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22화. 무너진 요새, 핏줄에 스민 고백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22화. 무너진 요새, 핏줄에 스민 고백

택시가 비명 같은 마찰음을 내며 아파트 단지 입구에 급정거했다. 정환은 거스름돈도 받지 않은 채 문을 박차고 뛰쳐나갔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릴 시간조차 아까워 계단을 단숨에 뛰어 올라간 그의 손이 덜덜 떨리며 도어록 비밀번호를 눌렀다.
삐빅, 스르륵.
문이 열리자 정환을 맞이한 것은 불 하나 켜지지 않은 칠흑 같은 어둠과, 뼈 속까지 시려오는 서늘한 공기였다. 숨을 헐떡이며 거실로 들어선 정환의 시야에, 소파 구석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게 웅크리고 있는 유진의 실루엣이 들어왔다. 전화를 끊은 채 번화가에서 집까지 오는 그 짧고도 긴 시간 동안, 유진은 그 어둠 속에서 홀로 숨을 죽이고 있었던 것이다.
“유진아……!”
정환이 서둘러 거실 등을 켰다. 환한 불빛 아래 드러난 아내의 모습에 정환은 심장이 멈추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불과 몇 달 전까지만 해도 생기가 돌던 얼굴은 간데없고, 볼살이 움푹 패어 광대뼈가 흉하게 도드라져 있었다. 눈 밑은 시커먼 그늘로 얼룩졌으며, 가냘픈 어깨는 사시나무 떨듯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제 몸을 얼마나 쥐어뜯었는지 얇은 잠옷 틈새로 붉은 손톱자국이 선명했다. 한때 자신이 미치도록 탐했던 그 아름답던 아내는 온데간데없고,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것 같은 초라한 산송장 하나가 그곳에 있었다.
“여보…….”
정환이 왈칵 눈물을 쏟으며 유진을 품에 안으려 다가갔다. 유진은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렸지만, 이내 이를 악물고 도망치지 않은 채 정환의 품을 받아들였다. 정환의 거친 손이 유진의 어깨에 닿는 순간, 유진의 눈동자가 공포로 크게 흔들렸다. 머리로는 남편을 갈구하는데, 핏줄 깊은 곳에서부터 다시 차갑고 징그러운 비늘의 감각이 살아나 온몸의 신경을 마비시키고 위액을 끌어올렸다. 유진은 구역질을 참으려 입술을 피가 나도록 깨물며 정환의 셔츠 자락을 움켜쥐었다.
“미안해, 정환 씨…… 내가 미안해……. 내가 당신이 싫어서 그런 게 아니야. 나 진짜 미칠 것 같아…….”
유진의 입술 사이로 그동안 혼자서만 삭여왔던 피눈물 나는 고백이 터져 나왔다.
“눈만 감으면…… 꿈속에서 뱀들이 수천 마리가 엉켜서 내 발목을 감아올려. 당신 얼굴을 한 사람들이 그 뱀들의 목을 치고 생피를 마시는데, 우리 친정 조상님들이 하얀 소복을 입고 나타나서 저 더러운 피 묻히지 말라고 나를 당신한테서 떼어내……. 꿈에서 깨어나면, 당신 몸에서 그 역겨운 뱀 비린내가 진동을 해. 당신 손이 닿으면 뜨거운 게 아니라, 냉동실에 얼려둔 거대한 구렁이가 내 살갗을 문지르는 것 같아서…… 뇌가 터질 것처럼 무섭고 소름이 끼쳐서 그랬어…….”
정환은 유진의 가슴 찢어지는 고백을 들으며 머리를 대형 망치로 맞은 듯 멍해졌다. 아내가 정신병에 걸린 줄로만 알았고, 자신을 거부하는 줄만 알고 악담을 퍼부었던 자신의 무지가 뼈저리게 후회스러웠다. 정환은 유진이 겪은 공포의 무게를 짐작조차 할 수 없어, 그저 아내를 더 꽉 끌어안으며 오열했다.
“내가 바보였다, 유진아. 그것도 모르고 나 혼자 상처받았다고 너한테 몹쓸 말을 쏟아내고…… 내가 정말 죽을죄를 지었어.”
겨우 진정된 유진이 떨리는 손으로 소파 위에 놓아둔 태블릿 PC를 켰다. 화면에는 밤새 유진이 절박하게 뒤진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었다. 현대 의학으로도 풀지 못한 이 기괴한 증상을 고치기 위해, 유진은 인터넷 커뮤니티와 무속 관련 카페를 샅샅이 뒤지며 ‘귀신’, ‘조상 부정’, ‘뱀 꿈’ 같은 단어들을 검색했던 것이다.
“정환 씨, 나 이거 병원 병이 아닌 것 같아. 인터넷에서 밤새 미친 사람처럼 검색하다가…… 어떤 글을 봤어. 집안 조상들끼리 합이 안 맞아서 대물림되는 부정을 벼락신장 기운으로 단칼에 끊어낸 법사가 있대. 하동 산자락에 있는 ‘천신장군암’이라는 점집인데…… 여기라도 한 번 가볼까 해.”
유진의 휑한 눈에 마지막 줄기 같은 절박함이 서려 있었다. 정환은 침을 꿀컥 삼키며 유진의 마른 손을 꼭 쥐었다.
“그래, 가자. 하동이든 어디든 내가 연차 쓰고 같이 가줄게. 날 밝는 대로 당장 출발하자.”
정환의 단호한 동의에 유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고개를 가로저으며 정환의 셔츠 깃을 다잡았다.
“아니야, 정환 씨. 요새 회사 일도 바쁜데 나 때문에 갑자기 연차 쓰면 눈치 보이잖아. 당신 요새 나 때문에 잠도 못 자고 출근해서 피곤한 거 다 알아. 나 혼자서도 갈 수 있어. 그러니까 당신은 평소처럼 출근해. 내가 내일 새벽차 타고 먼저 다녀올게. 가서 무슨 말을 하시는지 들어보고 올 테니까…… 당신은 회사 일 봐.”
초라해진 몰골 속에서도 자신을 배려하는 아내의 깊은 마음에 정환은 목이 메어왔다. 평소라면 ‘미신’이라며 반대했겠지만, 지금 마주한 현실은 상식의 영역을 벗어나 있었다. 이유 없는 거부, 매일 밤 이어지는 가위눌림, 그리고 아내의 얼굴에 내려앉은 산송장 같은 그늘까지. 정환은 유진의 손을 꽉 쥐며 고개를 끄덕였다.
“미안하다, 같이 못 가줘서……. 조심히 다녀와야 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전화하고.”
유진은 참았던 안도의 눈물을 흘리며 남편의 가슴에 얼굴을 묻었다. 부부를 파멸로 몰고 가던 지독한 조상의 살생 업보와 불사줄의 충돌. 그 거대한 저주의 실타래를 풀기 위해, 유진은 마침내 홀로 하동 천신장군암으로 향하는 위태로운 첫발을 내딛기로 결심하고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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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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