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천지인 영감/연재 소설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뱀꿈에 갇힌 부부]제1화. 양철지붕 아래 떨어진 첫 공수

제1화. 양철지붕 아래 떨어진 첫 공수

진교 나들목을 빠져나와 진교를 지나 하동으로 향하는 왕복 2차선 국도를 달리다 보면 산 쪽으로 들어가는 작은 마을길 하나가 나온다.

차 한 대가 다니기에 넉넉한 시멘트 포장길을 따라 조금 올라가면 오래된 시골집 예닐곱 채가 띄엄띄엄 모습을 드러낸다. 예전에는 집집마다 사람 사는 소리가 제법 났겠지만, 지금은 연세 많은 어르신 몇 분만 남아 있을 뿐 빈집이 더 많다.

그래서인지 대낮에도 마을은 조용하다.

논과 밭 사이로 난 길에서는 계절마다 다른 냄새가 난다. 봄이면 집 뒤 산비탈의 고사리밭이 푸르게 올라오고, 여름이면 대숲이 짙어진다. 가을에는 감나무밭에 주홍빛 감이 달린다.

마을길 끝자락에 이르면 이층 건물 한 채와 그 옆으로 함석지붕을 얹은 단층 조립식 건물이 보인다.

이곳이 내가 신령을 모시고 점사를 보는 천신장군암이다.

이층 건물은 요사채로 사용하고 있다.

마당은 아주 넓지도, 그렇다고 비좁지도 않다. 마당 끝 데크에 서면 앞쪽으로 초원이 시원하게 펼쳐지고, 한쪽에는 양옆 논으로 물을 보내는 농수로가 지나간다. 물이 마르지 않는 때에는 가만히 앉아 있어도 졸졸 흐르는 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집 뒤로는 산이 받치고 있다.

감나무밭과 고사리밭이 이어지고, 한쪽에는 오래 묵은 대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다.

입구에는 오래된 서낭석도 하나 있다.

내가 이곳에 들어오기 훨씬 전부터 마을 사람들이 서낭으로 모셔온 돌이다. 누가 처음 모셨는지는 이제 정확히 아는 사람도 드물다. 마을 어르신들에게는 그저 자신들이 어릴 적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던 서낭이다.

신령을 모신 건물 뒤편에는 돌을 쌓아 올린 칠성탑이 있다.

낮에 보면 특별할 것 없는 하동의 한적한 시골 풍경이다.

그러나 해가 산마루 뒤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조금 달라진다.

빈집이 많은 동네라 저녁만 되어도 사람 목소리가 뚝 끊긴다. 농수로의 물소리와 대나무끼리 부딪치는 소리, 풀벌레 울음이 그 자리를 대신한다. 바람이 센 밤에는 대숲 전체가 한꺼번에 몸을 뒤척이는 듯한 소리를 낸다.

비라도 내리면 함석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린다.

나는 이곳에서 신령을 모시며 찾아오는 사람들의 점사를 보고 있다.

계룡산에서 신을 받은 뒤 대전과 대구, 진주를 비롯한 여러 지역을 거치며 삼십 년 넘게 무업을 이어왔다.

그동안 내 앞에 앉았던 사람이 정확히 몇 명인지는 나도 모른다.

사업이 망해 찾아온 사람도 있었고, 자식 문제 때문에 온 부모도 있었다. 병원에서는 이상이 없다는데 몸이 계속 아프다는 사람, 부부 문제를 안고 온 사람, 밤마다 이상한 것을 본다는 사람도 있었다.

사람이 살아가는 모습이 제각각이듯 점상 앞에 내려놓는 사연도 하나같이 달랐다.

그 가운데는 세월이 지나도 잊히지 않는 사람이 있다.

지금부터 적으려는 이야기도 그중 하나다.

당사자의 사생활을 보호하기 위해 이름과 일부 신상은 바꾸었지만, 사건의 중심이 된 점사와 당시 내가 겪었던 일은 기억을 토대로 풀어보려 한다.

그날 천신장군암을 찾아온 사람은 부산에서 왔다는 서른 중반의 여자였다.

이름은 유진이라고 하겠다.

아침 일찍 부산에서 출발했다는데 얼굴에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다. 처음 찾아오는 곳이 불편했는지 차에서 내려 마당으로 들어오면서도 주변을 몇 차례 살폈다.

나는 평복 차림으로 손님을 맞았다.

“멀리서 오시느라 고생 많으셨습니다. 차는 많이 안 막혔습니까?”

“괜찮았어요. 생각보다 일찍 왔어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표정은 편하지 않았다.

나는 우선 차부터 한 잔 내주었다.

처음 무속인을 찾아오는 사람들 가운데는 문턱을 넘는 것 자체를 어려워하는 이들이 있다. 더구나 가족에게도 제대로 말하지 못한 일을 품고 온 사람이라면 앉자마자 이것저것 캐묻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잠시 기다렸다.

유진이 먼저 입을 열었다.

“법사님, 제가 요즘 좀 이상합니다.”

“어떻게 이상합니까?”

“밤마다 이상한 꿈을 꾸고요. 가위도 자주 눌려요. 몸도 예전 같지 않고…….”

거기까지 말하고 입을 다물었다.

분명 더 할 말이 있는 얼굴이었다.

나는 굳이 묻지 않았다.

“그러면 먼저 점사부터 봅시다. 생년월일하고 이름을 말씀해주십시오.”

유진이 알려주는 내용을 종이에 받아 적었다.

사주와 이름을 확인한 뒤 자리에서 일어나 신령님을 모신 방으로 들어갔다.

촛불을 살피고 점상 앞에 앉았다.

정면에는 벼락도끼를 든 장군님의 탱화가 있었다.

대신방울과 부채를 들었다.

짤랑, 짤랑.

산속의 고요를 타고 방울 소리가 또렷하게 퍼졌다.

몇 차례 방울을 흔들며 신령님께 손님의 사정을 여쭈었다.

그런데 그날은 시작부터 공수가 거칠었다.

“이 미련한 년아! 네 발로 지옥 불에 걸어 들어가면서 누굴 탓해!”

밖에 앉아 있던 유진의 어깨가 움찔했다.

점사를 보다 보면 공수가 내려오는 방식도 그때그때 다르다.

몇 마디를 묻고 나서야 길이 열리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조상부터 짚어 내려가야 하는 집도 있다.

유진의 경우는 시작부터 남편 이야기가 튀어나왔다.

“지 서방 바람난 것 잡겠다고 여기까지 왔느냐?”

유진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네?”

“남편 탓하기 전에 네가 그 사람을 어떻게 대했는지부터 생각해봐라. 아직 깨를 볶아도 모자랄 신혼에 남편을 남자 취급도 안 하고 밀어내는데, 그 사내가 집에 마음을 붙이고 살겠느냐!”

유진의 표정이 달라졌다.

놀란 것인지 억울한 것인지 처음에는 알 수 없었다.

그러더니 울먹이며 말했다.

“아니에요. 저는 남편 정말 사랑해요. 사랑해서 결혼했고요. 저도 잘해보려고 했어요.”

공수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랑한다는 년이 잠자리에서는 왜 뱀 본 것처럼 질겁을 하느냐. 남편 손만 닿아도 밀어내고 한 이불 속에서도 몸을 피한 것이 누구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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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말을 듣자 유진이 입을 다물었다.

눈가가 금세 붉어졌다.

나는 그때 알았다.

이 여자가 처음부터 모든 이야기를 털어놓고 온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점사를 보다 보면 이런 일이 드물지 않다.

말하기 부끄러워 숨기는 사람도 있고, 점을 보는 사람이 어디까지 알아맞히는지 시험하려는 사람도 있다. 자기 자신도 무엇이 중요한 문제인지 몰라 말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유진 역시 마찬가지였다.

나중에야 들었지만 천신장군암까지 찾아온 이유 가운데 하나가 남편의 외도 문제였다.

최근 들어 퇴근이 늦어지고 집 밖으로 겉도는 남편에게 여자가 생긴 것이 아닌가 의심하고 있었다.

하지만 점사를 보기 전에는 그 이야기를 내게 하지 않았다.

나는 방울을 내려놓고 잠시 호흡을 가다듬었다.

공수가 가라앉은 뒤 손수건을 건넸다.

“많이 놀라셨지요?”

유진은 말없이 눈물을 닦았다.

잠시 뒤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아까 말씀하신 게…… 맞아요.”

“어떤 것이 말입니까?”

한참을 망설이다가 대답했다.

“남편하고 잠자리를 못 해요.”

나는 다음 말을 기다렸다.

“제가 남편을 싫어하는 것도 아니에요. 평소에는 괜찮아요. 그런데 밤에 남편이 가까이 와서 몸에 손을 대려고 하면…….”

유진은 말을 멈추고 자기 팔을 쓸어내렸다.

“소름이 돋아요. 너무 싫고, 어떨 때는 토할 것 같아요.”

“언제부터 그랬습니까?”

“정확하게는 모르겠어요. 처음에는 피곤해서 그런 줄 알았는데 갈수록 심해졌어요.”

나는 물었다.

“꿈은 어떻습니까?”

유진이 나를 바라봤다.

“뱀이 나옵니까?”

이번에는 대답이 바로 나오지 않았다.

얼굴부터 굳었다.

“법사님…… 제가 뱀꿈 꾼다는 것도 아셨어요?”

“한두 번이 아니지요?”

유진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요즘 계속 그래요.”

꿈에서 깨어나면 온몸이 땀에 젖어 있고 어떤 날은 눈을 떴는데도 몸을 움직이지 못했다고 했다.

가위에 눌리는 날도 잦아졌다.

더 이상한 것은 그다음이었다.

악몽을 심하게 꾼 날에는 남편이 가까이 오는 것조차 견디기 어려웠다. 예전에는 좋아하던 남편의 냄새가 역하게 느껴지고 손이 몸에 닿으면 속부터 울렁거렸다.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남편이 미운 것도 아닌데 몸이 먼저 싫다고 해요. 그러니까 남편도 이제 저한테 정이 떨어졌는지…… 집에 잘 들어오지도 않고요.”

사주 노트에 적힌 사주를 다시 살폈다.

처음 공수에서 남편의 외도보다 부부의 잠자리 문제가 먼저 나온 데에는 이유가 있다고 보았다.

겉으로 드러난 문제만 보면 남편의 행동부터 눈에 들어온다.

하지만 내가 점상에서 받은 것은 다른 쪽이었다.

부부 사이에 무엇인가 끼어 있었다.

“남편분하고 사이가 이렇게 된 것을 단순히 권태기나 바람 문제만으로 보면 안 될 것 같습니다.”

“그러면 뭐가 문제인가요?”

“보살님 몸에 부정이 타 있습니다.”

유진의 표정이 굳어졌다.

“부정이요?”

“그렇다고 무조건 굿부터 해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큰돈 쓸 생각도 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유진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점상 위 종이를 앞으로 당겼다.

“먼저 하나씩 확인해봅시다. 제가 보기에는 보살님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남편분 사주도 함께 봐야 하고 두 집안의 조상줄까지 살펴야 할 것 같습니다.”

유진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조심스럽게 물었다.

“법사님…… 저희 부부, 다시 예전처럼 살 수 있을까요?”

나는 그 자리에서 된다고도, 안 된다고도 말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점상을 지키며 배운 것이 하나 있다.

사람이 절박할수록 그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말부터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대신 다른 것을 물었다.

“결혼하기 전에 두 분 궁합은 보셨습니까?”

유진이 뜻밖의 질문이라는 듯 나를 바라봤다.

“네. 시어머니가 세 군데나 가서 보셨어요.”

“뭐라고 하던가요?”

유진이 씁쓸하게 웃었다.

“가는 곳마다 천생연분이라고 했어요. 이렇게 좋은 궁합도 드물다고…….”

두 사람의 사주가 적힌 종이를 다시 내려다보았다.

바로 그 말이 문제를 풀 첫 실마리였다.

겉으로는 더없이 좋은 궁합이었다.

그런데 함께 살아야 할 두 사람이 한 침대에서 서로의 몸조차 견디지 못하고 있었다.

그렇다면 사주 겉면만 들여다봐서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

더 밑으로 내려가야 했다.

두 사람 뒤에 서 있는 집안의 뿌리까지.

그날 유진의 점사는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다음 회에 계속)

글쓴이 천신장군암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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