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설난영 발언엔 침묵, 유시민엔 맹공… 언론의 선택적 분노가 낳은 신뢰 위기
최근 설난영 여사의 발언이 사회적 논란을 일으켰다. 그는 공식 석상에서 “노조는 과격하고 못생긴 사람들이 하는 것이고, 나는 문학적이고 예쁘기 때문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요지의 망언을 서슴지 않았다. 명백한 외모 비하와 노동 혐오가 섞인 이 발언은 사회 통합을 해치는 반지성적 사고의 적나라한 표출이지만, 주류 언론의 반응은 놀라울 만큼 조용하다. 일부 매체를 제외하면 대다수 언론은 이를 제대로 보도조차 하지 않았고, 비판 사설은 찾아보기 힘들다.
반면 유시민 작가의 발언은 상황이 다르다. 그가 한 팟캐스트에서 ‘정치적 성향을 드러내며 평가한 일부 인사들’에 대해 말한 내용은 며칠째 언론의 집중 포화를 받고 있다. 표현의 적절성과 공적 위치에 대한 비판은 가능하나, 그 수위와 양에서 설난영 발언과의 차이는 지나치게 극단적이다. 유 작가의 발언은 정제되지 않았더라도 풍자와 비판의 영역에 가깝다면, 설 여사의 발언은 명백히 차별적이고 혐오를 조장하는 망언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왜 이런 ‘이중 기준’이 발생하는가. 지금 한국 언론은 보도할 가치가 있는 사안이 아니라, 자신들의 정치적 구도에 부합하느냐에 따라 논조와 보도 양을 조절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진보 진영 인사의 발언에는 현미경을 들이대며 해석하고, 반면 보수 진영 인사의 노골적 혐오 발언에는 애써 고개를 돌리는 모순은 언론의 신뢰를 갉아먹고 있다.
이러한 편향적 태도는 결국 ‘언론의 자살행위’로 이어진다. 언론은 사회의 거울이자 공적 감시자 역할을 해야 한다. 그러나 거울이 한쪽 얼굴만 비추고, 감시는 특정 진영에만 쏠릴 때, 그 언론은 더 이상 언론이 아닌 ‘정치적 행위자’가 된다.
설난영 여사의 발언은 단순한 실언이 아니다. 그것은 노동자를 향한 혐오이며, 외모에 따른 인간 존엄성의 차별이라는 반사회적 인식을 담고 있다. 만약 이러한 발언이 진보 진영 인사에게서 나왔다면, 과연 언론이 지금처럼 침묵할 수 있었을까.
언론은 이제라도 스스로의 편향을 직시해야 한다. 진영이 아닌 진실에 민감해야 하며, 비판은 공정해야 한다. 유시민이든, 설난영이든 발언의 무게가 있다면 공정한 기준으로 다뤄져야 한다. 그것이 언론이 사회적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