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제44화. 오만과 착각, 신당을 시험하는 눈빛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44화. 오만과 착각, 신당을 시험하는 눈빛

“하동에 용한 법사님이 계신대서 소문 듣고 찾아왔습니다.”
천신장군암의 법당 문을 열고 들어선 이는 서른여섯쯤 되어 보이는 젊은 여인, 박선영이었다. 화려한 명품 가방을 옆에 끼고 손가락마다 굵은 금반지를 주렁주렁 감은 그녀는, 겉보기엔 그저 평범하게 고민을 상담하러 온 손님처럼 조심스럽게 인사를 건넸다.
하지만 그녀의 눈빛은 들어설 때부터 확연히 달랐다. 허주(잡귀)에 깊게 쓰여 무속인들 머리 꼭대기에 앉으려는 자들의 전형적인 특징이었다. 선영은 자리에 앉기도 전에 신당 구석구석을 매서운 눈으로 훑어내렸다. 제단에 모셔진 신상들의 배치, 신장칼과 신장대의 위치, 그리고 한쪽 벽면에 모셔진 제석단지의 생김새까지 마치 평가관이라도 된 양 하나하나 따지듯 바라보았다. 방구석에서 밤새 무속 관련 유튜브 방송만 수천 편을 탐독하며 주워들은 어설픈 지식을 제 무속 지식인 양 우쭐대는 망상에 빠진 여자였다. 본인의 정체를 숨긴 채 기고만장하게 전국의 무당들을 시험하러 다니는 그 똘끼와 오만함 때문에, 결국 얼마 전 남편에게 이혼까지 당했으면서도 정신을 못 차린 터였다.
김 법사는 그녀의 등 뒤에 남의 제삿밥이나 탐내며 동자, 선녀 시늉을 하는 시기투성이 늙은 잡귀가 거머리처럼 붙어 낄낄거리는 형상을 보았지만, 이내 허허 웃으며 점사노트를 펼쳤다.
“먼 길 오시느라 고생하셨습니다. 차분히 점을 봐 드릴 테니 생년월일 사주를 어찌 되시는지 적어주셔요.”
그러자 박선영은 기다렸다는 듯 입꼬리를 비죽이며 슬슬 김 법사를 약 올리기 시작했다.
“어머, 법사님. 요즘 유튜브 보니까 진짜 영험하고 유명한 만신들은 신당 문 열고 들어올 때 사주 안 받아도 신령님이 얼굴만 보고 공수를 탁 내리시던데요? 다른 점집 가니까 사주 안 줘도 알아서 척척 뽑아내던데, 여기는 꼭 사주를 넣어야 점이 나오나 보죠?”
무당을 은근히 깎아내리며 시험하려는 도발이었지만, 김 법사는 동요하지 않고 중년의 인자한 미소를 지으며 차분하게 명을 이어 나갔다.
“기주님, 무당들이 왜 ‘만신(萬神)’이라 불리는지 아십니까? 그것은 하늘 아래 천신만신, 수많은 신령님을 모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신점이라는 것은 기독교나 불교처럼 정형화된 경전이나 틀이 맞추어진 종교가 아닙니다. 무당이 모신 주장신명과 그 제자의 성향에 따라 점사를 보는 방법이 천차만별로 다르지요.”
김 법사는 선영의 눈을 맑게 응시하며 말을 이어갔다.
“어떤 제자는 엽전이나 쌀점을 쳐서 신의 뜻을 받아내고, 어떤 이는 화투점을 보기도 하며, 방금 새댁이 말한 대로 신령님이 눈앞에 거울처럼 비춰주시는 화경(火鏡)을 보고 점사를 뽑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어떤 방법을 쓰든 무당이 점사를 본다는 것은 한 인간의 앞날을 예언하고 길흉화복을 가려내는 중차대한 일입니다. 사람의 인생이 걸린 일이기에 단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서는 안 되는 법이지요.”
김 법사는 점사노트를 가볍게 톡톡 두드렸다.
“눈앞에 화경으로 무언가 번뜩 보인다고 해서 그걸 덥석 공수로 뱉었다가, 혹여나 인간의 생각이나 잡귀가 장난을 친 ‘헛공수’라면 그 죄업을 어찌 감당하겠습니까? 그래서 나 같은 제자들은 화경에 줄기가 보인다 하더라도, 그것이 틀림없는지 두 번, 세 번 확인하기 위해 사주를 넣는 것입니다. 사주를 바탕으로 들이치는 기운을 맞추고, 그쪽 집안의 조상점까지 깊이 파고들어 가 보아야 비로소 실수가 없는 정확한 신의 공수가 완성되는 법이지요.”
진짜 무업의 무게와 신점의 이치를 조목조목 짚어주는 김 법사의 묵직하고 신중한 설명에, 기고만장하게 도발하려던 박선영은 순간 할 말을 잃은 듯 멍하니 입을 다물었다. 주워들은 가짜 지식으로는 도저히 반박할 수 없는 30년 내공의 진중함이 선영의 오만함을 부드럽게 압도하기 시작했다.
(다음 회에 계속) /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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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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