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5화. 밀려난 양기(陽氣), 얼어붙은 안방
제5화. 밀려난 양기(陽氣), 얼어붙은 안방

여인의 절절한 오열이 잦아들자, 좁은 신당 안에는 다시 양철지붕을 두드리는 빗소리만이 무겁게 내려앉았다. 김 법사는 말없이 자리에서 일어나 다 식어버린 여인의 찻잔을 거두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새로운 작설차를 채워주었다. 향로에서 피어오른 잿빛 연기가 여인의 젖은 어깨 위를 뱀처럼 휘감았다가 흩어지기를 반복했다. 김 법사의 깊은 눈동자에는 안타까움과 꿰뚫어 보는 자의 서늘함이 동시에 교차하고 있었다.
“보살님이 겪은 그 끔찍한 감각들은 결코 미쳐서 만들어낸 망상이 아닙니다.”
김 법사는 신단 위에 놓인 엽전 세 닢을 만지작거리며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상들이 뿜어내는 맹렬한 거부감은 보살님의 안방을 거대한 얼음창고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보살님의 몸을 지배한 그 서늘하고 탁한 음기(陰氣)는 남편의 기운을 사방에서 옥죄고 밀어냈을 겁니다. 남편분 역시 영문을 모른 채, 아내의 곁에 눕기만 하면 등골이 오싹해지고 숨이 막히는 압박감을 느꼈겠지요. 서로의 체온이 칼날처럼 느껴지는 방에서 사내가 맨정신으로 버틸 수 있는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여인은 차마 찻잔을 들지 못하고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자신이 남편을 밀어냈듯, 남편 역시 보이지 않는 벽에 부딪혀 혼자만의 고립감 속에서 허우적거렸을 것이라는 사실이 뼈아프게 다가왔다.
“그래서 남편이 밖으로 겉돌기 시작한 것입니다.”
김 법사의 묵직한 한마디에 여인의 어깨가 크게 움찔했다.
“본디 남자의 양기(陽氣)란 불과 같아서, 안에서 타오르지 못하고 찬 기운에 짓눌리면 본능적으로 온기를 찾아 밖으로 헤매게 되어 있습니다. 보살님이 이곳을 찾아오며 의심했던 남편의 외도… 그 불길한 예감은 안타깝게도 허상이 아닙니다. 안방에서 거부당한 사내의 헛헛한 기운이 엉뚱한 곳에서 곁불을 쬐려 들고 있으니까요. 남편분의 옷깃에 낯선 여자의 분내와 탁한 액운이 함께 엉겨 붙어 들어오는 것이 제 눈에는 훤히 보입니다.”
자신의 의심이 사실로 확인되는 순간, 여인의 두 눈에 깃든 슬픔은 이내 참담한 절망으로 바뀌었다. 자신이 살기 위해 밀어낸 남편이 결국 다른 여자의 품을 찾고 있었다는 사실은, 조상들의 훼방이라는 변명으로도 쉽게 위로받을 수 없는 생살을 찢는 고통이었다.
“하지만 보살님, 지금 남편을 원망하며 울고 있을 때가 아닙니다.”
김 법사의 목소리에 다시 한번 단호한 기백이 실렸다. 그는 벼루 옆에 놓인 한지를 자신 쪽으로 끌어당기며 붓을 고쳐 쥐었다.
“이대로 두면 두 사람의 인연이 끊어지는 것은 물론이고, 남편분은 바깥에서 묻혀온 더러운 살(殺)을 맞고 큰 사고를 당할 형국입니다. 도대체 양가 조상들 사이에 무슨 끔찍한 원한이 맺혀 있기에 이토록 후손들의 피 말리는 싸움을 조장하고 있는지, 그 썩은 뿌리부터 파헤쳐야 합니다. 자, 보살님의 친정 할아버지와 시할아버지, 두 분의 존함과 태어나신 고향을 아는 대로 전부 말씀해 보십시오.”
(다음 회에 계속)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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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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