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규범 어겼다”는 말조차 못 하나…이재명 대통령 비판하는 국민의힘의 침묵 정치 [천지인뉴스 사설]
“국제규범 어겼다”는 말조차 못 하나…이재명 대통령 비판하는 국민의힘의 침묵 정치 [천지인뉴스 사설]
정범규 기자

- 공해상 구호선 나포·한국인 억류에도 “과도한 발언” 주장
- ICC 체포영장 발부된 네타냐후…국제사회 비판 이미 현실화
- 국민 보호보다 외교 눈치 우선한 정치권 태도 도마 위
전쟁은 많은 것을 무너뜨린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오랜 세월 동안 전쟁 속에서도 최소한 지켜야 할 기준을 만들기 위해 노력해왔다. 민간인 보호, 구호 활동 보장, 국제인도법 준수는 그 가운데 가장 기본적인 원칙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이스라엘의 가자지구행 국제 구호선박 나포 사건은 단순 외교 갈등 차원으로 축소할 수 없는 국제적 논란이다.
특히 문제의 선박은 군함이 아니라 구호 목적의 민간 선박이었다. 국제 활동가들과 시민사회 인사들이 인도적 지원을 목적으로 탑승했고, 그 가운데 한국 국민도 포함돼 있었다. 그런데 이 선박은 공해상에서 이스라엘군에 의해 강제 나포됐고 탑승자들은 억류됐다. 국제법적 논란이 불거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공해는 특정 국가의 영토가 아니다. 국제해양법 체계에서 공해상 항행의 자유는 핵심 원칙으로 여겨진다. 물론 전시 상황과 안보 문제를 이유로 제한 조치가 이뤄지는 경우가 있지만, 민간 구호 목적 선박에 대한 강제 나포는 국제사회에서도 매우 민감하게 다뤄지는 사안이다. 더구나 가자지구 인도주의 위기를 둘러싸고 국제적 우려가 커지는 상황에서 벌어진 사건이라는 점은 논란의 무게를 더욱 키우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에 대해 “제3국 선박을 나포하고 감금한 것이 타당한 일이냐”며 “최소한의 국제규범을 다 어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관련해 국제형사재판소(ICC) 체포영장 문제까지 언급했다.
그러자 국민의힘 일각에서는 “외교적으로 부적절하다”, “과도한 발언이다”라는 비판이 나왔다. 하지만 되묻지 않을 수 없다. 국제사회가 이미 문제를 제기하고 있는 사안을 언급한 것이 정말 과도한 것인가.
국제형사재판소는 이미 네타냐후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전 국방장관에 대해 전쟁범죄 및 반인도범죄 혐의로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이는 단순 정치적 구호가 아니라 국제형사 사법체계가 중대한 범죄 혐의를 공식 심판 대상으로 판단했다는 의미다. ICC 가입국들은 원칙적으로 해당 영장을 집행할 의무를 가진다.
실제로 유럽과 국제사회 곳곳에서는 네타냐후 총리의 책임 문제를 공개적으로 언급해왔다. 아일랜드와 스페인, 벨기에, 슬로베니아 등 유럽 정치권에서는 ICC 결정 존중 입장이 이어졌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은 국제사법재판소(ICJ)에 이스라엘의 집단학살 가능성을 제기하며 제소까지 진행했다. 국제연합(UN) 산하 기구들 또한 가자지구 민간인 피해와 의료체계 붕괴, 구호물자 차단 문제를 반복적으로 경고해왔다.
즉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은 국제사회에서 이미 제기되고 있는 문제를 대한민국 정부 차원에서 언급한 것이다. 오히려 그동안 한국 정부가 지나치게 신중하거나 침묵해왔다는 평가가 적지 않았다.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단순한 외교 수사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공해상에서 억류됐다. 정부가 국민 보호와 국제규범 문제를 강하게 언급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 책무에 해당한다. 실제 대통령실은 외교 대응과 영사 조력을 통해 한국인 활동가 2명이 구금시설에 수용되지 않고 즉시 추방 조치됐다고 밝혔다. 정부가 적극 대응한 결과라는 설명이다.
그럼에도 국내 정치권 일부는 사건의 본질보다 대통령 표현 수위를 문제 삼고 있다. 국제법 논란이 있는 공해상 선박 나포와 한국인 억류 사건보다 대통령의 비판 발언이 더 문제라는 식의 접근은 쉽게 납득하기 어렵다.
외교는 단지 강대국 눈치를 보는 기술이 아니다. 국제규범과 원칙을 어떤 기준으로 지켜낼 것인지에 대한 국가의 태도이기도 하다. 특히 대한민국처럼 국제무역과 국제질서 의존도가 높은 국가는 국제법과 인권 원칙을 더욱 중요하게 다룰 필요가 있다.
더구나 국민의힘은 과거 중국·북한·러시아 문제에서는 강경 발언을 서슴지 않았다. 그런데 이스라엘 문제에 대해서만 “신중해야 한다”며 침묵을 요구하는 태도는 일관성 측면에서도 의문을 남긴다. 국제인권과 국제규범 문제에 선택적 기준을 적용한다면 결국 외교 원칙 자체가 흔들릴 수밖에 없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은 국가 존재 이유다. 그것이 외교 현장에서 흔들린다면 정부는 존재 의미를 잃게 된다. 이번 사안을 둘러싼 논쟁은 단순히 이스라엘과의 관계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이 국제규범과 국민 보호 원칙을 어떤 수준으로 지켜낼 것인지에 대한 질문에 가깝다.
정치권 역시 이제는 정파적 유불리를 넘어 사건의 본질을 바라봐야 할 시점이다. 국제사회가 이미 우려를 표하고 있는 사안에 대해 최소한의 원칙적 발언조차 하지 못한다면, 결국 침묵하는 외교만 남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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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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