이겨도, 그 수억 원의 배상금은 가해자인 검사 개인의 주머니가 아닌 국민의 혈세로 채워진다. 한 인간의 인생을 파괴한 당사자는 재산상 타격조차 입지 않는 구조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최근 검찰의 보완수사권 개혁을 두고 일각에서는 ‘수사 기능 약화’니 ‘범죄 대응력 저하’니 하며 악의적인 선동을 일삼고 있다. 특히 검찰이 흘려주는 피의사실을 그대로 받아쓰며 여론을 호도하는 일부 언론과 평론가들의 행태는 목불인견이다. 이들은 과거 검찰이 저지른 조작과 강압의 역사는 철저히 외면한 채, 기득권을 지키려는 검찰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협작질’에 앞장서고 있다.
지금 벌어지고 있는 보완수사권 논란의 본질은 간단하다. 과거 검찰이 무소불위의 권력으로 저지른 조작과 폭주의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해, 수사와 기소를 분리하고 권력 간의 견제와 균형을 맞추자는 국민적 요구다.
만약 검찰의 78년 조작·고문사 전반을 다룬 다큐멘터리가 대대적으로 방영된다면, 지금의 보완수사권 논란과 일부 언론들의 기만적인 플레이는 단 한 방에 교통정리 될 것이다. 78년 검찰 역사상 조작·고문 수사로 무고한 이들의 목숨을 빼앗고 청춘을 짓밟은 검사 중 합당한 죗값을 치른 자는 단 한 명도 없다. 권력은 누렸으나 책임은 지지 않았던 이 기괴한 면죄부의 역사가 바로 검찰 개혁과 수사권 분립이 왜 필요한지를 웅변하고 있다.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는 자들에게 미래는 없다. 국민은 더 이상 책임지지 않는 초법적 권력의 폭주를 묵과하지 않을 것이며, 언론 역시 부끄러운 받아쓰기 행태를 멈추고 역사의 진실 앞에 엄중해져야 할 때다. 책임지지 않는 권력은 반드시 괴물이 된다. 무소불위의 독점적 수사 권력을 해체하고 엄중한 책임 체제를 구축하는 것, 그것이 대한민국이 진정한 법치국가로 나아가는 마지막 관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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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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