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뉴스] 유랑의 비극에서 전쟁의 정치까지…중동 분쟁이 남긴 인류의 질문
정범규 기자
유대인의 디아스포라와 홀로코스트, 그리고 이스라엘 건국으로 이어진 역사적 비극
팔레스타인 추방과 정착촌 확장, 네타냐후 강경 노선이 낳은 현재의 전쟁 구조
미국과 트럼프의 친이스라엘 정책, 그리고 대이란 군사 긴장이 중동 갈등을 확대

중동에서 이어지고 있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분쟁은 단순한 영토 다툼이 아니라 2천 년에 걸친 역사와 종교, 그리고 현대 정치가 복잡하게 얽힌 인류사적 비극이다. 전쟁의 원인을 단순히 한 사건이나 한 인물의 책임으로만 설명하기 어렵지만, 분명한 사실은 이 갈등이 오랜 역사적 상처 위에 세워진 정치적 선택들의 결과라는 점이다.
유대인의 비극적 유랑사는 서기 70년 로마 제국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유대인들을 추방하면서 시작됐다.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 유대인들은 중동과 유럽, 북아프리카 등지로 흩어지며 이른바 디아스포라의 삶을 살게 된다. 국가를 잃은 채 살아온 세월 동안 유대인들은 각지에서 차별과 박해를 겪었고, 중세 유럽에서는 종교적 이유로 학살과 추방이 반복됐다. 이러한 역사는 유대인 공동체 내부에 국가 없는 민족은 언제든 희생양이 될 수 있다는 강한 생존 의식을 남겼다.
그 비극이 극단적으로 드러난 사건이 바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 자행한 홀로코스트였다. 약 600만 명의 유대인이 학살된 이 참극은 국제사회에 큰 충격을 남겼고, 전쟁 이후 유대인 국가 건설에 대한 국제적 동정과 명분을 형성하는 계기가 됐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또 다른 역사적 모순이 함께 만들어졌다. 피해자의 역사가 또 다른 피해를 낳는 구조가 시작된 것이다.
1917년 영국은 벨푸어 선언을 통해 팔레스타인 지역에 유대인 국가 건설을 지지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동시에 영국은 아랍인들에게도 독립을 약속하며 상충되는 약속을 남겼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영국의 위임통치를 거치며 팔레스타인 지역에는 유대인 이주가 급격히 늘어났고, 토지와 정치적 권리를 둘러싼 갈등이 점차 폭발하기 시작했다.
1947년 유엔은 팔레스타인 땅을 유대인 국가와 아랍 국가로 나누는 분할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국제 정치 상황 속에서 미국과 소련이 동시에 이 안을 지지하면서 분할안은 통과됐지만, 그 땅에 살던 아랍계 팔레스타인 주민들의 의사는 제대로 반영되지 않았다. 결국 1948년 이스라엘이 건국을 선언하면서 전쟁이 시작됐다.
이스라엘에게 건국은 유랑의 끝을 의미했지만, 팔레스타인에게는 나크바, 즉 대재앙으로 기억된다. 전쟁 과정에서 약 70만 명의 팔레스타인인이 고향을 떠나 난민이 되었고 수많은 마을이 지도에서 사라졌다. 팔레스타인 사회에서 이 사건은 단순한 패전이 아니라 민족적 상처로 남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후 중동에서는 여러 차례 전쟁이 이어졌다. 1967년 6일 전쟁에서 이스라엘은 단 6일 만에 이집트와 요르단, 시리아 연합군을 격파하며 가자지구와 요르단강 서안지구, 골란고원 등을 점령했다. 1973년 욤키푸르 전쟁에서도 격렬한 충돌이 이어졌지만, 미국의 강력한 군사 지원 속에 이스라엘은 중동에서 압도적인 군사력을 가진 국가로 자리 잡았다.
이러한 군사적 우위 속에서도 갈등은 멈추지 않았다. 특히 가자지구와 서안지구에서 이어지는 점령과 정착촌 확장은 팔레스타인 사회의 분노를 키웠다. 가자지구는 오랜 봉쇄 속에서 경제와 인프라가 붕괴되었고 국제사회에서는 이를 거대한 감옥에 비유하기도 한다. 이스라엘은 안보를 이유로 봉쇄와 군사 작전을 정당화하지만 팔레스타인 사회는 이를 집단적 처벌로 받아들이고 있다.
이러한 갈등 구조 속에서 등장한 인물이 이스라엘의 장기 집권 총리 베냐민 네타냐후다. 그는 이스라엘 정치에서 강경 우익 노선을 대표하는 인물로 안보만이 생존의 길이라는 메시지로 지지층을 결집시켜 왔다. 네타냐후 정부는 팔레스타인과의 협상보다는 군사적 억제와 정착촌 확대 정책을 선택해 왔으며 이러한 정책은 국제사회에서 강한 비판을 받아왔다.
최근 가자지구 전쟁 역시 이러한 강경 노선의 연장선으로 해석된다. 하마스의 공격 이후 이스라엘은 대규모 보복 작전을 펼쳤고 이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 희생이 발생했다는 국제기구와 인권단체의 보고가 이어지고 있다. 특히 여성과 어린이 사망자가 크게 늘면서 국제사회에서는 전쟁의 정당성과 비례성에 대한 논쟁이 거세지고 있다.
미국의 역할 역시 중동 분쟁에서 중요한 변수로 작용해 왔다. 미국은 오랜 기간 이스라엘의 최대 동맹국으로 군사적·외교적 지원을 제공해 왔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기에는 친이스라엘 정책이 더욱 노골적으로 강화됐다. 트럼프 정부는 국제사회가 민감하게 다루던 예루살렘 문제에서 이스라엘의 손을 들어주며 미국 대사관을 예루살렘으로 이전했고 이는 팔레스타인 사회와 아랍권의 강한 반발을 불러왔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는 2018년 국제사회가 어렵게 체결했던 이란 핵 합의에서 일방적으로 탈퇴하며 중동의 군사적 긴장을 다시 끌어올렸다. 이 결정 이후 이란과 서방 사이의 갈등은 급격히 악화됐고 이스라엘과 이란 사이의 충돌 역시 중동 전역에서 대리전 형태로 확대됐다. 하마스와 헤즈볼라 같은 무장 조직을 둘러싼 충돌 역시 더욱 격렬해졌으며 중동은 다시 전쟁의 불안정한 균형 속으로 들어가게 됐다.
최근 미국과 이스라엘이 이란을 상대로 군사 작전을 이어가면서 중동의 긴장은 새로운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특히 이번 군사 충돌 과정에서는 민간 시설 피해 논란까지 이어지며 국제사회에서 전쟁 방식에 대한 비판이 커지고 있다. 일부 공습 과정에서 학교와 같은 민간 시설이 피해를 입었다는 주장까지 제기되면서 국제 인도법 준수 문제 역시 다시 도마 위에 올랐다.
이러한 군사 충돌이 확대될 경우 또 다른 변수로 떠오르는 존재가 바로 쿠르드족이다. 쿠르드족은 국가를 갖지 못한 세계 최대 규모의 민족 집단 가운데 하나로 약 3천만 명 이상이 터키와 이라크, 시리아, 이란에 걸쳐 분포하고 있다. 오랜 기간 독립 국가를 꿈꾸며 무장 세력을 유지해 온 만큼 중동에서 전쟁이 확대될 경우 이들이 어느 편에 서느냐에 따라 지역의 전략 균형이 크게 흔들릴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이 전쟁을 바라보는 시선은 크게 두 가지로 갈린다. 이스라엘 우익 정치세력은 자신들의 행동을 생존을 위한 자위권 행사라고 주장한다. 유대인 역사 속에서 반복됐던 학살과 박해를 떠올리며 우리가 약해지는 순간 다시 희생자가 될 것이라는 공포 정치가 그 논리의 핵심이다.
반면 국제 인권단체와 많은 진보적 시각에서는 또 다른 질문을 던진다. 과거의 피해가 현재의 폭력을 정당화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다. 오랜 유랑과 홀로코스트의 희생자였던 유대 민족이 이제는 팔레스타인 민간인에게 또 다른 비극을 만들고 있다는 비판이 이어지고 있다.
더욱이 국제사회에서는 미국과 서구권의 이중 기준에 대한 비판도 커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에는 강력한 제재와 인권 문제를 제기하면서도 중동에서는 같은 기준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지적이다. 이러한 모순은 국제 질서에 대한 신뢰를 약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중동의 평화는 단순히 군사적 승리로 만들어질 수 없다. 수천 년의 역사와 상처가 쌓인 이 땅에서 진정한 해결은 상호 인정과 정치적 타협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는 여전히 강경한 지도자와 대립적 전략이 선택되고 있다.
결국 중동 분쟁은 한 민족의 생존과 또 다른 민족의 생존이 충돌하는 비극적인 역사다. 유랑의 끝에서 탄생한 국가가 또 다른 유랑을 만들고 있다면 인류는 그 역사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 전쟁이 반복될수록 이 질문은 더욱 무거운 의미를 갖게 된다. 지금 중동에서 벌어지는 갈등은 단지 지역 분쟁이 아니라 인류가 아직도 해결하지 못한 역사와 정치의 모순을 그대로 드러내는 거울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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