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21화. 이성을 깨우는 오열, 찢겨나간 짐승의 허물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21화. 이성을 깨우는 오열, 찢겨나간 짐승의 허물

위이잉-! 위이잉-!
위이잉-! 위이잉-!
칠흑같이 어두운 바(Bar)의 구석 자리, 끈적한 타액과 가쁜 숨소리가 뒤엉키던 은밀한 공간을 날카로운 진동 소리가 무참히 찢어발겼다. 정환의 시야에 들어온 휴대전화 액정 위에는 믿을 수 없게도 ‘유진’이라는 두 글자가 창백한 빛을 발하며 떠올라 있었다. 지난 1년 동안 밤늦게 단 한 번도 울리지 않았던 이름. 안방에서 자신을 벌레 보듯 밀어내며 얼음장 같은 등을 돌렸던 아내의 이름이었다.
짐승처럼 달아올라 지영의 살갗을 파고들려던 정환의 하반신이 순간 벼락이라도 맞은 듯 뻣뻣하게 굳어졌다. 마비되었던 이성이 그 창백한 액정 불빛을 타고 한 방울씩 새어 들어오려는 찰나, 지영의 희고 매끄러운 손이 다급하게 액정 화면을 덮어버렸다.
“선배, 받지 마. 받지 마요. 지금 나랑 있잖아. 그 여자가 선배한테 어떻게 했는데…….”
지영은 애가 타는 듯 정환의 귓불을 잘근잘근 깨물며 자신의 풍만한 가슴을 그의 맨가슴에 더욱 맹렬하게 비벼댔다. 평소라면 이성을 완전히 날려버렸을 그 노골적이고 끈적한 유혹의 향기가, 어찌 된 일인지 갑자기 역겨운 싸구려 화장품 냄새처럼 코끝을 찔렀다. 정환은 홀린 듯 지영의 손을 거칠게 쳐내고는, 바닥으로 떨어지려던 휴대전화를 움켜쥐었다. 알코올과 욕정에 취해 있던 그의 입에서 짜증 섞인 탁한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어, 왜. 왜 전화했는데.”
상처받은 수컷의 알량한 자존심이었다. 나를 거부하더니 이제 와서 왜 찾느냐는, 뾰족하게 날을 세운 반항심이 섞여 있었다. 그러나 수화기 너머에서 들려온 것은 평소의 그 차갑고 신경질적인 아내의 음성이 아니었다.
“여보…… 정환 씨…… 흐으윽, 제발…….”
짐승에게 목덜미를 물어뜯긴 채 피를 토하는 듯한, 처절하고도 가엾은 오열이었다. 정환의 심장이 갈비뼈 안쪽에서 쿵, 하고 무겁게 바닥으로 곤두박질쳤다.
“유진아…? 무슨 일이야. 왜 울어, 무슨 일인데!”
“나 좀 살려줘, 여보…… 내가 다 미안해.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안 돼서, 당신 만지기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무서워, 나 당신 정말 사랑해. 제발 나 좀 혼자 두지 마. …… 제발 집으로 와요…….”
정환의 뇌리를 망치로 강하게 후려치는 듯한 충격이 밀려왔다. ‘당신을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가, ‘내 몸이 내 마음대로 안 된다’는 절규가 정환의 고막을 찢고 가슴 깊은 곳에 박혀있던 억울함의 응어리를 산산조각 내버렸다. 거울을 보며 미친 듯이 제 몸을 쥐어뜯고, 변기를 붙잡고 노란 위액을 토해내며 사시나무 떨듯 떨던 아내의 참담한 뒷모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녀는 나를 미워한 게 아니었다. 나를 징그럽다고 밀어낸 게 아니었다. 보이지 않는 끔찍한 지옥 속에서 홀로 사투를 벌이며 미쳐가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 순간, 정환의 몸을 지배하고 있던 시퍼런 색욕이 마치 찬물을 뒤집어쓴 듯 흔적도 없이 증발해 버렸다. 자신이 지금 얼마나 끔찍하고 더러운 짓을 저지르려 했는지 뼈저린 자각이 밀려왔다. 아내는 살려달라 울부짖고 있는데, 자신은 낯선 여자의 스커트를 들추고 그 알량한 성욕과 자존심을 채우려 발정 난 개처럼 헐떡이고 있었다. 참을 수 없는 맹렬한 죄책감과 자기혐오가 해일처럼 밀려와 정환의 숨통을 조였다.
“선배, 어딜 가려고! 그 미친 여자가 선배 벌레 취급하잖아! 내가 다 해준다니까, 내가 선배 진짜 사내로 만들어준다고!”
정신을 차린 정환이 허겁지겁 바지 지퍼를 올리고 셔츠 단추를 채우려 하자, 다급해진 지영이 짐승처럼 달려들어 정환의 허리를 등 뒤에서 강하게 끌어안았다. 그녀의 목소리는 이미 평소의 싹싹하던 직장 후배가 아니라, 사내의 양기를 뺏기지 않으려 발악하는 악귀(惡鬼)처럼 기괴하고 날카로웠다. 지영은 정환의 셔츠를 북북 찢을 듯이 매달리며 그의 하반신에 자신의 몸을 억지로 밀착시켜 왔다.
“비켜!”
정환은 몸서리를 치며 자신의 허리를 감고 있는 지영의 팔을 무자비하게 뿌리쳤다. 그 힘이 어찌나 강했는지 지영은 소파 모서리에 어깨를 부딪히며 바닥으로 나뒹굴었다. 정환의 두 눈에는 더 이상 굶주린 수컷의 흔들림 따위는 없었다. 그곳에는 아내를 함부로 입에 올린 여자를 향한 차가운 경멸과 분노만이 서려 있었다.
“내 아내야. 함부로 그 입에 올리지 마. 앞으로 회사에서 업무적인 일 외에는 사적으로 단 한마디도 나한테 아는 척하지 마라. 연락도, 이런 만남도 오늘이 마지막이니까.”
서슬 퍼런 경고를 남긴 정환은 소파 위에 나뒹굴던 겉옷을 낚아채듯 집어 들고,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술집을 뛰쳐나갔다. “선배! 정환 선배!” 하고 악을 쓰는 지영의 히스테릭한 비명 소리가 등 뒤에서 메아리쳤지만, 정환의 발걸음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어둠을 갈랐다.
술집 문을 박차고 나온 정환의 앞에는 화려하지만 공허한 도시의 불빛이 펼쳐졌다. 셔츠 단추는 두어 개가 떨어져 나간 채였고, 차가운 겨울바람이 맨가슴으로 사정없이 들이쳤지만 추위 따윈 느껴지지 않았다. 정환은 서둘러 차를 주차해 둔 곳으로 향하며 대리운전 앱을 켰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는 와중에 ‘배차 중’이라는 야속한 글자만 깜빡였다. 하필이면 주말 새벽이라 기사가 잡히지 않았다. 호출 금액을 최고로 올려보아도 핸드폰은 잠잠했다. 초조함에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수화기 너머 유진의 핏빛 절규가 환청처럼 귓가를 맴도는데, 주차장 구석에서 마냥 대리기사를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제발, 제발 좀 잡아라……!”
정환은 결국 차를 그대로 둔 채 큰길가로 정신없이 뛰쳐나갔다. 네온사인이 어지럽게 번지는 아스팔트 위로 매서운 진눈깨비가 흩날리고 있었다. 지나가는 택시를 향해 손을 미친 듯이 흔들었다. 몇 대의 빈차가 그를 지나치고 나서야, 겨우 짜증 가득한 얼굴의 택시 한 대가 그의 앞에 멈춰 섰다.
정환은 뒷좌석 문을 부서져라 열고 타며 지갑에서 오만 원짜리 지폐 몇 장을 꺼내 운전석 앞으로 들이밀었다.
“기사님, 미안합니다. 제발 밟아주십시오. 신호 무시해도 되니까 최대한 빨리 가주세요. 제 아내가 죽어갑니다.”
술 냄새를 풍기며 눈물이 범벅된 채 돈을 내미는 사내의 서슬 퍼런 기백에, 택시 기사는 군말 없이 엑셀을 꽉 밟았다. 택시는 굉음을 내며 미끄러지듯 빗길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스쳐 지나가는 도시의 야경들이 기괴한 환영처럼 일렁였다.
(다음 회에 계속)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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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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