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제54화. 터를 잡는 고통, 짙어지는 금전의 그늘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제54화. 터를 잡는 고통, 짙어지는 금전의 그늘

내림굿을 마쳤다고 해서 모든 일이 끝난 것은 아니었다. 참된 신제자로 서기 위해 박선영 보살 앞에 기다리고 있는 다음 관문은 바로 신령님을 모실 터를 잡고 ‘신당(神堂)’을 차리는 일이었다. 그러나 세상은 까마득한 신송아지 제자에게 결코 녹록지 않았다.
“무당 집이라고요? 아유, 안 돼요. 수시로 향 피우고 밤마다 징 치고 방울 흔들 텐데, 이웃 주민들 민원 들어와서 절대로 집 못 빼줍니다.”
신당을 차릴 집을 구하는 과정부터 처절한 고행이었다. 점집 들어온다는 소리에 집주인들은 하나같이 고개를 저으며 차갑게 문을 걸어 잠갔다. 세상을 등진 무당이라며 은근히 무시하고 멸시하는 시선 속에서, 선영 보살은 발바닥에 땀이 나도록 복덕방을 전전해야 했다. 결국 그녀가 간신히 얻어낸 곳은 어느 후미진 골목길 구석, 사람이 오랫동안 찾지 않아 눅눅한 냄새가 베여 있는 오래된 단독주택의 작은 방 한 칸이었다.
터는 얻었으나, 정작 진짜 산넘어 산은 신당을 조성하는 과정에서 찾아왔다.
신엄마는 신당을 차리기 위한 기물과 집기를 고르는 내내 은근하면서도 치밀하게 고급품을 강요하기 시작했다.
“선영아, 신당 집기나 불단은 한번 마련해 놓으면 평생을 곁에 두고 신령님을 모시는 성물(聖物)이다. 당장 몇 푼 아끼겠다고 소홀히 모시면 신령님이 그 서운함을 어찌 보시겠니? 탱화 하나를 그려도 법력 높은 스님 전에서 정성으로 모셔와야 신위가 제대로 사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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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놓고 돈을 달라고 요구하는 대신, ‘신령님을 위한 평생의 예의’라는 허울 좋은 말로 포장하여 은근히 최고급 품목만을 유도하는 신엄마의 언변에 선영 보살은 차마 거역할 수가 없었다.
이미 내림굿 2천만 원 때문에 집을 담보 잡혔던 선영이었지만, 점집 임대 보증금과 월세, 그리고 수백에서 천만 원을 호가하는 최고급 불단과 탱화, 신복, 놋그릇 등의 신당 조성 비용을 대기 위해 또다시 피가 말라갔다. 결국 선영은 카드 현금서비스는 물론, 제2금융권 신용대출까지 영끌하며 서글픈 빚더미를 얹어야 했다.
그렇게 빚으로 얼룩진 후미진 방 한 칸에 화려한 신복과 반짝이는 놋그릇이 차려졌다.
하지만 고통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힘들게 신당 조성이 완공되자마자, 신엄마는 또다시 새로운 명목을 내세우며 선영의 목을 죄어오기 시작했다.
“선영아, 신당을 다 차렸다고 끝이 아니다. 이제 신령님을 불단에 정식으로 앉혀 드리는 ‘좌정식(座定式)’과 눈을 밝혀드리는 ‘점안식(點眼式)’을 올려야 해. 그래야 맑은 신령님이 신당 안방을 차지하시지, 안 그러면 길거리 잡귀가 들어앉는다. 이 식을 올리는 데 들어가는 비용도 만만치 않으니 어서 준비해라.”
좌정식과 점안식이라는 생소한 무속 명목 앞에 선영은 또다시 덜덜 떨리는 손으로 돈을 구하러 다녀야 했다. “신령님이 안 앉으시면 잡귀가 들어온다”는 신엄마의 무서운 말에 이미 영혼까지 털린 선영은, 결국 남아있던 소액 대출과 지인들에게 긁어모은 돈을 탈탈 털어 또다시 신엄마의 손에 쥐여주어야 했다.
신내림굿부터 시작해 신당 터 마련, 기물 구입, 그리고 좌정식과 점안식 명목까지 끊임없이 피를 빨아먹듯 돈을 뜯어가는 신엄마의 지독한 요구에 선영 보살의 육신과 영혼은 기름기 하나 없이 바짝 말라가고 있었다. 후미진 골목길 낡은 방, 빚으로 얼룩진 화려한 신당 바닥에 홀로 앉아 선영은 서럽게 눈물을 흘렸다. 자신이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이 길이 참된 신의 길인지, 아니면 끝없는 금전의 지옥표 입장권을 끊은 것인지 가슴이 메어왔다.
(다음 회에 계속) /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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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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