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천지인 영감/연재 소설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41화. 터진 동토, 신당을 뒤흔드는 호령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41화. 터진 동토, 신당을 뒤흔드는 호령

여인은 흐느끼며 점상 위에 놓인 누런 점사노트에 남편의 생년월일을 정갈하게 적어 내려갔다. ‘癸酉年(계유년) 오월…’

노트 위에 적힌 글자를 내려다보는 김 법사의 눈매가 매섭게 가늘어졌다. 그와 동시에 법당 안의 촛불이 일제히 중심을 잃고 좌우로 심하게 요동치기 시작했다. 묵직하고 탁한 음기가 새댁이 적어 넣은 글자 뒤편에서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것은 단순한 잡귀의 장난이 아니었다. 주인 잃은 유품, 그것도 망자의 집착이 고스란히 때를 탄 물건을 함부로 안방에 들여 터주신과 망자의 영을 동시에 노엽게 만든 무서운 ‘동토살(동티)’의 징조였다.

김 법사는 대번에 자리에서 번뜩 일어섰다. 평소의 인자하고 예의 바른 신사의 모습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전신에서 서슬 퍼런 위압감을 뿜어내며 신당 제단 쪽을 향해 돌아앉은 그의 눈동자가 위를 향해 치켜 올라갔다. 주장신인 벼락신장의 신기가 그의 육신을 관통하기 시작한 것이다.

김 법사가 제단 위의 대신부채를 좌르륵 펼쳐 들고 공중을 향해 거칠게 휘둘렀다.

탁! 탁!

부채로 점상을 부서질 듯 내리치는 호령과 함께, 김 법사의 입에서 벼락신장의 거친 반말 공수가 사정없이 터져 나왔다. 강내림의 시작이었다.

“어허! 이 미련하고 미련한 인간 초라니 보소! 어디 할 짓이 없어서 남이 버린 송장 옷을 제 몸에 주워 걸친 것과 다름없는 짓을 저질렀단 말이냐! 죽은 할멈이 살아생전 제 몸같이 아끼던 안방 자개장을 그것과 똑같은 줄도 모르고 제 발로 짊어지고 안방에 들여놓아?! 그 장롱 문짝마다 할멈 넋이 거머리처럼 붙어서 ‘내 가구 내놓아라’ 하고 네 남편 목덜미를 틀어쥐고 흔드는데, 그것도 모르고 병원 문만 두드려?!”

벼락신장의 추상같은 호통에 새댁은 숨도 쉬지 못한 채 바닥에 엎드려 바르르 떨었다.

“이건 지독하게 터진 동토살이다! 안방을 지키는 성주신이 노발대발하고, 갈 곳 없는 망자의 원혼이 가구에 실려 안방 온기를 홀라당 까먹고 있는 형국이야! 남편 다리가 왜 마비가 오겠냐? 장롱이 안방 문목을 딱 가로막고 서서 산 사람 기(氣)를 다 죽여놓고 있으니 사지가 뒤틀리는 게 당연하지! 당장 손 안 쓰면 네 남편 이번 달 안으로 피를 토하고 고꾸라질 텐데, 겁도 없이 그런 흉물을 집안에 모셔둬?!”

부채를 매섭게 접어 쥔 김 법사가 거친 숨을 몰아쉬며 신기를 가라앉혔다. 원래의 차분하고 인자한 눈빛으로 돌아온 그가 옥수를 한 모금 마시며 이마의 땀을 닦아냈다. 안색이 하얗게 질린 새댁은 눈물조차 흘리지 못하고 법사를 바라보았다.

“법사님… 그럼 저희 이제 어떡합니까? 굿이라도 크게 해야 신랑이 사는 겁니까? 저희 아직 대출금도 많이 남아서 큰돈이 없는데…”

돈 걱정에 눈물짓는 새댁을 보며 김 법사는 혀를 쯧 차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어 보였다.

“새댁, 걱정 마셔요. 천신장군암에서는 사람 목숨 가지고 돈 장난 안 합니다. 이 동토살은 굳이 비싼 비용 들여 큰 굿을 하지 않아도, 정성만 있으면 돈 한 푼 안 드는 민간비방으로도 충분히 잡을 수 있습니다. 내 영험한 비방을 알려줄 테니, 당장 오늘 밤 집으로 내려가서 그대로 행하십시오.”

김 법사의 양심적인 말에 새댁은 한줄기 구원의 빛을 본 듯 법사의 입술만을 간절하게 바라보았다. 안방의 차가운 쇠사슬을 끊어낼 벼락신장의 영리한 처방이 드디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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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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