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26화. 폭풍전야의 안방, 칼날을 품은 침실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26화. 폭풍전야의 안방, 칼날을 품은 침실

하동의 신당에서 북과 괭과리가 울려 퍼지기 두 시간 전. 부산의 아파트 안방은 숨이 막힐 듯한 침묵과 긴장감만이 맴돌고 있었다.
시계는 밤 9시를 지나고 있었다. 하동에서 돌아온 유진은 남편이 퇴근하기 전, 김 법사가 일러준 첫 번째 비방을 실행에 옮겼다.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목함에서 백마목(마른 엄나무 줄기)을 꺼내어 절구에 넣고 곱게 짓이겼다. 단단한 가시 줄기가 으깨어지며 특유의 쌉싸름하고 매운 나무 진액 냄새가 온 집안에 퍼져나갔다. 유진은 그 진액을 손끝에 묻혀 안방 침대 네 모서리와 거실 구석구석, 그리고 현관문 문턱에 꼼꼼히 발랐다.
‘제발…… 우리 남편 몸에 감긴 더러운 부정줄이 이 선을 넘지 못하게 해주세요.’
마치 보이지 않는 성벽을 쌓듯 결계를 치는 유진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뚝뚝 떨어졌다.
밤 10시가 조금 넘었을 무렵, 도어록 소리와 함께 정환이 현관문을 열고 들어섰다. 지영과의 일을 칼같이 잘라내고 오직 아내를 살리겠다는 일념으로 달려온 정환의 얼굴은 초조함으로 가득했다. 문을 열자마자 느껴지는 기묘한 나무 향과 아내의 비장한 눈빛에 정환은 침을 삼켰다.
“유진아, 하동은…… 잘 다녀왔어? 무당이 뭐라고 해?”
유진은 정환의 옷을 받아 수건으로 땀을 닦아주며, 한낮에 천신장군암에서 들었던 서슬 퍼런 공수와 조상들의 내력을 하나도 빠짐없이 털어놓았다. 친정의 맑은 불사줄과 시댁의 지독한 동물 부정이 안방에서 들이치고 있다는 이야기, 그리고 그 때문에 서로를 원하면서도 몸이 쳐낼 수밖에 없었다는 진실까지.
정환은 아내의 이야기를 들으며 온몸이 얼어붙는 듯했다. 과거 자신의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보신을 하겠다며 시골집 뒷산에서 구렁이를 때려잡고 솥에 고아 먹었다고 자랑스레 떠들던 기억이 번개처럼 뇌리를 스쳤다. 그 살생의 피눈물이 아내를 미치게 만들고, 자신을 색귀의 소굴로 몰아넣었다는 사실에 정환은 깊은 탄식을 내뱉었다.
“내가…… 우리 집안이 너한테 몹쓸 짓을 했구나. 미안하다, 유진아. 정말 미안해…….”
“아니야, 정환 씨. 법사님이 오늘 밤이 마지막 기회라고 하셨어. 하늘의 문이 열리는 자시(子時)에 우리가 목숨을 걸고 이 부정을 씻어내야 해. 내 말 잘 들어줘.”
유진은 정환을 안방 침대에 앉히고 가방에서 황토 무명천을 꺼냈다. 그리고 정환의 셔츠를 거칠게 벗겨냈다. 정환의 건장한 맨등이 드러나자, 유진은 황토 천을 쥐고 그의 등줄기와 명치 부근을 사정없이 쓸어내리기 시작했다.
스윽! 슥! 슥!
거친 천이 살갗을 파고들자 정환은 자기도 모르게 신음하며 몸을 비틀었다. 단순한 마찰이 아니었다.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극심한 화끈거림과 함께, 뼛속 깊은 곳에서부터 끈적하고 비릿한 무언가가 피부를 뚫고 솟구치는 듯한 기괴한 통증이 밀려왔다.
“아윽……! 유진아, 너무 뜨거워…… 살이 찢어지는 것 같아!”
“참아야 해, 정환 씨! 절대 멈추면 안 된다고 하셨어. 당신 몸에 밴 비린내를 다 끄집어내야 해!”
유진은 눈물을 흘리며 더욱 강하게 천을 문질렀다. 정환의 등과 가슴이 벌겋게 달아오르다 못해 핏발이 설 때쯤, 마침내 시계가 밤 11시, 자시(子時)의 정각을 알렸다.
동시에 집안의 전등이 원인 모르게 파르르 떨리며 꺼져버렸다. 암막 커튼이 쳐진 방 안은 순식간에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겼고, 백마목의 나무 향을 뚫고 역겨운 하수구 냄새와 축축한 뱀의 피 비린내가 안방 바닥에서부터 훅 하고 끼쳐왔다. 하동에서 조상들이 청배 된 바로 그 순간, 이곳 부산의 안방에도 지독한 원한의 폭풍이 들이친 것이다.
유진은 떨리는 손으로 이불 밑에 시퍼런 식도를 숨겨 밀어 넣은 뒤, 어둠 속에서 정환의 목을 끌어안았다. 남편의 살결이 닿자마자, 유진의 세포 하나하나가 다시 거대한 구렁이의 비늘을 만진 듯 구역질과 공포로 비명을 질렀다. 온몸이 마비될 것 같은 공포 속에서도 유진은 이 악물고 정환의 입술을 찾아 상체를 밀착시켰다.
“정환 씨…… 나 안아줘. 무슨 일이 있어도 날 놓지 마…….”
음과 양이 가장 격렬하게 충돌하는 잔인하고도 뜨거운 자시의 밤. 부부는 서로의 살을 파고들며 목숨을 건 마지막 결전의 침대로 미끄러져 들어갔다.
(다음 회에 계속)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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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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