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제50화. 가림의 날, 대나무에 내린 신위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50화. 가림의 날, 대나무에 내린 신위

사흘 뒤, 천신장군암의 신당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거액이 들어가는 대형 가림굿 대신, 김 법사는 경제적으로 탕진한 박선영 기주의 사정을 고려하여 정갈하고도 엄중한 ‘가림 치성(시험 점사)’을 준비했다.
제단 위에는 맑은 옥수 세 그릇과 흰 쌀, 그리고 오방기와 대신방울, 그리고 길쭉한 대나무 끝에 하얗게 오려낸 창호지를 설경(說經)처럼 감아놓은 신장대(神將竹)가 가지런히 차려졌다.
무속에서 신장대란 신령의 기운을 직접 지기(指氣)로 받아내리는 거룩한 신물(神物)이다. 대나무의 곧은 마디는 정기를 뜻하고, 그 끝에 감아둔 하얀 창호지 설경은 신령님이 좌정하실 깨끗한 자리를 의미했다. 자손의 핏줄에 스며든 기운이 참신령의 성스러운 공수인자, 아니면 신의 탈을 쓴 영악한 허주(잡귀)의 장난질인지를 무당의 영력과 신장대를 통해 가려내는 칼날 같은 시험이었다.
“기주님, 마음을 비우고 이 신장대를 두 손으로 바짝 움켜쥐시오.”
선영이 떨리는 손으로 하얀 창호지가 감긴 신장대를 거머쥐자, 김 법사가 대신방울을 청아하게 흔들며 칠성축원과 벼락신장 축원을 나지막하게 읊조리기 시작했다. 신당의 공기가 파르르 떨리며 맑은 영기가 감돌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경련하듯 떨리던 선영의 손끝에서부터 시작된 진동이 이내 신장대 전체로 퍼져나갔다.
“어…… 어어……!”
선영의 의지와 상관없이 대나무 끝의 하얀 창호지 설경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위아래로 거세게 춤을 추기 시작했다. 이내 선영이 신당 바닥에서 번쩍 일어서며 신장대를 들고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제자리를 돌며 신당 안을 비상하듯 뛰는 선영의 눈빛에는, 허주가 씌었을 때의 눅눅함이 아닌 푸른 불꽃 같은 신기(神氣)가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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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신장대를 흔들며 뛰던 선영이 마침내 제단 앞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그러고는 제 손으로 가슴을 쾅쾅 치며, 본인의 입을 통해 쩌렁쩌렁한 신의 공수를 스스로 내뿜기 시작했다.
“아이구, 내 자손아! 불쌍한 내 자손아! 문전에서 빌고 칠성전에 명을 빌던 조상 공줄을 차버리고 어디서 구더기 같은 허주를 들여 몸을 더럽혔느냐! 이제야 제 신령을 찾아왔으니 가슴이 찢어지는구나!”
선영의 입에서 스스로 터져 나온 웅장하고 서러운 공수에, 신당 안의 공기가 숙연해졌다. 선영은 공수를 내리고 나서야 신장대를 스르르 떨어뜨리며 꺼꺼 머리를 조아리고 통곡을 터뜨렸다.
하지만 김 법사의 눈빛은 여전히 날카로웠다. 스스로 공수를 내렸다 해도, 이것이 제 몸을 타고 들어온 참신령의 영적인 가림인지를 완전하게 입증해야 했기 때문이다. 김 법사는 바닥에 엎드린 선영을 향해 묵직하게 호통치듯 지시했다.
“기주님! 아직 시험이 끝나지 않았소! 참신령의 제자라면 눈을 감아도 신령님의 기물을 찾아내는 법이오! 내가 오늘 치성을 올리기 전, 신당 바깥 어딘가에 숨겨놓은 신기물(神氣物)을 당장 찾아오시오!”
김 법사의 매서운 공수에, 신장대를 놓아두고 눈이 붉게 충혈된 선영이 무엇인가에 홀린 듯 번쩍 일어났다. 그러고는 신당 문을 거칠게 열고 마당 바깥으로 쏜살같이 뛰어 나가기 시작했다.
(다음 회에 계속) /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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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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