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천지인 영감/연재 소설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42화. 차가운 신방, 동토의 근원을 마주하다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42화. 차가운 신방, 동토의 근원을 마주하다

“내 영험한 비방을 알려줄 테니, 오늘 밤은 내가 직접 새댁 집으로 내려가 보겠소.”

김 법사의 파격적인 선언에 새댁은 눈물을 거두고 멍하니 법사를 바라보았다. 보통의 무당들이라면 이 정도 지독하게 터진 동토살에는 수백만 원짜리 큰 굿을 권하며 겁박하기 일쑤련만, 김 법사는 도리어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주머니 사정이 뻔한 신혼부부의 처지를 안타깝게 여긴 것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영문도 모른 채 죽어가는 산 사람을 살려야 한다는 무당으로서의 준엄한 책임감 때문이었다.

김 법사는 신당 안쪽에서 삼십 년 묵은 신장칼과 부정 가라앉히는 데 쓰이는 붉은 팥 한 되, 그리고 잡귀를 쫓는 향이 강한 부정초(不淨醋)를 가방에 정갈하게 챙겨 넣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벼락신장님의 신력을 빌려 붉은 경면주사로 동토살을 소멸시키는 영험한 동토부적 한 장을 단숨에 그려내었다.

“자, 지체할 시간이 없으니 진주로 바로 내려갑시다.”

하동 산자락을 벗어나 진주 시내의 한 오래된 아파트 단지에 도착했을 때, 시간은 이미 해가 뉘엿뉘엿 저무는 황혼녘이었다. 새댁이 도어락을 열고 집안으로 발을 들이는 순간, 김 법사의 미간이 얼음장처럼 차갑게 굳어졌다.

스으으으-

문이 열리자마자 느껴지는 기운은 산 사람의 온기가 아니었다. 마치 한겨울 냉동고 문을 연 것처럼 눅눅하고 서늘한 한기가 거실 바닥을 타고 발목을 감싸 안았다. 안방 문목에서는 거뭇거뭇한 음기가 안개처럼 피어오르고 있었다. 동토살이 온 집안의 성주신을 누르고 터주를 장악한 형국이었다.

“법사님… 신랑이 저기 안방에…”

새댁이 가리킨 안방 침대에는 서른을 겨우 넘겼을 젊은 남편이 이불을 덮은 채 누워 있었다. 그러나 사내의 상태는 처참했다. 40도가 넘는 고열로 인해 온몸은 불덩이처럼 시뻘겋게 달아올라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고, 무슨 환각을 보는지 초점 없는 눈으로 안방 정면의 허공을 째려보며 사시나무 떨듯 바르르 떨고 있었다. 멀쩡하던 팔다리는 기이한 각도로 굳어 뻣뻣하게 마비되어 있었다.

김 법사는 가방에서 붉은 팥을 한 움큼 쥐어 들었다. 그러고는 안방 사방벽과 천장을 향해 사정없이 소리치며 팥을 뿌려대기 시작했다.

타다닥! 타닥!

“벼락신장 대령하셨다! 산 사람 집안에 기어들어 와 성주를 누르고 횡액을 부리는 몹쓸 액살은 이 팥 세례를 받고 당장 그 주둥이를 닥칠지어다!”

김 법사의 호통과 함께 부정초를 태우자, 매캐하고 시큼한 향이 안방을 가득 채웠다. 팥알이 벽에 부딪혀 튕겨 나갈 때마다 방 안의 공기가 찌르르하게 진동했다. 집 구석구석에 들끓던 거친 액살과 부정을 거칠게 쳐내며 기세를 제압하는 과정이었다.

방 안을 채운 탁한 한기가 조금씩 걷히자, 김 법사는 마침내 들고 있던 시퍼런 신장칼의 끝을 남편이 째려보고 있던 허공의 한 지점에 정확히 겨누었다.

“자, 이제 부정을 쳤으니 몸뚱이 숨겨둔 본체는 모습을 드러내라! 살아생전 무슨 한이 그리 깊어 산 목숨을 탐내는가!”

김 법사가 신장칼을 거칠게 내리치며 호령하자, 거짓말처럼 침대 맡 구석에서 검푸른 연기 같은 형상이 스멀스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드디어 동토살의 주범이자, 자개장에 엉겨 붙어 있던 노모의 원혼이 모습을 드러내는 순간이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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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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