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천지인 영감/연재 소설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제52화. 지리산으로 가는 길, 2천만 원의 무게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52화. 지리산으로 가는 길, 2천만 원의 무게

천신장군암 신당에서 신가림 시험을 올리고 박선영 기주를 돌려보낸 지 일주일 남짓 지난 어느 날 저녁, 김 법사의 휴대폰이 진동했다. 화면에 찍힌 이름은 ‘박선영’이었다.

전화를 받자, 수화기 너머로 들려오는 선영의 목소리는 보름 전 허주에 짓눌려 신음하던 때와는 확연히 달랐다. 여전히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지만, 목소리에는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한 결의와 묘한 안도감이 서려 있었다.

“법사님, 저 선영이에요. 그동안 평안하셨지요?”

“어디 탈이라도 없으셨소, 기주님?

김 법사의 안부 인사에 선영은 나지막하게 숨을 내쉬며 소식을 전해왔다.

“법사님 말씀대로 제게 신명이 오신 게 맞았어요. 법사님 찾아뵙고 나서 계속 기도를 드리다가, 무속 유튜브를 통해서 참 진실해 보이는 선생님 한 분을 알게 됐어요. 찾아가서 상담을 받았는데…… 법사님이 짚어주신 조상 줄이며 신가림 공수를 토시 하나 안 틀리고 똑같이 말씀하시더라고요.”

선영은 그 보살과 인연이 닿아 마침내 신내림굿 날짜를 확정 지었다고 했다. 신기의 기운이 워낙 드세고 깊은 만큼, 산천의 정기가 서린 지리산 깊은 골짜기의 굿당에서 내림굿을 올리기로 결정되었다는 이야기였다.

김 법사는 수화기를 꼭 쥐고 진심을 담아 기쁜 마음을 전했다.

“참으로 다행입니다, 기주님! 천지신령님께서 기주님의 정성을 어여삐 여기시어 바른 인연을 맺어주신 모양입니다. 이제 인간의 오만함은 다 털어버리시고, 참신령님을 기꺼이 받아들이셔서 신과 인간의 다리가 되어 불쌍한 중생을 구하는 바른 신제자의 길을 걸어가십시오. 내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감사해요, 법사님…… 법사님이 허주를 쳐주시고 길을 터주지 않으셨다면 저는 지금쯤 진짜 미쳐서 죽었을 거예요.”

선영은 고마움을 전하면서도, 이내 씁쓸한 한숨을 깊게 내쉬며 금전적인 고충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그런데 법사님…… 사실 마음이 너무 짓눌려요. 이번 내림굿 비용으로 선생님께 2천만 원을 드려야 하거든요.”

“2천만 원이요…….”

“네. 저번에 그 다른 신당에서 허주 때문에 난동 피우다가 보살님 치료비랑 합의금으로 이혼 위자료를 싹 다 날렸잖아요. 당장 굿값 2천만 원을 마련할 길이 없어서…… 결국 유일하게 남은 제 명의의 자그마한 아파트를 담보로 대출을 받았어요.”

선영의 목소리가 와르륵 무너지며 떨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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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담보대출까지 받아서 굿을 하려니 손이 덜덜 떨리고 서글퍼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이 길이 정말 맞는 건지, 시작부터 빚을 지고 들어가야 하는 신의 길이 너무 무섭기도 하고요…….”

저번 관제수 풍파로 전 재산을 탕진하고, 하나 남은 보금자리까지 담보로 잡혀 거액의 굿값을 마련해야 하는 선영의 처절한 사연에 김 법사의 가슴 한구석도 묵직하게 아려왔다. 신의 제자가 되는 길은 이토록 첫걸음부터 육신과 금전을 깎아내는 고행의 연속이었다.

김 법사는 선영의 떨리는 마음을 다독여주기 위해 묵직한 목소리로 위로를 건넸다.

“기주님, 신의 길에 들어서며 치르는 그 금전의 고락은, 훗날 기주님이 가난하고 슬픈 중생들의 피눈물을 닦아줄 때 쓰일 소중한 자산이 될 겁니다. 신령님이 계신다면 기주님의 그 처절한 정성과 눈물을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실 터이니, 굿당에 오르실 때 돈 생각은 잊고 오직 신명님만 바라보고 조상님만 감응하십시오.”

“네…… 법사님. 법사님 말씀 명심할게요. 지리산 가기 전에 법사님께 꼭 말씀드리고 응원받고 싶었어요.”

“마음 단단히 드십시오. 내가 신당에서 맑은 옥수를 올리고 지리산 굿당을 향해 기주님의 내림굿이 잘 끝나도록 일심으로 축원해 드리겠습니다.”

전화를 끊은 뒤, 김 법사는 법당 안의 신령님 전을 향해 가만히 합장을 올렸다. 유튜브를 통해 맺어진 신엄마와의 인연, 그리고 집 담보대출까지 받아 지리산으로 향하는 선영의 뒷모습에 가슴 한구석 나지막한 우려가 스쳐 지나갔지만, 김 법사는 부디 그녀가 무사히 성불하여 바른 제자로 거듭나기만을 온 마음으로 빌어줄 뿐이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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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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