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인뉴스] 이해찬 전 국무총리 국내 운구…민주화의 길에서 평생을 걸은 정치인, 마지막 귀환
정범규 기자

베트남 출장 중 갑작스럽게 별세한 이해찬 전 국무총리가 27일 새벽 고국으로 돌아왔다.
군사독재에 맞선 민주화운동과 고문 후유증 속에서도 정치를 멈추지 않았던 인물이다.
한국 현대정치의 굴곡을 온몸으로 견뎌온 한 시대의 책임 있는 정치인이 역사 속으로 들어섰다.
베트남 출장 중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이해찬 전 국무총리의 시신이 27일 오전 국내로 운구됐다. 고인의 시신을 실은 대한항공 KE476편은 베트남 호찌민 공항을 출발해 약 4시간 30분 만인 이날 오전 6시 53분 인천국제공항에 착륙했다.
일반 항공편과 동일한 여객기에 탑승한 유가족과 함께 대통령 정무특별보좌관인 더불어민주당 조정식 의원을 비롯해 이재정·김영배·김현·이해식·정태호·최민희 의원 등 여당 인사들도 동행해 귀국했다. 공항에는 상임 장례위원장을 맡은 김민석 국무총리와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대표, 한병도 원내대표 등 당 지도부가 새벽부터 도착해 고인의 마지막 귀환을 맞이했다.
인천공항 제2터미널에 도착한 고인의 시신은 계류장에서 간단한 영접 절차를 마친 뒤 화물터미널을 거치지 않고 곧바로 운구 차량을 통해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으로 이송될 예정이다. 공항 현장은 장엄하면서도 침통한 분위기 속에 조용히 진행됐다.
이해찬 전 총리는 단순한 정치인이 아니라 한국 민주주의의 격동기를 몸으로 통과한 상징적 인물이었다. 그는 1970~80년대 군사독재 시절 학생운동과 재야 민주화운동에 깊숙이 참여하며 유신체제와 전두환 군부정권에 맞서 싸웠다. 당시 수차례 연행과 구속을 겪었고, 조사 과정에서 가혹한 고문을 당한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특히 고문 과정에서 입은 후유증은 평생 그를 괴롭혔다. 신경계 손상과 만성 통증, 청력 이상 등은 정치 활동을 이어가는 내내 반복적으로 악화됐으며, 그는 여러 차례 공개 석상과 인터뷰를 통해 “민주화운동의 대가는 평생의 병으로 남았다”고 토로한 바 있다. 그럼에도 그는 이를 개인의 희생으로 남기기보다 한국 사회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 역사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강조해왔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제도권 정치에 진입한 그는 민주화 세대의 대표 정치인으로 성장했다. 국회의원, 교육부 장관, 국무총리, 더불어민주당 대표에 이르기까지 주요 국정의 중심에서 역할을 맡으며 개혁과 제도 정비를 추진했다. 특히 교육 개혁과 지방자치 확대, 참여정부 시절 국정 운영 안정화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동시에 그는 타협보다 원칙을 중시하는 정치인으로도 알려졌다. 때로는 강한 발언과 직설적인 화법으로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했지만, 정치적 유불리를 넘어 민주주의의 방향성과 제도의 지속성을 중시한다는 점에서는 일관된 태도를 보여왔다.
그의 정치 인생은 단순한 권력의 궤적이 아니라, 민주화 이후 한국 정치가 안고 있던 구조적 한계와 끊임없이 맞닿아 있었다. 민주화 세대가 국가 운영의 책임을 떠안아야 했던 시기, 이해찬 전 총리는 늘 전면에 서 있었다.
이번 별세는 한 정치인의 죽음을 넘어, 군사독재에 맞서 싸웠던 민주화 세대의 한 축이 역사 속으로 물러났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고문 후유증이라는 상처를 안고도 끝까지 공적 책임을 외면하지 않았던 그의 삶은 오늘날 정치가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지를 되묻게 한다.
고인의 마지막 귀환을 지켜본 정치권 안팎에서는 “그의 삶 자체가 민주주의의 기록이었다”는 평가가 잇따르고 있다. 이해찬 전 총리는 그렇게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시간 속에 깊은 흔적을 남긴 채, 이제 역사의 품으로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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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범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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