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제46화. 묵직한 일침, 그리고 문밖의 속삭임
[연재] 신과 인간 사이 천신장군암 점사록
제46화. 묵직한 일침, 그리고 문밖의 속삭임

김 법사의 매서운 훈계가 안방을 무겁게 짓눌렀지만, 박선영 기주의 얼굴에는 깨우침 대신 묘한 독기와 반발심이 서려 있었다. 30년 내공의 칼날 같은 공수에 뼈가 찔려 안색이 흙빛이 되었으면서도, 수년간 지독하게 얽힌 허주(잡귀)의 오만함이 그녀의 자존심을 끈질기게 붙들고 있었다.
선영은 덜덜 떨리는 손으로 명품 가방을 열더니, 지갑에서 지폐를 꺼내 점상 위에 탁 소리가 나게 올려놓았다.
“용하긴 하시네요. 복채는 여기 두고 갈 테니까 더 들을 것도 없겠어요.”
선영은 휭하니 자리에서 일어나 그대로 법당을 빠져나가려 했다. 그 오만한 뒷모습을 보며 김 법사는 깊은 탄식을 내쉬더니, 점상 위에 놓인 지폐 두 장을 집어 들고 그녀의 손목을 부드러우면서도 엄하게 붙잡았다.
“기주님, 이 돈 다시 가져가십시오.”
선영이 의아한 눈으로 쏘아붙이자, 김 법사는 돈을 그녀의 손에 쥐여주며 차갑게 일침을 가했다.
“나 김 법사는 신령님 전을 모시는 제자이지, 잡귀 놈들이 장난쳐서 벌어온 구더기 같은 돈은 단 한 푼도 받지 않습니다. 내 신당에는 잡귀 돈 못 들입니다.”
“뭐라고요?!”
“마지막으로 내 기주님 인생이 가련해서 충고 하나만 하리다. 지금은 본인이 남들보다 대단한 영을 가져서 신의 세상을 훤히 꿰뚫어 보고 다니는 줄 착각하겠지만, 계속 이런 식으로 온갖 무속 유튜브 지식을 방패 삼아 허주를 대접하고 달고 다니면, 머지않은 날에 반드시 감당할 수 없는 큰일을 당할 겁니다. 그 잡귀 놈이 기주님의 명줄과 복(福)을 야금야금 다 파먹고 나면, 그때는 기주님의 목숨 줄까지 내놓아야 할 터인데 어찌 그리 미련하단 말입니까.”
김 법사의 엄중한 경고에도 선영은 “참나, 별꼴이야 정말!” 하고 신경질적으로 소리를 지르며 법당 문을 거칠게 열고 마당으로 뛰쳐나갔다.
김 법사는 손에 쥔 대신부채를 거두고 천천히 그녀의 뒤를 따라 마당으로 걸어 나왔다. 어스름한 어둠이 깔린 천신장군암의 마당, 선영이 신당 문 앞을 지나 걸립(乞粒, 신당 문간을 지키는 하위 신이나 영혼들이 머무는 곳) 옆을 지나갈 때였다.
김 법사의 매서운 화경에 걸립 기둥 뒤에 바짝 웅크리고 있던 존재가 선명하게 들어왔다.
부스스한 머리를 늘어뜨린 채 눈동자가 휑하게 뚫린 늙은 여자 귀신이었다. 신당의 맑은 위엄이 무서워 감히 안에는 발도 못 붙이고, 지가 주인인 양 떠받들어 주는 선영이 나오기만을 기다리며 문밖에서 덜덜 떨고 있던 허주 놈이었다. 여자가 지나가자 잡귀는 이빨을 득득 갈며 다시 그녀의 등 뒤로 기어오르려 스멀스멀 손을 뻗었다.
김 법사는 자리에 우뚝 서서, 선영이 눈치채지 못하도록 아주 작고 조용한 목소리로 읊조렸다. 하지만 그 목소리에는 거스를 수 없는 벼락신장의 신력(神力)이 서려 있었다.
“멈추어라. 내 눈이 시퍼렇게 살아있거늘 감히 어디에 다시 올라타려 하느냐.”
목소리를 들은 늙은 여자 귀신이 소스라치게 놀라며 손을 거두고 김 법사를 바라보았다.
“더는 저 불쌍한 인간의 몸에 붙어 신령님 흉내를 내며 영을 흐리지 말고, 네가 가야 할 길로 조용히 떠나거라. 만약 내 경고를 무시하고 저 인간의 몸주를 완전히 장악해 파멸로 이끈다면, 그때는 내 신장칼로 네 영혼의 뿌리까지 뽑아 불태워 버릴 터이니 그리 알아라.”
김 법사의 보이지 않는 안광에 기가 완전히 눌린 잡귀는, 선영의 어깨 뒤에 밀착하지 못하고 슬금슬금 거리를 두며 안절부절못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뿐이었다. 선영이 차 시동을 걸고 천신장군암을 빠져나가자, 잡귀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멀어지는 차 뒤꽁무니를 향해 어스름한 밤안개처럼 쫓아가기 시작했다. 제 버릇 남 못 준다고, 허주는 결국 인간이 완전히 깨우치지 않는 한 다시 꼬이기 마련이었다.
멀어지는 차의 헤드라이트 불빛을 바라보며 김 법사는 가만히 옥수를 새로 올렸다.
“부디 머지않은 날에 제 발로 깨우치고 돌아와야 할 텐데…”
조만간 닥쳐올 지독한 영적 풍파 속에서, 그녀가 온몸이 망가진 채 다시 이 도량의 문을 두드리게 될 미래를 김 법사는 이미 화경으로 내다보고 있었다.
(다음 회에 계속) / 글쓴이 계룡산 벼락신장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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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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