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평 천지인 영감/연재 소설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제45화. 오만과 착각, 신당을 시험하는 눈빛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45화. 오만과 착각, 신당을 시험하는 눈빛

김 법사의 묵직한 가르침이 법당의 차가운 공기를 가르고 내려앉았으나, 박선영 기주는 기가 꺾이기는커녕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만지작거리며 비죽 웃었다. 방구석에서 무속 유튜브 영상만 수천 편을 탐독하며 생긴 기괴한 똘끼는 그리 쉽게 다스려질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글쎄요, 법사님 말씀도 일리는 있지만 제 생각은 좀 달라요. 요새 잘나가는 신선생님들은 대번에 영(靈)으로 치고 들어와서 신가물인지, 아니면 조상 줄이 내려왔는지 눈빛만 봐도 신의 합의를 받아내던데……. 꼭 그렇게 복잡하게 사주를 두들겨야만 아는 건지 솔직히 의아하네요.”

‘신가물’, ‘신의 합의’ 같은 무속 용어를 내뱉으며 우쭐대는 선영을 보며, 김 법사는 가만히 눈을 감았다.

이곳 천신장군암의 법당은 매일 새벽마다 벼락신장님 전에 올리는 맑은 옥수와 향연으로 정화된 청정 도량이다. 그렇기에 선영이 제 신령이라 믿고 떠받들던 지저분한 잡귀(허주) 놈은 감히 이 문턱을 넘지 못하고, 지금 대문 밖 마당 한구석에서 신당의 서슬 퍼런 기운에 눌려 이빨을 덜덜 떨며 웅크리고 있을 터였다.

하지만 여인의 육신에는 그 잡귀 놈과 수년간 뒹굴며 받아먹은 탁한 음기의 흔적이 시커멓게 찌들어 있었다. 영혼이 병들어 썩어가는 줄도 모르고, 유튜브 속 무당들의 흉내를 내며 귀신 장난에 장단 맞추는 꼴이 가련하다 못해 엄중한 경고가 필요한 지경이었다.

김 법사는 점사노트 위에 올려둔 펜을 조용히 내려놓았다. 그의 인자하던 미소가 서서히 지워지고, 눈빛에 푸르스름한 신기(神氣)가 서리기 시작했다.

“기주님. 본인이 대단한 신을 모셨다 착각하며 전국의 점집을 시험하러 다니는 모양인데, 착각이 너무 깊으면 제 명을 깎아 먹는 법입니다.”

“네? 착각이라니요? 제가 꿈도 얼마나 잘 맞추고, 영이 맑아서 다른 무당들도 저보고 신가물이라 엎드려 빌라 했는데…”

선영이 발끈하며 목소리를 높이려 하자, 김 법사가 손을 가볍게 들어 그녀의 말을 막아섰다.

“그 영이라는 게 진짜 신령님의 은혜가 아니라, 문밖에서 들어오지도 못하고 개처럼 웅크려 덜덜 떨고 있는 지저분한 잡귀의 흔적이라는 걸 왜 모릅니까? 기주님의 어깨와 등 뒤를 보셔요. 시커먼 고랑물 같은 탁한 음기가 뼈 속까지 스며들어 악취를 풍기고 있습니다. 그 잡귀 놈이 기주님의 귀에 유튜브에서 들은 지식들을 속삭여주며 ‘네가 대단한 무당보다 낫다’ 하고 눈을 가려놓으니, 그 오만함 때문에 남편에게 이혼당하고 집안 풍파를 겪으면서도 아직 정신을 못 차린 것 아닙니까?”

‘이혼’이라는 단어가 김 법사의 입에서 벼락처럼 터져 나오자, 선영의 안색이 순식간에 흙빛으로 변했다. 본인의 과거를 단 한 번도 입 밖에 낸 적이 없었기에, 30년 내공의 법사가 사주도 넣기 전에 제 몸에 남은 흔적만으로 삶의 풍파를 정확히 읽어내자 본능적인 공포가 밀려온 것이다.

“당신이 방구석에서 모니터 화면으로 배운 무속은 껍데기에 불과합니다. 진짜 신의 세계는 그렇게 가볍게 장난질 치는 곳이 아니란 말입니다. 문밖의 잡귀는 오늘 내가 이 도량에서 깨끗이 쳐내어 돌려보낼 터이니, 기주님은 부디 그 오만과 착각을 내려놓고 스스로의 삶을 돌보셔요. 더 이상 신명(神明)의 이름을 더럽히며 죄업을 짓지 마시란 말입니다.”

김 법사의 나지막하면서도 바위를 내리누르는 듯한 묵직한 훈계에, 박선영 기주는 더 이상 단 한 마디의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떨리는 손으로 명품 가방을 움켜쥐었다. 진짜 무서운 신의 위엄과 마주한 오만한 인간의 밑천이 완전히 드러나는 순간이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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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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